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재택치료 주역으로 활동했던 내과·이비인후과 등 의사들 ‘72%’는 비대면 진료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의료계는 과거와 달리 비대면 진료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이를 실제로 경험해 본 의사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로 4개과 의사회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 반대한다”고 명확히 했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로 오진 가능성, 전문의원 출현, 플랫폼 난립, 대형병원 쏠림현상 등을 꼽았다.
대한내과의사회,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등 4개과 의사회는 7일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설문조사는 지난달 14일부터 28일까지 4개과 의사회원 총 2588명이 참여했는데 이중 1881명(72.7%)이 전화상담, 전화상담 후 처방전 발행(82.8%)까지 진행했다.
특히 이들 4개과 의사회가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상담 및 처방에서 중요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설문조사 의의가 크다.
우선 비대면 진료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응답이 54.4%였다. 진료 기본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18%로 나타났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72.4%’로 나온 것이다.
지난해 10월 내과의사회가 소속 회원 107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회원이 60%였는데, 비대면 진료를 해본 이후 부정적 인식이 늘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비대면 진료 시 우려되는 사항으로는 오진 가능성(중복포함 94%), 비대면 진료 전문의원 출현(69%), 원격의료 관련 플랫폼 난립(66%),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현상 가중(59%) 등이 꼽혔다.
이에 대해 4개과 의사회는 “비대면 진료를 하게 되면 증상이 가벼운 환자라도 심각한 질병일 수 있다는 것은 통계를 분석한 ‘미국의학협회지’에 실린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다”며 “산업적 측면에서 추진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가 정착된다면 비대면 전문 의료기관이 생겨나고, 플랫폼 간 경쟁과 불필요한 의료수요 증가로 ‘의료영리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대면 진료,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재진환자만 적용”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수였는데, 세부적으로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일차 의료기관’에서만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닥터나우 등 플랫폼 업체의 급성장을 경계하는 견해도 피력됐다.
비대면 진료 도입 시 진료 범위는 코로나19 등과 같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중복 포함 77.9%)이 많았고,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62.4%), 장애인이나 거동 불편자에 한해 시행(51%) 등으로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범위에 국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응답자 90% 이상이 환자 상태 파악이 가능한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비대면 진료 주체도 일차의료기관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닥터나우 등 플랫폼 업체의 성장을 경계하는 응답도 많았다. 플랫폼 업체 비대면 진료 및 건강 상담과 의약품 배송에 대해 87.5%(중복포함) 회원이 부정적이었고, 이중 79%는 플랫폼과 연계된 전문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을 경계했다.
이외에도 플랫폼 간 경쟁 심화로 이익 추구(77%),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 도입 부정(66%), 비대면 진료 도입 시 적극 참여(9%), 대면 진료만 유지(21%) 등 응답도 있었다.
“제대로 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먼저 해보자”
공동 설문조사를 토대로 4개 의사회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근 정부뿐만 아니라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에서도 비대면 진료의 ‘방법론’에 대해 논의하는 분위기가 팽배한데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이전에 ‘시범사업’을 추진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박근태 내과의사회장은 “정부가 압박하고 있으니 비대면 진료에 대해 시작해보자는 것인데, 4개과 의사회는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며 “‘시범사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보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기존에 진행된 시범사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 한 측면이 있지 않느냐”며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황찬호 이비인후과의사회장도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임 소재 등에서 정부의 백업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진료과별 등 사안에 따라 비대면 진료 허용 범위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