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발사르탄 사태에 이어 라니티딘 파동까지 일면서 제약업계가 뒤숭숭하다. 두 사건은 전개 방식은 유사하지만, 차이점도 있어 이런 부분들이 향후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에 판매금지된 약물 복용자가 14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 복용자들의 불만 및 불안을 잠재우는 것도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가 지난 9월26일부터 라니티딘 성분 위장약 잠정 제조 및 판매 중지 그리고 회수 조치를 내렸다. 관련 전문가들과 '라니티딘 중 NDMA 발생원인 조사위원회'를 구성, 조만간 원인 분석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해 터진 '발사르탄 사태'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강도 높은 조치에 나섰다고 식약처는 밝힌다. 그러나 업계는 "식약처를 이해는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라니티딘 성분, 판매 중단할 정도로 위험한가?
제약업계가 식약처 대응이 지나치다고 여기는 이유는 '위험성 판단'에 대한 기준과 전제가 적절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라니티딘 원료제조소 7곳에서 제조한 원료의약품을 전수조사하면서 삼은 잠정관리기준은 라니티딘 1일 최대 복용량(600mg)을 평생 섭취하는 것을 전제로 산정했다.
즉, 검출 기준인 0.16ppm은 NDMA가 포함된 라니티딘을 하루에 600mg씩 70년간 섭취하면 발암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작년 논란이 됐던 발사르탄 성분 고혈압치료제의 경우 0.3ppm이었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 치료제와 달리 주로 단기 복용하는 위장약을 동일한, 아니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했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위장약의 경우 항생제나 다른 약을 치료할 때 위를 보호하기 위해 단기로 소량 처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혈압약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며 "게다가 지금 나온 조사결과는 원료의약품에 관한 것으로, 완제 의약품의 위해성이 명확히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과도한 조치를 취한 건 아니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식약처가 실시한 1차 실험조사와 다른 결론이 나온 2차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반대 결론이 나온 원인으로 식약처는 '원료 불안전성'을 지목했는데, 그렇다면 추가 조사에서도 이번 결론을 뒤짚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즉, 변수에 따라 여러 가능성이 고려될 수 있는데, 미리 결론을 내렸다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식약처 관계자가 라니티딘이 '불안정성'이 굉장히 심하다'고 했다"며 "원료의약품을 제조하는 환경이나 방식에 따라 발암물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미국 FDA도 아직 회수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선제적으로 대응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라니티딘 제품 환불 등 보상 책임은 또 제약사 몫?
발사르탄 사태가 마무리된 뒤 보상 문제를 두고 정부와 제약사 간 갈등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유사한 사건이 터지면서 제약사들은 손해 보상 문제로 벌써부터 민감한 모습이다.
특히 라니티딘은 발사르탄 사태 때와 달리 재판매 가능성이 거의 없어 더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 판매 중단 및 회수로 인한 피해와 함께 건보재정 손실에 대한 책임까지 지게 될까 걱정하고 있다.
실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마련된 '라니티딘 대응방안 설명회'에선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식약처는 라니티딘의 안전성을 입증하면 판매 재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아직 NDMA 생성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황인 터라 제약사들이 이를 증명해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발사르탄 제제 고혈압약 재정 손실에 대한 손해보상 청구서에 대한 대응방안을 결정내리기도 전에 라니티딥 손해배상 청구서까지 손에 쥐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설명회 참석한 제약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제약사 입장에서도 폭탄을 맞은 셈인데 정부는 빨리 회수만 요청하고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아 모든 피해를 회사가 책임지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재판매 영구 불가'라는 조치를 시행할 경우 이를 보완할 실질적인 지원책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