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뿐 아니라 거리로 나서는 전세계 의사들
의료제도 반발 잇단 집단행동… 윤리문제 고충 수반
2014.04.09 18:18 댓글쓰기

[기획 2]불행 중 다행으로 의료대란은 없었다. 원격의료로 촉발된 의사들의 봉기가 집단파업으로 확산되면서 지난 한 달여 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사실 이번 파업에 대해 여론은 긍정보다 부정이 확연했다. 고귀한 생명을 담보로 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많지 않았다. 의사들이 꺼낸 최후의 보루는 여전히 여론의 뭇매감에 불과했다. 결코 환영받지 못할 행동임에도 ‘의료(醫療)’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의사파업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더욱이 주목되는 부분은 근래들어 전세계적으로 정부를 겨냥한 의사들의 파업 행보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만큼 의사들이 힘겨워 지고 있다는 얘기다.

 

의사파업 세계적 추세


최근 30여년 간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의사파업은 총 36건에 달한다. 의료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통제나 왜곡된 의료제도 도입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이 대부분이었다.


의사들 파업은 문명국가와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았고 짧게는 반나절에서 길게는 118일간 지속되기도 했으며 단순한 항의집회 수준부터 집단 단식투쟁까지 파업의 정도 역시 다양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수 차례 의사파업을 경험한 캐나다와 1983년 유명한 이스라엘 의사 파업은 윤리적 찬반논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의사들의 파업은 세계 6대주에서 모두 발생했으며, 선진국 중에서도 사회의료보장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매 3~5년의 주기를 두고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곽연식 교수가 분석한 전세계 의사파업의 원인은 보수와 관련한 사안이 48%, 보건의료예산 삭감이나 노후시설 문제가 22%, 장시간의 근무가 16%였다.


또한 의사파업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요구조건을 성공적으로 달성, 36건 중 성공한 사례가 32건(88%), 실패는 3건(8%), 기타 2건(5%)이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보건의료 예산통제에 기인한 의사들의 환자진료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투쟁으로 표출된 것이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정유석 교수는 “사상초유라는 언론과 정부의 호들갑과는 달리 세계 도처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잇따르고 있다”며 “이 추세는 최근들어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의사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는 의료환경이 녹록치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공공의 적 ‘정부’


세계적으로 의사파업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나라마다 정책과 체계가 다양한 만큼 파업의 이유와 경과도 각양각색이다.


최근 의사파업 가운데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스페인 마드리드 지역 의사들의 파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의사들만의 파업이라기보다는 의료인과 지역사회 주민들의 민영화 반대 운동이었다. 남유럽 경제위기에서 촉발된 스페인 정부의 긴축 정책, 그리고 이에 따른 병원과 의료기관의 민영화 시도가 시발점이었다.


2012년 10월부터 시작된 운동은 파업, 연좌농성, 항의 방문, 피켓팅, 세미나 등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


이들의 민영화 반대는 의료인의 흰색 가운에 빗대 ‘하얀 물결’로 불렸는데, 15개월 동안의 장기투쟁 끝에 결국 승리를 거뒀다. 6개 병원, 4개 전문치료센터, 27개 지역병원의 민영화 추진이 중지된 것이다.


여러 나라의 의사파업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이슈 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파업하는 사례가 더 흔하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새스캐치원주 의사들 파업과 이스라엘 파업이 이런 예에 속한다.


캐나다 새스캐치원주 의사들은 1962년 주정부의 의료보험 도입에 반대해 23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의사들은 “사회주의’ 의료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제도가 시행되면 주를 떠나겠다”고 위협했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의사를 불러오는 등의 조치로 대응했다. 결국 의사들이 의료보험에서 빠질 수 있도록 하고 진료 보수를 올리는 등 몇 가지 조건에 합의하면서 파업은 끝났다.


크게 봐서 이 파업은 ‘실패’했고 의사들이 반대했던 의료보험은 새스캐치원주는 물론 캐나다 전역으로 확대됐다.


이스라엘 의사들의 파업도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파업 이유는 주로 의사들의 임금과 근로 조건이다. 2000년에는 127일 간 진료를 하지 않았고, 2011년에도 158일 동안이나 파업을 지속했다.


진료수가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사파업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스라엘 말고도 많은 나라들의 의사가 비슷한 이유로 파업에 나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고뇌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여론은 비윤리적 행동으로 규정하며 비난 일색이지만 당사자인 의사들 역시 심적 부담을 호소한다.


환자 곁을 떠나면서 미안함과 책임감 등이 복합된 의사들의 불편함은 윤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의사들의 단체행동은 곧 환자들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 인도의 경우 지방정부 병원 소속 의사들이 중앙정부 병원과의 급여 불형평성을 주장하며 5일 간 파업을 진행했다가 환자 수 십여명이 숨진 바 있다.


파업이 빈번해지고 그에 따른 폐해가 발생하면서 의사들 스스로 집단행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단체행동은 하되 환자생명은 보호하자는게 골자다.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WMA)는 지난 2012년 의사들의 파업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하고, 의사 집단행동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성명은 의사가 환자 건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건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의사에게는 환자 진료라는 기본 책무 외에도 국가 의료제도의 개선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세계의사회가 채택한 의사 단체행동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우선 단체행동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윤리적·전문가적 의무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


또 각국 의사회는 “단체행동 등이 의사협회에 의해 이뤄졌거나 관여되지 않았다고 해도 의사 개인이 자신의 윤리적 의무를 인식하고 준수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행동의 수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가능하다면 비폭력적 시위나 로비·홍보·캠페인·협상·조정 등을 통해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공공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파업 과정에서 기초·응급 의료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일반 대중들에게 현재 이뤄지고 있는 갈등상황과 의사들의 요구사항을 알려주고, 환자들에게도 이와 관련된 최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의사들의 단체행동으로 인해 수반되는 보건의료상의 제약사항을 국민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세계의사회 성명은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대해 국제사회가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며 “의사에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정부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만 “가이드라인에 적시된 환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준수할 것”이라며 “생명을 볼모로 한 무책임한 집단행동은 지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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