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약 후보 물질에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최근 5년 새 제약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오픈이노베이션의 환경 토대가 구축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를 한미약품은 '5조원'이라는 거액의 기술수출로 증명했고, 뒤를 이어 수 많은 제약사들의 도전 역시 계속될 전망이다. [편집자 주]
글로벌 제약, '혁신성' 주목
최근 한미약품의 당뇨신약을 일컫는 ‘퀀텀프로젝트’가 당뇨분야 글로벌 리더인 사노피에 4조3000억원, 얀센에 1조600억원 규모로 기술 수출됐다.
사노피에 수출한 당뇨신약은 랩스커버리 기술을 접목한 주사제로 GLP-1 유사체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주 1회 제형의 ‘LAPS-Insulin115’, 이 두개의 복합제인 ‘LAPS-Insulin Combo’까지 총 3개 제품이다.
이 가운데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임상 2상을 완료한 상태이며, LAPS-Insulin115와 복합제는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3개 제품 모두 본격적인 상용화가 가능한 3상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글로벌 제약기업 사노피의 러브콜을 받아 국내 제약산업의 기술 수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사노피가 한미의 신약 후보 물질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혁신성’이다.
세계적인 당뇨 치료 역사에 지속형 인슐린 주사제 ‘란투스’로 족적이 분명한 사노피는 앞서 NPH 주사제 위주의 시장에서 1일 1회 제형과 혈당최고치를 조절 유지시키는 인슐린글라진으로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
이번 한미약품의 당뇨신약 역시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주 1회 투여 제형이다. 한미약품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랩스커버리(LAPSCOVERY, Long Acting Protein/Peptide Discovery)’로 약물 효능을 장기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연 점에 사노피가 주목한 것이다.
랩스커버리 기술이 제품화에 성공할 경우 당뇨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혈당체크, 시간 내 정기 투여 등의 투약 편의성이 극대화 될 뿐만 아니라 부작용 완화 측면에서의 치료이익이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때문에 사노피는 한미약품을 선택, 기존 자사의 1일 1회 GLP-1 유사체 ‘릭수미아(릭시세나티드)’와 인슐린 콤보 ‘릭실란’을 보완해 인슐린주사제의 스펙트럼을 대폭 확대하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노피 아벤티스 코리아 관계자는 “이번 기술 수출은 글로벌 본사에서 진행한 사안”이라며 “향후 주 1회 제품이 개발에 성공할 경우 환자 상황에 따른 맞춤 치료제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약품 입장에서도 글로벌 파트너로 사노피를 맞이하게 된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프랑스에 모태를 두고 있는 사노피는 전세계 100여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당뇨와 백신 등 분야에서의 노하우로 향후 한미의 글로벌 사업의 든든한 우군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약품 이관순 대표이사는 “글로벌 리더인 사노피가 퀀텀 프로젝트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무척 기쁘다”며 “이번 계약이 당뇨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국적사 관심 ↑ 국내 제약사 자발적 홍보도 ↑
이 같은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성과에는 국내 제약기술 및 개발 수준이 향상되면서 다국적사의 파트너십 확대, 국내 산학연 소통 등 제약산업의 위상이 글로벌시장에서 관심을 받게 된 점도 한몫했다.
가장 먼저 다국적사들은 최근 5년 새 각 지역 본부나 본사 차원에서 국내 신약 후보 물질 조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MSD의 경우 지난 2007년 이래 본사 차원에서 파견한 ‘사이언스 엠베서더(Science Embassador)’를 통해 국내 연구소 및 신약 후보 물질의 현황을 파악하고 개발단계를 월 단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화이자 역시 지역본부 파견 인력이 국내외를 경유하며,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의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국내 간암환자의 암조직의 모든 유전자정보를 분석하기 위한 공동연구 파트너십을 삼성서울병원과 체결한 것이 그 사례다.
여기에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한국얀센 등을 대표적으로 국내 법인을 둔 다국적사들은 국내 사업개발(B/D)팀을 통해 국내 코프로모션을 비롯해 유망한 신약후보 등을 조사하고 발굴한다.
다국적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미약품의 연이은 기술 수출, 글로벌 제약사 암젠의 국내 상륙 등은 국내 제약산업이 세계시장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한국시장에 대한 글로벌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국적사의 관심 못지않게 정부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향한 자발적인 노력 또한 적극적으로 변화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의료기관, 국공립연구소, 보건의료 R&D 사업단 등이 참여한 보건의료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 협의체를 발족하고 보건의료 분야의 기술사업화 성과 창출에 이바지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보건의료 TLO 협의체의 국내외 기술이전 건수(195건)는 작년(40건) 대비 387.5% 증가했다. 또한 기술료 수입(420억원)은 ‘14년도(267억원) 대비 57.3%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약바이오 업계의 자체적인 소통채널 확보 및 홍보도 눈에 띄게 늘었다.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의 R&D 및 사업개발 담당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이들과 접촉하기 위해 해외출장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제약산업 기술수출의 새 역사를 써가고 있는 한미약품 역시 유럽에서 열린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 2015' 등에 참가했으며, 이 밖에도 다수의 제약사들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만날 수 있는 국제 교류 행사를 찾고 있다.
더욱이 신약 후보 물질을 대외에 알리기 쉽지 않은 바이오 업계에서는 각 회사가 모여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일례로 알테오젠, 레고켐바이오 등 대전지역 내 바이오벤처 관계자들의 모임인 ‘신약살롱’ 은 새로운 파트너사 물색 및 업계 현황 파악 등 소통의 창구가 되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 국내 신약 물질들이 해외에서 관심을 받게 된 만큼, 앞으로 수출 사례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며 “글로벌 진출 기회를 넓히기 위해 국내 업체들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