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키라고 하는거 그런데 왜 안될까
보건의약계 분야 대내외 협의·합의 등 실제 이행여부·체감도 얼마
2014.09.04 20:00 댓글쓰기

[기획 上]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 간에 잘 지켜져야 사회가 원만하게 돌아간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로마시대의 격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본 원칙이 되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창간 12주년을 맞아 의료계 안팎에서 이뤄지는 ‘약속’에 대해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더불어 데일리메디도 보건의료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초심을 기억하며 정론지로서 독자들과의 ‘약속’을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이다.[편집자주]

 

의료계 안팎을 둘러싼 약속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약속의 당사자는 정부와 의사, 정부와 약사가 될 수 있고 각 이익단체와 소속된 회원이 될 수 있다. 때론 같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약속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약속을 한 사람이 그것을 어기게 될 때는 부당함, 불만족, 더 나아가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특히 약속을 어긴 이유가 정당치 않다고 판단될 때 이러한 반응은 더욱 강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개인 사이, 조직과 국가, 자신이 속한 그 어떤 조직에서든 일어난다. 의료계 역시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약속
정부가 먼저 어겼나, 의협이 먼저 어겼나. 팽팽하고도 지루한 싸움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 해묵은 감정은 역사(?)가 길다.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이 두 기관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함에 있어 뗄 레야 뗄 수 없는 기관이다. 하지만 서로 간 불신은 지금, 극에 달해 있다.

 

여기에는 누가 먼저 약속을 어겼느냐라는 원초적 질문에서부터 비롯된다. 최근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의정협의 사항을 사이에 둔 의협과 복지부의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못해 끊어질 지경이다.

 

올 초부터 줄기차게 의협과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치열한 논쟁을 벌여 결과물을 얻어냈다. 수 차례 논의를 거듭하면서 의협과 정부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시범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키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난제들과 역사상 최초 회장 불신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맞물리면서 현재는 무산된 상태다.

 

복지부는 먼저 약속을 백지화시킨 쪽이 의협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결국 복지부는 의료계가 당초 ‘약속’한 원격의료 공동 시범사업 합의를 어겼다며 단독으로 원격모니터링 중심의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한 상태이며 당장 이달부터 돌입하겠다는 복안이다.

 

복지부는 이후 원격의료 시범사업 무산으로 지난 3월 의협과 정부가 합의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개편 등 38개 과제 추진도 모두 잠정 중단하겠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반면, 의협은 범정부 차원의 투자활성화 대책 방향에 맞춰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작부터 복지부가 먼저 약속을 어겼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할 당시, 의협은 2차 의정협의에서 도출된 ‘선 시범사업 후 입법’이라는 합의사항에 어긋난다며 맹비난했다.

 

의협은 “정부가 또 다시 국민을 속였다. 법을 먼저 만들어놓고 시범사업을 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복지부는 이미 3년 여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했고, 효과도 없고 경제성도 부족하다는 결과를 얻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급기야 의협은 총파업을 위해 재차 시동을 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들고 나왔다. 의협은 “투자활성화 대책에 대해 국민 뿐 아니라 전문가와도 소통하지 않는 대표적인 불통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양측의 불신감은 원격의료 시범사업 등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수술 중단 사태까지 불러일으켰던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한안과의사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을 포함해 의료계가 진료 중단까지 선언케 한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에 대해 정부는 ‘선 시행·후 보완’을 의료계에 약속했지만 의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행히 희망의 끈은 있다. 실례로 김장흡 산부인과학회 포괄수가제 특별위원장은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에 앞서 정부는 산부인과에 한해 시행 이후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제도를 수정·보완키로 약속했다. 최근 그러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의정협의 사항 중 물리치료기준 산정과 관련한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요양급여비용 부당청구를 사전에 예방하고 의료기관 단위의 총량을 심사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각각 시행해 온 자율시정통보제 및 지표연동관리제가 통합, 의료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의협 신현영 홍보이사는 “두 제도가 일원화 된 것은 의정협의를 통한 첫 번째 수확으로 환영하지만 정부는 다른 합의안의 조속한 이행을 위한 의정협의를 재개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식약처와 의료기기업계 약속
‘맞춤형’ 규제 개선 약속 위해 귀 열어두는 식약처

 

의료기기 분야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업계의 쟁점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로 압축될 수 있다. 규제완화 수준을 놓고,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 안전성 강화를 이유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을 국무총리실 직속 ‘처’로 승격시켰다. 가장 큰 표면적인 이유는 불량식품 척결을 위시한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였으나, 사실상 의료기기도 식약처가 주무부처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식약처 정승 처장은 지난 2013년 의료기기의 날 행사에서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현 박근혜 정부는 정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며 “식약처는 의료기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승 처장은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매년 15.4%씩 성장세를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어왔다”며 “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인 의료기기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즉, 규제완화를 암묵적으로 공언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졌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규제완화 정책 방향이 다소 수정됐다.

 

식약처는 제도적 절차의 경우 규제를 풀어나가겠지만, 안전성·유효성 관련 정책은 더욱 까다롭게 심사하겠는 방침을 발표했다.

 

정승 처장은 올해 의료기기의 행사에선 “의료기기는 무엇보다 안전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사람 몸에 이식하는 위험도가 높은 등급의 의료기기는 철저한 추적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식약처로 승격된 지난해와 다른 방향으로 정책이 개선되고 있는 것 아니냐 라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중소기업의 비중이 절대적인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여건을 고려했을 때 규제완화 정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A사 관계자는 “합리적인 규제 개선을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식약처”라며 “세월호 사고로 청와대의 정책 기조가 바뀜에 따라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안전성 강화 정책이 도입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임상시험 강화”라며 “최소 1년, 1억 이상이 드는 임상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국내 제조사는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B사 관계자는 “국민의 안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업계 종사자들이 잘 알고 있다”며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행인 점은 식약처도 업계의 의견을 공감해 올해 첫 의료기기 소통포럼을 마련했다는 부분이다.

 

식약처 안전평가원 왕진호 원장은 “의료기기 규제환경 변화에 있어 업계의 의견을 십분 수렴하기 위해 이와 같은 포럼을 열게 됐다”며 “2020년 의료기기 7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정부와 업계가 합심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C사 관계자는 “국제 기준에 발맞춘 제도 개선에 있어 모든 규제를 풀어달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라며 “단, 우리나라 산업 태생과 분위기에 맞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요청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