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학 학술지 '위기'…해법은 '국제화'
학회 고민 갈수록 심화, SCI(E) 등재 목표 포함 활성화 총력
2013.07.11 12:37 댓글쓰기

국내 의학 학술지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몇 해 전부터 SCI(E) 등 해외 저널 중요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위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용이 안 될 뿐더러 대학에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보니 교수들을 포함 연구자들이 자연스럽게 외국 학술지에 집중하게 된 분위기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겠지만 국내 학술지를 외면한 채 외국 저널 실적에만 열을 올리는 것도 이상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에 데일리메디가 국내 의학 학술지의 현실과 발전 방향을 모색해봤다.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 현황에 따르면 의약학 분야는 등재지 165개, 등재후보지 82개 등 총 247개의 학술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 학술지들의 절반 가까이인 49%가 연(年) 4회 발행 중이며 2회 17%, 6회 17%, 3회 10% 등의 순이다.


그간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13만2700여건에 이른다. 의약학 학술지 68%가 연간 1~50건 발행되고 있으며 50~100건은 22%, 101~200건은 8% 수준이다.


IF(Impact Factor) 평균값 추이를 살펴보면 2008년 0.08에서 2009년 0.28, 2010년 0.31로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반면 해외 저널 논문 비중은 꽤 높다. 2011년 우리나라의 SCI 논문 점유율은 세계 11위인 가운데 2010년 기준 의학 분야 한국 SCI 논문 수는 7640개, 약 12위 수준이다.


최근 5년간(2008~2012) 대학 전임교원 논문실적을 보면 교원 1인당 연평균 총 3.36개를 게재했고, 이 중 SCI, Scopus에는 2.08개, 등재(후보)지에는 1.28개를 등재했다.


연구재단 측은 “학술지 인용은 많지만 IF가 낮은 것은 결국 해외논문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라며 “SCI 논문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국내 학술지가 위축되고 있는 점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학술지 존폐여부 저울질


이처럼 학술지 홍수 속에서 외국 저널 위주로 논문 게재가 이뤄지다보니 국내 의학 학술지는 위기에 봉착했다. 폐간이냐 활성화냐를 놓고 저울질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의학회 산하 한 학회 편집위원장은 “학회가 10년이 넘었지만 학술지 정착은 잘 안 되고 있어 고민”이라며 “등재지도 아니기 때문에 논문 투고 자체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학회 이사장도 “의사들이 전부 SCI에만 논문을 제출해 국내 학술지는 전멸될 위기에 처했다. 고민하다 재정적인 투자 결단을 내리고 학술지 살리기에 나서기로 했다. 더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피력했다.


특히 의미 있는 연구 논문의 대부분이 해외 저널에 실리고 있기 때문에 자생력이 부족한 학술지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SCIE 학회지를 발간 중인 학회 이사장은 “해외 저널에 연구 논문을 싣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국내 학술지에만 내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학술지 자체의 영향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길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은 많은 학회들이 직면한 어려움으로, 일부에서는 전공의 부족에 따른 게재원 확보율이 감소하거나 재정적 어려움까지 더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 한 학회의 경우 2008년부터 발간해 오던 영문학회지를 2년 전 폐간했다. 연 4회 발행해 왔지만 계속되는 전공의 감소로 영문학회지 게재원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논문 투고가 잘 이뤄지지 않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술지에 대한 결단을 통해 다른 학술지의 역량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학회 곳간 사정도 학회지 발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술지 발전을 위해서는 재정적 투자가 동반돼야 하지만 여력이 없는 곳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 학회 측은 “학회지를 SCI급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특히 재정적인 부분도 많이 요구된다. 당장의 국제행사를 비롯 돈 들어가는 일이 많아 학회지 논의는 뒤로 밀렸다. 편집위원회를 통해 조만간 재논의할 계획”이라고 피력했다. 논문 투고 활성화를 위해 상금을 책정하거나 자체 인용 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학술지 위상 높이기에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상금 제도를 도입한 학회 편집위원장은 “논문 투고를 독려하고자 3년간 게재 시 20만원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며 “투고된 논문 전부를 실어주면 경쟁력에서 밀린다. 게재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 R&D 투자ㆍ학술지 질적 향상 ‘긍정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것은 한국의 연구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GDP 대비 R&D 투자 비율도 상당해 높은 수준의 연구 논문 또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CI(E)를 평가·관리하는 출판사인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기존 연구 강국이었던 일본과 함께 한국과 중국의 연구 결과물들은 질적·양적으로 모두 성장하는 추세다.


전체 출판 연구논문 중 피인용 상위 1% 수준에 속하는 논문 점유율의 경우 2001년 1.1%에서 2011년 2.7%로 상승세다.


피인용 상위 0.1% 수준의 논문 점유율 역시 2001년 0.9%에서 2003년 1.5%, 2005년 1.8%, 2007년 1.9%, 2009년 2.6%, 2011년 3.7%로 늘었다.


특히 분야별 피인용 상위 논문 수를 살펴보면 임상의학의 경우 상위 1%가 220개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상위 1% 수준 연구 논문 출판 비중은 여전히 글로벌 평균을 밑돌고 있다.


톰슨로이터 관계자는 “현재 한국은 많은 돈을 R&D에 투자하고 있다”면서도 “글로벌 평균 점유율은 1.39%지만 한국은 0.57% 가량으로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투자 대비 효과를 가장 크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전략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SCI(E) 학술지 만들자” 글로벌화 시도 봇물


이처럼 학술지는 학회의 존재 가치이자 국내 연구력 향상의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일부 학회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고자 학술지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SCI급 등재 학술지로 거듭나 정면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회들은 국제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편집과 정책, 출판과 유통에 이르기까지 학술지 전반에 걸친 손질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학술지 디자인 및 레이아웃 개선 △영문 원고 △저명 학자 논문 유치 △투고규정 및 연구출판 윤리 규정 △온라인 논문 투고 및 심사시스템 사용 △오픈 액세스 동참 등 자구책 모색에 나섰으며, 인용지수 역시 지속적인 증가를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인용지수 증가에 애쓰고 있는 한 학회는 “학회에서 첫 영문호를 발간했고 가능한 빠른 기간 내 SCI 등재를 목표로 노력하고자 한다”며 “국제학술지 인정 기준의 척도가 논문 인용지수다. 인용지수를 높이고자 증례논문을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향후에는 증례 희귀성과 의학발전에 대한 기여도를 고려함으로써 불가피하게 게재 불가율이 매우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픈 액세스 플랫폼을 통해 학술지를 출판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데이터베이스 전문업체를 거쳐 학술지를 발행함으로써 세계적인 저널로의 도약을 앞당기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공식 학회지가 해외 유명 학술 데이터 베이스에 등재된 학회의 경우 “하루 평균 페이지 조회 건수 1억 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인터페이스”라며 “학회지 발전을 위한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연관학회와의 학술지 통합도 학술지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SCIE에 등재된 학회는 “유관 학회 학술지와 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며 “다른 유사 학회지와의 통합 발간을 위해 지금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SCI(E) 등재율을 높이고자 국내 의학 학술지들이 이처럼 전력투구하고 있어 기대심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연구력과 투자, 영향력 향상 등을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국내 학술지들이 보다 많아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와 관련, 톰슨로이터 제임스 테스타 부사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학술지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좋은 논문 발굴, 저자들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 제공, 적극적인 저널 홍보활동, 엄정한 논문 평가와 신중한 게재가 중요하다”며 “이는 유명 메디컬 학술지 에디터 등도 인정한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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