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모이고 휴진 들어가고' 대정부 투쟁 촉발
원격의료·의료민영화 논란 등 의료계 폭발…젊은의사 가세 정부 긴장
2014.04.09 06:05 댓글쓰기

[기획 1]3년 4개월여가 흘렀나보다.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가 개최되던 지난 2011년 12월 11일 당시 전국의사총연합를 이끌고 있던 노환규 대표가 갑자기 의협 경만호 회장에게 달려가 계란을 투척했다. 임총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노환규 대표의 주장인 즉, 왜 선택의원제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도록 수수방관 했냐는 것이었다. 방청석에 있던 전의총 회원들도 일제히 고함을 질렀고 삿대질로 경 회장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격의료다. 그 간 포괄수가제 시행 등 의료계와 정부가 정면으로 부딪힌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협 내부가 이렇게 사분오열되기까지는 정부의 행보가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쳤다.의정 대치 국면은 그 어느 때보다 장기전으로 복잡다단하게 전개되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14년 만에 의료계의 총파업을 불러 일으킨 상황 전후와 의료계 내부의 극심한 반목을 짚어봤다.

 

“미국의사회가 어떻게 위상을 정립했는지 아십니까. 미국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리던 지난 3월 30일 오후,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노환규 회장이 인사말을 시작하자 일부 대의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노 회장님 인사말 듣자고 이 자리에 나온 것 아닙니다. 짧게 하시오. 매번 이렇게 회무도 독단적으로 하는 겁니까.”


이 모든 결정이 내려질 것에 대한 암시였을까. 결국 장장 6시간에 걸친 이날 임시대의원총회의 결론은 “회장을 제외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총파업을 포함한 대정부 투쟁 방향을  결정한다”로 내려졌다.

임총에는 183명이 참석했으며 그 중 138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그 가운데 61.5%(85명)가 ‘노 회장의 비대위 배제’에 찬성했다. 원격의료 선(先) 시범사업 등 정부와의 협의 내용에 대한 수용 여부도 새로 구성될 비대위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후폭풍은 이 때부터였다. 대의원들이 임총에서 이 같은 방향으로 결론지은 것은 노 회장 주도로 이뤄진 그간의 대정부 협상과 투쟁에 대한 불만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장 4월로 예정된 원격의료 시범사업에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의원회는 노 회장 주도의 대정부 협상과 투쟁에 비판적이었다. 의협이 의정합의를 통해 2차 휴진을 철회하고, 원격진료와 영리자법인 사안도 사실상 정부 측에 양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요양급여비용을 결정하는 건강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 개편에도 실패한 것으로 판단했다. 노 회장은 내부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총파업’ 재개를 뒤늦게 임총 안건으로 올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의협이 발표한 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이유로 들며 노환규 회장이 다시금 ‘폭탄 발언’을 했다. 이번 대회원 긴급설문에서 전체 응답자 2만4847명 중 85.8%가 파업 재개에 찬성했고 본인에 대한 지지 역시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임총 다음날 기자들과 만나 돌연 ‘사원총회’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원총회가 법적 절차에서 하자가 없을 경우, 정관 개정은 물론 대의원회 의장, 감사, 대의원 모두 해임 가능하다.


사실 노환규 회장과 시도의사회에 이어 대의원회와의 관계가 틀어지며 사분오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비단 내부 문제에 국한하기는 어렵다.


당장 4월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 진행을 위해 정부는 의협과 세부 시행방식 등을 협의해야 하지만 곳곳에서 절차상의 오류와 잘못을 범하면서 신뢰 관계 형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건정심 약속 어디로… 의료법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국회 제출


사실 협의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구성 변경을 위한 입법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순서다. 건정심은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수가(진료비)와 국민들이 내는 건강보험료, 건강보험에서 혜택을 주는 보장항목 등을 결정하는 기구다.


현재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공익대표(복지부, 기획재정부, 건보공단 등) 8명, 가입자 대표(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8명, 공급자 대표(의협, 병원협회, 약사회 등)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의료계는 그동안 수가(진료비)와 건보료 인상을 바라지 않는 공익대표와 가입자대표 수가 16명으로 의료계(8명)보다 많아 협상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달 25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심의·의결했다.


지난 3월 6일 일찌감치 차관회의를 통과한 이 개정안은 당초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었으나 10일 의협의 1차 집단휴진과 24~29일 2차 휴진 예고 등으로 상정이 늦춰졌다가 약 보름 뒤에야 성사됐다. 국무회의를 최종 통과한 개정안은 차관회의 통과 당시와 같다.


의협은 이 같은 정부의 의료법 처리에 대해 “지난 17일 발표된 의-정 중간 협의 내용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협의 결과문에 따르면 양측은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원격진료의 안전성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4월부터 6개월간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입법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정부가 의협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에서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앞서 반년동안 시범사업을 먼저 진행한 뒤 결과를 보고 문제점 등을 법안에 반영하겠다는 뜻(선 시범사업 후 입법)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처리한 개정안 부칙에 의정 협의 전 정부 입장을 반영한 ‘공포 후 시행 전에 1년 동안 시범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선 입법 후 시범사업’ 관련 규정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의도적으로 약속을 어긴 행위라는 게 의협측의 주장이다.

 

정부 “상황 이해해 달라” vs 의협 “약속 어겼다”


의료법 개정안 국무회의 처리 직후 의협은 보건복지부에 공문을 보내 이 부분에 대한 뚜렷한 정부측 입장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차관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 내 입법절차가 완료돼가는 상황이라는 점, 시범사업 결과를 반영하려면 국회입법 과정에서 다시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개정안을 수정하지 않고 국무회의에 상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건정심 구조 개편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 것이다.


공익대표를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한다는 협의안을 발표했지만 공익대표 중 정부 측(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각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현재 4명)의 추천권만 손보는 것인지, 전체의 추천권을 손보는 것인지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입장 차이를 보였다.


투표 결과 발표에서도 이 때문에 한차례 해프닝이 벌어졌다. 노환규 의협회장이 정부 측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을 경우 투표 결과를 발표하지 않겠다며 입장표명을 요구한 것.


이에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국장이 문자를 통해 공익위원 범위, 수, 선정절차는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해 하기로 했는데 현행 의료법을 대비해 설명한 것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켰다고 유감을 표명하면서 일단락됐다.


의정 협의문이 효력을 발휘함에 따라 공급자 측에 유리한 건정심을 만들었다는 시민사회 단체의 비난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의협 새 비대위 순항여부 촉각


새 비대위에서 현재 의정 합의안을 파기하고 파업을 다시 강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3월 10일 파업이 성사된 데는 노 회장을 지지하는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의 표심이 결정적이어서 노 회장을 배제한 비대위는 파업 동력 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대의원회에서의 노 회장 배제 결정은 ‘의·정 합의 결과’에 대한 불신보다 ‘노환규 불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도 집단휴진 재추진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그 동안 의협 시·도의사회 등은 노 회장이 집단휴진 전에 발표한 1차 의·정 협상 결과를 뒤엎고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한 뒤 집단휴진을 강행한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 왔다.


현재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시도회장 또는 추천인 16명 ▲상임이사 4명 ▲개원의협의회 추천 3명 ▲전공의 2명 ▲병협 추천 2명 ▲의학회 추천 1명 ▲여의사 1명 등 지역 및 직역을 아우르는 의료계 인사 29명을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


노환규 회장과 변영우 대의원의장은 비대위 참석을 통해 발언은 할 수 있으나 의결권을 주지 않기로 했으며, 빠른 시일에 의협 집행부와 시도회장단 및대의원 운영위원 연석 모임을 개최해 내부 분란을 막기로 했다.
하지만 전국 시도의사회장단이 임총 결정에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하면서 노환규 회장과의 갈등은 불가피 해 보인다.


결국 현재로써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의협. 두 갈래로 나뉘어진 의협은 4월27일 개최 예정인 정기총회와 바로 전날인 26일 사원총회까지 열릴 것으로 예상돼 사상 초유의 상황에 맞닥뜨려 있는 형국이다.

 

전국시도의사회장단까지 임총 결정에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하면서 노환규 회장과의 갈등은 극한 대치는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