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의국장 '사직의 변(辯)'
"인력 부족에 임산부 전공의도 중노동, 의대 증원으로 소청과 붕괴 못막아"
2024.02.17 18:15 댓글쓰기




사진제공 연합뉴스


전공의 수료까지 고작 반년 남짓 남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사직을 표명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희생하며 소청과 전문의란 꿈을 향해 걸어왔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정부의 부실한 필수의료 정책과 의사들을 향한 비난 여론에 대한 아쉬움을 쏟아내며 그 꿈을 접겠다고 밝혔다.


“소청과 선택, 자부심으로 3년 5개월”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김혜민 의국장은 최근 소속 교수와 동료들에게 사직 의사를 밝히며 그간 심경을 글로 남겨 전했다. 그는 올해 가을 소청과 전공의 수료를 앞둔 4년차 전공의다.


김 의국장은 우선 “어려운 시국에 전공의 파업을 위해 어떤 과보다도 힘써 도와주시고 지지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마음이 무겁다”는 인사로 글을 열었다.


그는 소청과 전공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타과를 지원하다가 떨어져서도, 소청과가 3년제로 바뀌어서도 아니라 소청과 의사가 되고 싶어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3년 5개월동안 전공의 생활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했고, 지난해 보릿고개 전부터 소청과 의국장을 자원해 일하며 소청과 의사를 선택하겠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을 “올해 가을 소청과 전공의 수료를 앞둔 4년차 전공의”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고 현재 임신 중인 임산부”라고 소개했다.


김 의국장은 지난 3년 5개월간의 소회를 밝히며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회사원인 신랑은 저 때문에 회사 진급을 포기하고 2년에 달하는 육아휴직을 감내했고, 신랑의 복직 후에는 양가 부모님들의 헌신으로 하루하루 버텼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 부족으로 소청과 의료붕괴를 경험하고 있으나 병원에서는 입원 전담의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부 지원 역시 없어 교수와 강사들이 전공의 빈 자리를 메꾸며 지쳐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력난에 임산부도 중환자실 당직…엄마로서 죄책감에 눈물”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2년 연속으로 소청과 레지던트 지원자가 없는 등 전공의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김 의국장은 “인력 부족이 극심해 임산부 전공의도 정규 근무는 당연하고 임신 12주차 전, 분만 12주 전을 제외하고는 기존 당직 근무에 그대로 임한다”고 밝혔다.


이어 “태교는커녕 잠도 못 자고 컵라면도 제때 못 먹는다”며 “병가는 꿈도 못 꾸고 수액 달고 폴대를 끌어가며 근무에 임해왔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중 최고 연차인 그는 당직도 중환자실에서만 지냈다.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소아 코드블루(심정지 등 응급상황)를 경험하고 한 달에 한두 명 이상의 환아의 사망을 경험해 왔다.


그는 “지난달에는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아를 5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다”며 “가습 압박을 하면서 내 뱃속 아기가 유산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엄마이기 전에 의사인 만큼 처치에 집중하자’고 다짐하며 임했다”고 전했다.


이어 “다행히 환아가 살아난 후 당직실로 들어가서는 뱃속의 아이에게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어 몇 시간을 울었다. 가족들 걱정할까봐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의대 증원으로 소청과 붕괴 못 막아…붕괴 10년 안 걸릴 것”


이와 중에 발표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그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김 의국장은 “몇 명을 하든 의대 증원 정책은 소청과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수가 많아지면 소청과를 지원할 의사도 정말 많아지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의사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원자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대로 간다면 빅5 병원 소청과가 무너지는 데 10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전공의만 버티면 이후 안정된 삶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다른 과 얘기”라며 “소청과 교수들의 삶은 다른 과 교수들과 너무 다르다. 그래서 교수도 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엄마 포기할 수 없으니 소청과 의사를 포기”


이에 김 의국장은 사직의 결심을 굳히기에 이르렀다.


김 의국장은 “이번에 파업을 하더라도 의대 증원 수만 줄어들지 소청과를 포함해 무너지고 있는 필수의료 과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은 마련되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의사가 환자 목숨보다 자기 밥그릇을 중시한다는 비난들도 더는 견디기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생계 유지도 필요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필요하다. 엄마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소청과 의사를 포기하고 피부미용 일반의를 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소청과 의사로 못 다한 꿈은 의료봉사로 채워 나가겠다”며 교수와 동료들에게 “죄송하고 이때까지 감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그는 향후 전공의들의 일정과 의국장 인계 건까지 꼼꼼하게 전달했다.


그에 따르면 이달 19일 세브란스병원 소청과 전공의 1~3년차가 사직서 제출 후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돌입하며, 4년차들은 당직 포함 정상근무를 이어갈 예정이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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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수 02.17 20:27
    감히 응원한다는 말도 못하겠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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