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경외과 의사로 뇌혈관수술과 응급수술을 20여 년 이상 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아야 할 때 주저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린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화합형 정치인'으로 불리며 새누리당 내에서 내리 5선에 당선된 유일한 의원이다. 또한 18대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의사다.
1973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를 따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석사, 1995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20년 이상 의사로 살았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혹독한 인턴수련을 거쳤고, 1979년 선진의료를 배우기 위해 미국에 건너가 뉴욕대학병원에서 근무했다.
1981년 3년 만에 미국에서 귀국해 1985년 봉생 신경외과를 종합병원으로 확장하며, 김원묵기념 봉생병원장으로 취임한다.
이후 '환자로부터 생긴 이익은 환자와 사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철학에 따라 여유가 있을 때마다 병원을 증축했다. 실제 직원 60여 명 80병상에 불과했던 봉생병원을 직원 900명 800병상의 2개 종합병원으로 키워갔다.
그런 그가 정계에 진출한 것은 1996년 김영삼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에 따른 전문가 영입케이스로 발탁되면서다. [사진 정의화 국회의장 의사 시절 모습 / 출처 : 정의화 국회의장 홈페이지]
마침 15대 총선을 앞둔 1996년 초 당시 신한국당이 깨끗하고 능력 있는 전문가 출신 후보를 내세우며 공천혁명을 한 것이다.
당시 정 국회의장 역시 NGO 활동만으로 자신의 꿈이자 비전인 ‘건강사회 만들기’에 한계를 느끼고 정치입문을 고려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줄곧 정치인으로 살았지만 오랜 의사 생활 덕인지 그는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갔다. 그러한 기조가 가장 크게 두드러진게 2009년 12월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선진 대한민국은 건강한 서민과 중산층이 튼실한 가운데 이뤄져야한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8:2식의 발전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된다”며 영리법인 도입에 반대했다.
정 국회의장이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제8차 전국위원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며 당내 지도부로 입성한지 한달 쯤 됐을 때였다.
또한 정 국회의장은 '통일은 대결이 아니라 신뢰하고 화합할 때 가능하다'는 철학으로 2006년에 남북의료협력재단을 설립해 대북 의료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다시 한 번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주신 뜻이 무엇인지 안다. 여야가 상호호혜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며 향후 2년 간 국회를 책임질 의장으로서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