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오지서 꽃 피는 '한국 인술'
고통 속에 피어난 한 땀 한 땀 희망의 꽃 전해져
2013.06.16 20:00 댓글쓰기

한여름의 베트남을 달군 뙤약볕 아래, 수술실 앞 부모들의 품에 안긴 아이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두려움이 담겨 있다. 부모들이 아무리 달래보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 모른다. 지난 6월1일 베트남 중부 빈딘 지역의 병원을 찾은 ‘세민얼굴기형돕기회’. 단장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 교수는 40여명의 의료진과 함께 기형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18년째 펼치고 있다. 그들을 동행 취재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들에게 미소를”

 

"닥터 타이, 여기 와 보실래요?"

 

2일 빈딘 병원 1층 수술장. 백 교수의 말에 이곳 병원 의사인 타이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백롱민 교수가 첫 구순구개열 환자의 수술을 직접 진두지휘한다. 이 환자는 입 천장이 갈라진 10대다. 백 교수는 접합 부위에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서 떼낸 살을 이식했다.

 

구순구개열(cleft lip and cleft palate)은 선천성 기형의 하나로, 입술(구순) 및 입천장(구개)을 만드는 조직이 적절하게 붙지 못하거나 붙었더라도 유지되지 않고 떨어져서 생기는 입술 또는 입천장의 갈림증이다. 흔히 ‘언청이’ 라고 불린다.

 

이 아이는 입천장이 벌어진 채로 태어났지만 부모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없다. 수술받을 형편은 고사하고 그가 사는 곳 주변에는 수술해 줄 병원이나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롱민 교수는 이러한 부모들의 마음을 알기에 수술 후 밝은 모습을 찾게 해주기 위해  집중, 또 집중했다.

 

백 교수는 “얼굴 기형을 가진 환자들은 대부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얼굴을 가진 어린이들은 마음의 상처로 웃음을 잃은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형외과 전문의가 없어 항상 한국 의료팀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소개했다.

 

 

 

3000여명 얼굴기형 아이 수술…"백롱민 교수, 한국의 슈바이처"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우리나라 성형외과의 살아 있는 전설 백세민 박사가 주축이 돼 선천적 얼굴 기형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주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1989년 전국 순회 진료를 통해 국내의 얼굴 기형 어린이 환자에 대한 무료 수술을 시작한 이래 1996년부터는 베트남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18년째 계속 되고 있는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사업에서 현재까지 새 삶을 찾은 200명의 어린이를 포함 총 3200명의 아이들이 미소를 찾았다.
 
백롱민 교수는 백세민 박사의 친동생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베트남과 몽골 등지에서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운다. 특히 의학계에서는 구순구개열 수술 분야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9년부터 국내 어린이들 위주로 활동을 해 오다가 법인이 결성되면서 조금 여력이 생겼다. 그 때 국내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해외로도 눈을 돌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백 교수는 “베트남 의료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열정과 봉사정신을 가지고 수술에 임해준 한국 의료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베트남 아이들에게 희망의 미소를 찾아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에도 이에 동참하려는 의사들이 늘고 있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IMF 때는 정말 힘들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기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베트남 활동을 후원하던 SK텔레콤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지원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떠올렸다.

 

수술장비 빈딘병원 기증…현지 의사에 한국 의술 전수 

 

사실 매번 의료봉사에서 의료진은 입국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쉼 없이 강행군을 선택해 왔다. 200명 정도 수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7일 동안 머무를 경우 하루에 30명씩 수술을 해서다. 밤늦게까지 수술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압구정YK성형외과 김용규 원장은 “베트남은 의료 수준이 낮고 임신 중 약이나 음식을 잘못 먹어 선천적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다. 경제성장이 된 나라야 발전하는 수술이다. 먹고살기 힘든 저개발 국가에서는 이런 투자를 할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용규 원장은 “한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구순구개열 수술의 경우,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1년 사이에 모두 치료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몽골,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도 어린 나이에 수술할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번에도 치료 시기를 놓쳐 30대까지도 고통을 받는 환자가 있었다. 봉사팀은 현지 의료기관에 수술 장비와 물품을 지원하고 한국 의료진의 앞선 기술과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지 의료진이 얼굴기형 수술을 직접 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이번에도 8일간 200여명의 구순구개열을 비롯한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수술하고, 수술에 사용한 마취기·심전도 등 수술 장비와 소모품을 현지 빈딘 병원에 기증했다.

 

백롱민 교수는 “매년 하는 의료봉사이지만 실제로 수술 혜택을 받는 어린이들은 일생에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된다”며 “저개발국가 의사들에게 선진 의료기술을 전수해 더 많은 안면기형 어린이들이 수술받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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