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추무진 의협회장에 바란다!
장성구 교수 '의협이 주체가 돼 능동적으로 정책·대안 제시'
2014.07.18 07:38 댓글쓰기

[특별기고]대학에 봉직하는 사람으로서 참 우연한 기회에 권유와 사의를 반복한 끝에 의료계 일선의 현장에 첫 발을 딛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4월이다.


당시는 2000년 의료계에 대한 정권의 대침탈(大侵奪)이 발생된 이후의 어수선 함과 허탈함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의료계 내에 팽배할 때 였다. 서울특별시의사회 학술이사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이 같이 학술 이사였던 가톨릭 의대 문 정림 교수(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이었다.


박한성 회장의 강력한 요구와 독려 속에 문 교수와 나는 제1회 서울특별시의사회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회원들의 참여성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무모할 정도로 당돌한 일종의 도전이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보람찬 추억이다. 문정림 교수는 아주 젊은 여성의사로서 참 똑똑하고, 의료계 현안에 대해 매사를 잣대로 재단하듯 분명하게 선을 긋는 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본인은 서울특별시 의사회 부회장,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및 감사의 직무를 수행했고, 또한 대학에서의 보직과 연관된 지역 의사회와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어느 사이 나도 모르게 우리 의료계의 지극히 어려운 현황과 내부 문제점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된 괴로움의 번뇌를 안고 살아 왔다.


지금의 대한의사협회를 바라보면 계륵(鷄肋)과 같은 신세이며,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는 만신창이가 난 존재에 불과하다.


국민들과 정부로 부터는 신뢰할 수 없는 이익집단으로 매도되고, 동료 회원들조차도 음습한 복마전(伏魔殿) 정도로 조롱당하고 있다. 


2000년 응집됐던 투쟁력은 승화되지 못하고, 내부적 갈등의 난맥상(亂脈相)에서 헤매고 있다. 마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難破船)과 같은 존재가 됐다.


2000년 1월부터 현재까지 14년 사이에 대한의사협회장 및 직무대행을 거쳐 간 사람들이 무려 11명이다. 14년 사이 임기를 온전히 마친 회장은 2명밖에 없고, 평균 재임 기간은 16개월 남짓했다.


이러한 상황이 대한의사협회의 극명한 현 주소다. 제자리를 맴도는 소용돌이 속에 대한의사협회는 이제 또 새로운 회장을 선출했다. 신임 회장은 나름대로의 비전과 계획을 갖고 의협을 이끌어 가겠지만 의협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한다.


“대한의사협회 재정적 문제점 직시하라”
모든 조직에서와 마찬가지로 의협도 재정적 건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존립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보면 코앞에 직면했다고 하여도 결코 허언이 아니다. 의협은 과거 10여년 이상을 대정부 투쟁의 역사로 점철돼 왔다. 투쟁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재정 건전성이 확립되지 않고 매년 수억 원의 적자가 발생돼 왔음에도 이를 직시하지 못해 왔고 또한 집행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괴로운 이 현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회원들이 별도의 계정으로 납부하는 ‘의료정책 연구소’ 기금이나 그동안 의협 산하에 병존하던 ‘의료배상 공제회’의 잉여금 등을 합쳐 소위 통합 회계를 통해 재무 상태를 평가함으로서 회원들의 회비로서 집행되는 고유목적 사업상의 막대한 적자, 그리고 단 한 푼도 예치돼 있지 않은 수십억에 달하는 직원들의 퇴직 적립금, 기채 발생에 따른 부채 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외형상 재정적 건전성이 확립 된 듯한 모양을 보여 왔다.


이는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꺼려 왔다.


대한의사협회의 재정적 위기 상황을 모르는 회원들은 의협에 대한 요구 사항에 있어서도 방향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의협은 명분조차 찾아 볼 수 없이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과거 10여 년간을 모든 집행부는 오로지 ‘폭탄 돌리기’ 식으로 무책임하게 임기를 끝내 온 것이다. 대정부 투쟁도 좋지만 존립할 수 있는 재정 건전성의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상임이사진도 최소한 시도의사회의 회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해 회계 및 회무 파악에 충실을 기해야 할 것이다.

 

“힘없는 투쟁은 하지 말라”
투쟁의 동력은 회원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회원들에게 강요하는 투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의사협회는 구성원들의 직역에 따른 각기 다른 요구 사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좀더 심하게 말하면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곧 적으로 돌리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3류 정치집단들의 저급한 행위가 여과 없이 그것도 매우 어설프게 고스란히 이입돼 있다.


이러한 구성체의 특징은 외부로부터 자극이 가해졌을 때 혼연일체가 되어 대처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내부적 이합집산을 통해 서로를 헐뜯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투쟁을 통해 구성원을 하나로 만들고자 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견이 모아졌을 때 투쟁을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성원들의 화합이 투쟁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화합을 위해서 직시하여야 할 대상은 의협에 무관심한 회원들이다. 이런 회원들이 볼 때 의협 집행부와 집행부에 대항하여 격론을 벌리는 회원들 모두가 자기들만의 잔치로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원들의 상당수가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데 의협의 동력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정관은 무서운 것이다”
의사들은 본연의 업무가 아주 특수하고, 항상 위험이 동반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의 일반적 원칙과 기본적 규약에 익숙하지 못한 면이 많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일정한 권한이 주어 졌을 때 곧잘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회장을 위시한 집행부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대 원칙이 쉽게 무시당하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 의협 집행부의 구성원들이 인격과 권위를 갖은 자연인 이라면, 대한의사협회는 구성체로서 인격을 갖고 있는 법인이며, 법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인격의 주체는 정관이다. 자연인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 상호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기본 질서라면, 법인 인격도 항상 존중돼야 하며 자연인에 의해 파괴돼서는 안 된다. 


정관은 구성원에 의해 개정 될 수는 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특정 집단에 의해 무시되거나 파괴돼서는 안 된다.

 

“국민 신뢰받는 의협되도록 노력 필요”
과거와 같이 의사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 받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나 존경은 못 받더라도 신뢰는 회복해야 한다. 그동안 의사들은 국민을 상대로 투쟁을 벌려온 경향이 있다.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의사들의 모습은 가진 자들, 독선적인 사람들, 권위에 빠진 사람들, 지독한 이기주의자들 이라는 잠재의식에 따른 허상 뿐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편견에 대해 의사들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잘못된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때로는 행동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머릿속에 깊게 드리워진 영상은 계속해서 지워지지 않는 잔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의사들은 소탐대실의 어리석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 동원 해서라도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들로부터 역시 의사들은 다르구나 하는 긍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뼈를 깎는 자기 성찰, 그리고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대정부 투쟁에는 회원들의 단합된 힘이 기본이지만 국민들이 의사, 의협의 편이 된다면 이미 성취한 것이다.


의협 집행부의 마음속에는 항상 회원들의 입장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항상 국민들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병존해야 한다.

 

“전문가 단체로서의 사회적 기여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는 분명 아주 특별한 전문가 단체다. 과거에 전문가 단체는 사회적으로 권위를 갖고 대접 받는 위치에 있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전문가다운 지혜로서 모든 역량을 이 사회와 국민들을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아주 충실해야 한다.


국가 사회와 국민들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스스로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국민 신뢰의 회복에 기여 할 것이며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그동안 의협의 대정부, 대국회 활동은 아주 수동적이었다. 의사들을 압박하는 비합리적인 정책이나 입법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면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읍소하고 달래는 형식이 대부분 이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행동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원칙은 의협이 주체가 돼 능동적으로 정책과 대안을 제시 할 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낚시 밥에 놀라서 허덕거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넘어야 할 높고 높은 준령에 둘러싸인, 첩첩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토끼 같은 모습이 오늘의 대한의사협회라고 말하고 싶다.

 

이 현실을 뛰어 넘어야 하는 것이 새 집행부의 크나큰 과업일 것이다. 아울러 의협 회원들도 극심한 냉소주의에서 스스로 탈출하여야 하며, 지극히 일부 회원들의 매우 지나친 자기주장도 이제는 과감하게 거둬들일 줄 알아야 한다. 지나친 자기주장은 선량한 많은 회원들을 매우 피곤하게 하고 있다. ‘악화는 항상 양화를 구축’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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