세상의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더라도 여전히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 많다. 대표적 질환 대부분은 유전병이다.
매년 우리나라 신생아 약 50만 명 가운데, 약 2%인 1만명 정도가 크고 작은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다. 특히 유전병을 지닌 부부들은 임신 자체를 포기하는 등 유전병이 동반하는 가정의 고통과 사회적 손실비용은 엄청나다.
대대로 유전질환을 가진 집안에서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까지 착상전 유전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이하 PGD)이 유일하다.
착상전 유전진단(PGD)은 시험관아기 시술과 유전자검사 기술이 결합된 첨단 의료기술이다. 유전질환자나 그 보인자 또는 염색체 이상이 있는 부모로부터 임신 전에 그들의 난자와 정자를 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해 체외에서 수정시킨다.
그 후 배아의 할구세포 한 개 혹은 두 개를 떼어내 염색체 또는 유전자 검사를 시행, 정상으로 진단된 건강한 배아만을 선별해 자궁 안에 착상시키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시험관 유전자나 염색체 이상 유무를 수정란 초기 단계부터 미리 진단해 유전질환을 갖는 아기 출산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이다.
유전질환 걱정 산모들에 희망 제시
국내에서는 제일병원 아이소망센터가 지난 1995년 최초로 도입해 현재까지 염색체 이상 환자 및 유전질환자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착상전 유전진단 적용이 가능한 대상은 유전질환과 염색체 수와 구조 이상 환자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염색체의 수나 구조적 이상을 갖는 부부는 습관성 유산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으며 염색체수 이상으로 선천성 기형아를 출산할 확률이 높다.
고령 임신부 역시 염색체 이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시행된다.
제일병원 착상전 유전진단 클리닉은 염색체 이상 진단을 위한 PGD를 현재까지 국내 최대 규모인 1500여 주기를 시행하고 있다.
염색체 이상 태아의 경우 자연유산율이 92%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현재 제일병원에서 PGD를 통해 습관성 유산 환자의 유산율은 10% 이하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염색체 이상 진단을 위한 PGD는 난임전문병원을 비롯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PGD 기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유전질환 분야다.
염색체 수와 구조적 이상을 확인하는 PGD는 많은 경험과 기술이 축적돼야 하지만, 하나의 세포에서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염색체 안에 응축돼 있는 DNA를 분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도 몇몇 기관에서만 시행되는 최첨단 의학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유럽생식의학회에서는 매년 PGD 관련 데이터를 통합 발표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오직 50여 개의 기관만이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제일병원이 유일하다.
병원은 현재까지 38종의 유전질환에서 250여 주기를 시행하고 있어 결과발표 시기마다 학회에서 집중 주목을 받는 것은 물론, 각종 논문의 중요 데이터로 활용되고 있다.
제일병원 PGD 클리닉은 양광문, 차선화 교수를 필두로 PGD를 전담하는 연구원 6명이 한 팀을 이뤄 세계적 수준의 PGD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양광문 교수(난임생식내분비과장)는 “PGD는 하나의 세포에서 얼마나 정확한 유전정보를 추출하느냐가 핵심”이라며 “때문에 의료진 및 연구원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PGD 클리닉 연구원들은 10여 년 넘게 한 팀을 구성해 고도의 기술 및 인력 인프라를 통해 제일병원만의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PGD 클리닉 이형송 책임연구원은 “제일병원에서 시행한 38개 유전질환에 대한 유전진단 성공률은 92%로 세계 우수 기관에서 발표되는 평균수치를 웃돈다”고 말했다.
인력 인프라 외에도 PGD는 하나의 세포에서 DNA를 추출해 이를 증폭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물질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과 시설 점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일병원 아이소망센터는 지난 2004년 국제 품질경영평가제도인 ISO 9001/KSA 9001 인증과 국제인증네트워크인 IQNet 인증을 받는 등 최고의 의료시설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실제 1995년 국내 최초로 DMD(듀센씨 근이양증) 환자 임신 후 로벗슨 염색체 전좌, 척수성 근위축증, 클라이네펠터 증후군, 오르니틴 트랜스카바밀라제 효소결핍증, 골형성부전증 환자 등에서 임신을 성공시켜 오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증폭기술을 이용, 취약 X 증후군(fragile X syndrome)에 대한 착상전 유전진단을 국내 최초 성공했다.
돌연변이 발생률이 높아 PGD 자체가 어렵다고 보고되고 있는 삼핵산반복질환인 근긴장성이영양증, 헌틴턴병, 취약 X 증후군, 샤르코-마리-투스병 진단에 성공, 국제 학회에 주목 받는 등 국내 PGD 기술 발전을 선도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유전질환 PGD와 관련해 제대로된 시스템과 기술, 인프라를 갖춘 기관은 오직 제일병원 뿐이어서 지금도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유수 대학병원에서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
생식의학연구실 PGD팀이 풀가동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수용에는 한계가 있어 이미 2016년 초까지 모든 검사 예약이 꽉 차있는 상태다.
차선화 교수는 “많은 기관에서 유전질환 PGD를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 천개로 늘어져 있는 염기 배열의 정상유무를 하나하나 꼼꼼하고 섬세하게 확인해 나가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응기 병원장은 “여성의학을 선도해 온 연구기관으로서 ‘모든 여성은 안전한 임신과 출산의 권리를 갖는다’는 가치를 실현을 위해 PGD 클리닉을 활성화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