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어르신 건강에서 가족 관리까지 '방문간호'
의료인·간호사 '환자 돌봄 환영'…시행 의무화·횟수 등 과제
2014.10.16 07:14 댓글쓰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몰리더니 결국 비가 퍼부었다. 지난 9월 4일 경기도 남양주 ‘케어링핸즈’의 오현주 방문간호사는 궂은 날씨에도 자동차를 몰고 치매어르신 댁을 찾았다.


금년 7월부터 장기요양등급체계가 확대 개편되면서 정부는 경증치매환자에게도 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5등급(치매특별등급)’을 신설했다.


장기요양서비스 중 의료인인 간호사가 실시하는 ‘방문간호’는 치매환자 자택에서 전개되는 간호활동으로 대상자에게 전문적인 간호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방문간호를 상징하는 하얀색 자켓을 입은 오현주 간호사는 올해 초 실시된 ‘2차 치매특별등급 시범사업’ 때부터 치매어르신을 돌봐왔다.


▲ 면밀한 신체상태 확인 숨겨진 질환 발견하기도


경춘선 금곡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30분가량을 달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여든의 나이에 접어든 박옥희 할머니가 사는 집이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이른 추석에 찾아온 딸을 반기듯 박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반겨준다.


사실 박 할머니가 오 간호사를 반기기까지는 지난 2월부터 꾸준히 이어온 방문간호의 역할이 컸다.


처음 방문간호를 시작했을 때 박 할머니 건강상태는 경증치매라고는 하지만 20~30분 전에 인사한 오 간호사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상태였다.


오 간호사는 “집을 방문해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병원에 모셔가려고 자동차에 올라탔더니 할머니께서 아까 간호사가 왔다갔다고 말하더라”며 “작년에 치매진단을 받았지만 약을 제 때 못 챙겨먹어 영양상태도 안 좋고, 인지훈련 역시 전혀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인지기능검사(MMSE) 점수 상으로도 방문간호 시행 전에는 10점을 기록했지만 건강관리와 인지훈련 등을 진행한 방문간호 덕분에 8개월이 지난 현재는 15~17점으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혼자 살고 있는 박 할머니는 옆에서 돌봐주는 가족이 없다보니 낙상 등의 위험에 처해도 신체에 무리가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큰 문제다.


오 간호사는 “어느 날 두통을 호소해 병원에 갔는데 잇몸 진통소염제만 처방받았다”며 “이후 얼굴이 새파래졌다는 이웃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야 10일 전에 넘어진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밝혔다.


넘어진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환자들의 경우 신체 이상증상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하는데 독거어르신인 박 할머니에게는 오 간호사가 이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박 할머니 이외에도 화장실을 2시간에 6번가량 가는 한 치매어르신의 상태를 이상하게 여겨 소변검사를 했더니 염증수치가 비정상으로 나와 약을 처방받은 사례도 있었다.


실제 치매환자들의 경우 당뇨, 고혈압 등 복합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보호자들은 이상증상이 나타나도 치매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문간호사들은 매번 혈압, 혈당, 대·소변, 식사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다.


오 간호사는 “보호자, 요양보호사, 간호사 등 각각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르다”며 “간호사의 경우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투약관리, 질병관리 등을 담당할 수 있는데 이는 치매환자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 죽고 싶다던 보호자, 치매 질병인식으로 태도변화 유도

 

방문간호사라고 해서 환자를 돌보는 데만 역할이 그치는 것이 아니다. 치매라는 질병의 특성상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 교육, 상담 등을 시행하는 것 역시 방문간호사의 역할이다.


두 번째로 방문한 일흔에 가까운 안소자 할머니 댁은 치매증상으로 망상증과 공격성을 보여 보호자인 배우자가 동반자살까지 고려할 만큼 위기가 극에 달했던 케이스다.


오 간호사가 첫 방문하던 날 보호자는 치매 아내를 살해한 70대 남편이 징역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의 기사 스크랩을 건내며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말끝마다 싸움을 하다 보니 약을 챙겨먹지 못한 상태의 할머니는 ‘바람을 핀다’, ‘속옷을 훔쳐갔다’ 등의 거짓말로 배우자를 자극하는 악화일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방문간호 첫 한 달 동안은 할머니에게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여 공격성을 줄이는 것이 시급했다. 더불어 보호자가 치매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배우자를 ‘환자’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태도개선도 함께 진행됐다.


보호자 스스로도 “처음에는 ‘나한테 저 사람이 왜 저러나’, ‘내가 뭘 잘못했나’ 원망밖에 안 들었다”며 “방문간호 이후 ‘아 이 사람은 환자구나’라는 인식이 되고나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지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환자가 공격적으로 변하면 손목을 잡고 대항하던 보호자가 이제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고 한 번 더 참으려고 한다는 것이 오 간호사의 증언이다.


보호자는 “어떻게 대처할 줄을 모르니까 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집에 와 환자를 대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대처 방법을 배웠다”며 “이제는 화가 나다가도 ‘환자랑 싸워야겠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바뀐 것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오 간호사는 보호자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와도 환자 정보를 공유하며 필요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매일 오후 3~4시에 방문하는 요양보호사가 인지훈련을 해도 집중력이 쉽게 떨어진다고 호소하자 오 간호사는 “당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다”며 “달달한 음료수 등을 조금씩 마시게 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방문간호 30일 이내 4회이상 이용 의무화 필요”


사실 오 간호사가 이 같은 치매환자와 가족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는 일주일에 1번 가량 방문간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방문한 두 가정 모두 2차 치매특별등급 시범사업으로 연계해 온 곳으로 본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30일 이내 방문간호 4회 이상 이용 의무화 모델이 적용됐다.


반면, 7월부터 시행된 본 사업에서 방문간호는 월 1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고 명시됐다. 


오 간호사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박 할머니와 같은 경우 한 달에 한 번 방문해서야 간호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아마 수차례 방문을 하더라도 간호사를 알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토로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치매환자의 신체 이상 징후를 살펴 숨겨진 질환을 발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간호사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안 할머니 댁과 같이 방문간호를 통해 보호자의 인식개선을 이끌어내기 까지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한 달에 1회 시행으로는 보호자로서는 실효성을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현주 간호사는 “병원과 달리 방문간호의 경우 환자를 면밀히 관찰하고 간호사가 직접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잡아내고 케어해 줄 수 있다는 전임간호가 보람으로 다가왔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월 1회 방문간호를 시행해서는 과연 이 같은 간호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 역시 집안에 의료인이 자주 방문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 준다는데 안심하는 경우가 많다”며 “방문간호가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범사업과 같이 한 달에 4회 이상은 의무화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방문간호 활성화에 적극 공감하고 있는 간호계에서는 그동안 방문간호가 의무사항이 아니란 점에 비판을 제기해왔다.  

지난해 말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 주관으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양숙자 이화여대 간호학부 교수는 “방문간호의 경우 권장 의무사항이 아닌데다 케어플래너마저 없어 이용자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노인장기요양에서 의료서비스인 방문간호보다는 재가생활서비스를 이용하는 경향이 더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양 교수의 지적대로 노인장기요양에서 방문간호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비 지급에 따른 급여이용 현황'에 따르면 전체의 0.5%에 불과한 상황이다.


방문간호사회 관계자 역시 “방문간호를 의무화하지 않으면 대상자들이 지금과 같이 방문요양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주1회 의무화를 통해 방문간호 영역을 보장해줘야 노인장기요양의 간호사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가 확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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