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여드름 치료약의 성분인 '이소트레티노인'을 임신부가 복용했을 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임신예방프로그램 도입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정열 임산부약물정보센터 이사장(단국의대 산부인과 교수)은 11일 국회의원회관 제3회의실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사)임산부약물정보센터와 (주)데일리메디가 주관한 '태아기형유발 약물인 이소트레티노인 등 관리를 위한 임신예방프로그램 도입' 간담회에서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소트레티노인은 다른 치료법으로는 잘 낫지 않는 중증 여드름 치료에 쓰이는 전문의약품이다. 피지 분비를 억제해 피지를 먹고 사는 균(菌)을 굶겨 여드름을 없앤다.
조소연 서울대 보라매병원 피부과 교수는 "이소트레티노인은 여드름 때문에 지옥을 경험한 환자에게 천국을 선사하는 약물이라고 불리지만, 전체 여드름 환자의 20~30% 정도가 처방받고 있다"고 말했다.
"태아기형·임신중절 등 위험 큰 이소트레티노인"
그러나 이 약물을 임신부가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다.
태아 기형 35%, 안명기형·신경결손·심장기형·귀 선천성 기형·구순열·선천성흉선결손증 등이 유발된다.
기형이 발생하지 않아도 복용자의 60% 정도는 정신박약이 유발되는 위험한 약물이다. 임신했을 경우 20%가 자연유산을 할 정도로 심각한데 실제로 이 약을 복용한 임신부의 약 50%가 임신중절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다국적제약사 로슈를 비롯해 국내 30여개 제약사에서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의 여드름 치료약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한정열 교수(사진 左)는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의 여드름 치료약은 보험급여 상한가가 305원으로, 연간 약 1640만정(약 50억원)이 판매되고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가임여성(20~44세)이 약 1200만명임을 감안할 때 국내 모든 임산부 및 가임 여성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으로 태아건강 및 모자보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6년 7월~12월 이소트레티노인 분석자료에 따르면 보험 처방건수는 2만5522건, 수진자수는 2만1867명이었으나, 비보험의 경우 비급여 처방건수가 17만2636건, 수진자수 14만7862명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는 "비급여 처방이 보험급여 적정 처방의 6.8배에 달해 허가사항 외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위험이 상당히 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임신부들 약물 위험 경각심 낮고, 약 불법거래 문제"
부작용 이슈가 있는 약이지만, 가임여성이나 임신부 경각심이 부족하며 약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의료진 역시 약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됐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신혼여행을 떠난 전공의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아큐탄(성분명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했는데 신혼여행에서 임신이 된 것 같아 걱정이라고 얘기했다"며 "수정 이후에 노출된 게 아니라 다행히 아이를 건강히 출산했지만,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사조차도 이런 실수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산부약물센터(한국마더세이프전문성담센터 조사 진행)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900명 이상의 임신부가 이소트레티노인에 노출된 것으로 집계했다.
2010년 4월부터 2016년 7월까지 2만2374건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임신 중 이소트레티노인에 노출된 임산부는 650명(2.9%)로 나타났다.
복용 나이는 29세에서 정점을 이루지만, 나이가 많은 여성들의 사용 빈도도 적지 않았다. 1인당 평균 18일 복용하며, 길게는 10년 이상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소트레티노인의 반감기를 고려해 사용 중단한 뒤 30일 이후 임신을 권장하는 상황에서 안전한 시기에 임신한 경우는 137명(21.1%)이었다.
피임 권장기간인 사용 중단 후 30일 이내 임신이 돼 위험에 노출된 임산부는 104명(16.0%), 그리고 임신 중 복용한 임산부는 409명(62.9%)으로 나타나 전체의 약 80%가 태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에 복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정열 교수는 "연간 출생아 1만명 대비 3건의 임신부가 이소트레티노인에 노출되는 것으로 보이고 태아 건강은 물론 이로 인해 불법 임신중절로 임신부의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며 "더 큰 문제는 이런 약물에 관한 규제를 제약사에 맡기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의사 처방 없이도 약이 온라인상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사례가 많아 허술한 약물 유통 및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홍 교수는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일부 먹고 남은 것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또 외국에서 약을 직구해서 복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신예방프로그램 도입 등 관리 및 규제 필요"
가임 여성과 태아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이소트레티노인에 대한 규제 및 관리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그 대안으로 '임신예방프로그램' 도입 등이 제안됐다.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코렌 박사(이스라엘 Macabbi 연구소, 사진 右)는 "1982년 이소트레티노인이 처음 도입됐을 때 동물실험 결과를 보고 부작용을 예상했었다"며 "뇌뿐만 아니라 귀 등 다른 신체기관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져,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약에 큰 경고문을 붙였지만 TV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은 것처럼 아무도 경고사항을 읽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미국 FDA에선 위험성을 인식해 2000년대 초반부터 임신예방프로그램을 통해 처방의사에 의해 환자를 등록하고 패스워드를 발급받은 후 지정된 약국의 약사에서만 이소트레티노인을 구입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으며, 약물 복용 중 이중 피임과 복용 전후 임신여부검사를 필수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예방프로그램은 미국 외에도 유럽연합과 영국, 호주 등의 선진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한정열 교수는 "저출산 극복과 건강하고 안전한 출산, 그리고 불법임신중절 예방을 위한 실효적인 유통관리를 위한 제도적 체계가 절실하다"며 "미국이 2006년 도입한 임신예방프로그램인 iPLEDGE나 EU의 프로그램처럼 우리도 임신예방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약처와 국회는 현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 향후 법적인 제도 정비와 관리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기동민 의원은 "시중에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태아 저격용 총탄이라 할 수 있는 이소트레티노인에 대한 법적 제제와 관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임신예방프로그램 도입을 법제화해 저출산 극복은 물론 가임여성, 임신부, 태아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문은희 식약처 의약품안전평가과장도 "의약품 불법거래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 요원을 두고 단속하고 있지만 온라인 불법 판매까지 단속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며 "연자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식약처의 주의사항 기재, 팜플릿 제공 등의 노력만으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만큼 구체적인 제도나 대책을 마련토록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