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1]꼬이기 시작하면 한없이 꼬인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제도는 좀처럼 정상 궤도로 돌아오기 힘들다. 지난 2009년 7월 정부는 흉부외과, 외과 전공의 기피 현상이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자 수가를 각각 100%, 30% 가산하는 정책을 내놨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산부인과의 분만수가를 올렸다. 그러나 시행 4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현재까지도 흉부외과와 외과의 극심한 인력난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산부인과는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이들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흉부외과
“전공의 확보율 25% 끌어올리겠다던 약속 어떻게?”
지난 2009년 3월, 서울 소재 A대병원 흉부외과 2년차 레지던트 2명 중 1명이 사표를 내겠다고 말한다. 끝이 아니었다. 나머지 1명이 덩달아 그만둔다. 2명이 하던 일이 1명에게 돌아가면 견디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2년차 2명이 중도하차 하면 1년차도, 3년차도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연쇄적으로 떠난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 해 정부가 ‘극약 처방’이라며 수가 가산 정책을 내놓았다. 흉부외과 201개의 의료행위 수가를 100% 인상했다. 당시 8억9300만점이었던 흉부외과 상대가치 총점에 100%인 8억9300만점을 더해 상대가치 총점은 총17억8600만점으로 늘어났다.
정부의 추정은 이러했다. 흉부외과 수가를 100% 인상하면 평균 전공의 확보율을 약 25%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흉부외과와 외과의 전공의 확보율이 늘어나 고도의 의료기술이 요구되는 심장수술과 같은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보장이 확보될 것을 기대한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흉부외과학회 한 관계자는 “수가 인상으로 발생한 수익이 흉부외과 및 외과의 처우 개선 등에 활용되도록 복지부는 병원협회, 의사협회에 협조 공문을 발송하는 등 시행 초기에는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2013년 올해까지 전공의 모집 결과, 내리 곤두박질쳤다. ‘빅4의 돈 잔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며 드러났던 부작용은 4년이 지난 현재, 더욱 심화됐다.
수가 인상 효과에 대한 체감도가 가장 큰 이들은 바로 일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공의들.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L씨는 “수가 인상이 단순히 전공의들의 월급 인상에만 치우칠 게 아니라 사회적인 보상, 즉 흉부외과 의사들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 확실한 무엇인가가 전제돼야 한다. 힘들고 위험하지만 소신있게 이 길을 택한 사람이 돈벌이를 걱정하지 않고 진료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며 방점을 찍었다.
지방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전공의들에게는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대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K씨는 “서울, 경기 지역은 서로 의식이라도 해서인지 월급이다 뭐다 해서 인상됐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 소재 수련병원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곳이 상당 수다. 4년이 흐른 현재 수가 인상이 젊은 흉부외과 의사들의 사기를 얼마만큼 돋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선택을 뒤엎을 만큼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며 여전히 회의적인 목소리를 냈다.
양산부산대병원 흉부외과 성시찬 교수는 “빅4 집중 현상을 개선하지 않을 경우 전공의 수급 불균형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오히려 심화될 것”이라면서 “아무도 없는 흉부외과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갈 대담한 젊은 의사들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많은 부분을 흉부외과를 위해 투자함으로써 젊은 의사들이 수련을 받은 이후에도 여러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흉부외과 외면하는 병원 적지 않아”
실제 데일리메디가 확인한 결과 상당 수 병원들이 여전히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에 ‘침묵’하고 있었다. 수가를 100%나 인상하고도 왜 달라지는 것이 없냐는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수가 인상이 이뤄지면서 전공의 월급 인상을 비롯해 전공의 및 임상강사를 대상으로 한 보조금 지급 등이 상당 수의 병원에서 이뤄졌다. 또한 외과 수술보조, 수술 환자 드레싱 및 코디네이터 등 PA 간호사를 신규 채용하는가 하면 외과 임상강사도 추가로 채용했다.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수련병원들이 흉부외과 전공의들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전공의 지원율과 직결됐다. 실제 외과 계열 수가 인상에 대한 영향으로 관심을 모았던 2013년 레지던트 모집에서는 지원책을 결정한 유수 병원들과 결정하지 못한 지방병원들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지난 수 년 간 극심한 레지던트 가뭄에 시달렸지만 삼성, 아산, 서울대 등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성적표를 얻은 반면 다른 병원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0의 행렬’을 이어갔다.
더욱이 흉부외과 수가 인상이 가져온 주요 대형병원 ‘쏠림’은 레지던트 부족 현상으로 고스란히 대물림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전국의 심장 수술을 비롯해 흉부외과 진료의 70% 가량을 독식하고 있는 이들 병원은 전공의들을 블랙홀처럼 더욱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성시찬 교수는 “심장 수술을 놓고 따져봤을 때 1년에 1600건을 거뜬히 해 내는 ‘잘 나가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상당수 병원은 50건도 채 안 된다. 결국 이번 수가 인상으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가 인상이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면서 “대형병원이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을 내세워 전공의를 싹쓸이 한다면 지방병원들은 아예 수련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물론, 수가 인상 이후 흉부외과학회가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부터 수가 인상분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전방위 조사에 나서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 월급 뿐만 아니라 스탭을 포함, 전문간호사에도 급여가 인상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흉부외과학회 문동석 총무이사는 “전국 흉부외과 레지던트들은 당연히 월급이 더 많고, 더 많은 지원책으로 ‘손짓’하는 병원으로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양극화 문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동석 총무이사는 “사실 가이드라인을 정한다 하더라도 학회 차원에서는 강제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복지부, 수가인상 구체적 지침 내리지 않아 후유증 초래”
가천의대 길병원 흉부외과 박국양 교수는 “복지부가 예산을 지원하면서 구체적인 지침을 함께 전달하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각 병원이 수가 인상분을 어떻게 분배하고, 활용했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닫자 복지부가 일선 수련병원에 ‘흉부외과 및 외과 전공의 지원책 마련 요청’이란 제하의 공문을 보내고 ‘주의보’를 내리는가 하면 흉부외과와 외과 전공의 지원 계획 및 이들 진료과 전공의 지원에 대한 실적자료도 요구했다.
그러나 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관리, 감독을 통해 1000억원에 달하는 수가 인상분의 적정 활용을 유도해 낸다는 복안이었지만 현재 성적표를 보면 사실상 실패와 다름없어 복지부를 향한 비난 여론은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