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이 교육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대한 규정 개정안'(이하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평가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그 어떤 조치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의평원은 16일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번 의료사태 속에 의평원이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5일 의대 교육여건이 저하된 경우 1년 이상 보완기간을 부여하고, 인증기관이 공백일 경우 기존 인증 효력을 연장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안덕선 의평원장은 "현재 의대생 대다수가 학업의 자리를 떠난 상황에서 교육 현장의 파행을 수습해야 할 교육부 대책은 엇나가기만 한다"며 "특히 최근 교육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그간 우리나라 의학교육 질(質) 보장을 위한 핵심 기제로 인정받았던 의대 평가인증 사업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요소가 다수 포함돼있다"고 지적했다.
인정 기관 공백시 유효기간 연장→평가인증제도 무력화
의평원은 개정안 내용 중 크게 4가지 내용을 문제로 짚었다. 우선 인정기관 공백시 기존 평가인증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조항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개정안에는 기존 인정기관이 재지정되지 않거나 지정이 취소되는 등 사유가 발생해 인정기관이 없거나, 인정기관이 평가인증 업무를 중단 또는 폐지할 경우 새롭게 지정된 인정기관이 최초로 평가인증을 수행해 그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기존 평가인증 유효기간이 연장되는 것으로 본다고 명시됐다.
이에 의평원 측은 "인정기관 부재 상황을 가정해 기존 평가인증 유효기간을 무한정 연장하는 것은 정부에 부여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의학교육 질 저하를 우려했다.
이어 "정부는 평가인증 기관의 부재를 가정할 것이 아니라 그런 우려를 초래한 2000명 정원 확대 정책을 취소하거나 수정하는 등 조치로 그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헌법적, 법률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인증기관이 부재한 경우 평가인증제도 적용을 유예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놔 평가인증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역량과 자질이 미흡한 의료인이 배출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번째로 의대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저하된 경우 불인증하기 전에 1년 이상의 보완기간을 부여하도록 한 개정안 내용도 문제로 지적됐다.
의평원 측은 "헌법 정신과 법률 조항에 따라 인증과 불인증, 보완기간 부여 등은 평가대상 분야의 특수성과 평가기관의 엄격한 평가와 판정을 통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보완기간을 부여하는 것은 해당 대학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기간을 지연시켜 학생들 학습권과 국민 건강권에 위해(危害)를 끼칠 소지가 크다"며 "1년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법령에 규정할 사항이 아니라 평가기구에 부여된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또 교육부가 평가인증의 기준, 방법, 절차 등을 변경할 때 교육부 장관에 사전보고해야 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 대해 의평원은 "사전보고 및 사전심의는 이미 교육부 지정을 받은 평가기구에 대한 통제이며 평가기구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평가인증 기준 등을 변경할 때 최소 1년 전에 각 대학에 알려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 "기존 진행되고 있는 증원된 의대에 대한 주요변화평가를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의사 양성‧배출에 문제만드는 시도는 '개선' 아닌 '개악'"
안 원장은 "정원 증원이 필요하면 할 수 있고, 학제 개편도 필요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실제 시행됐을 때 사회가 원하는 의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며 "이런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모든 시도는 개선이 아닌 개악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교육부 개정안은 평가기관 자율성을 제한하고, 이해관계자들 이익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할 평가인증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평원은 의학교육 가치와 의사 양성의 중요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양은배 의평원 부원장은 "현재 개정안이 의견수렴 단계인데 1만5000여 건의 의견이 올라간 것으로 안다. 아마 규제 심사나 법제처 심사 단계에서 그런 의견이 고려될 것"이라며 개정안 통과 가능성을 낮게 봤다.
교육부는 11월 4일까지 이번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