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하듯 강압적 태도 다반사'
공단·심평원, '의료기관 현지조사' 등 빈번…의료계 곳곳서 강한 불만
2013.07.23 12:00 댓글쓰기

[기획 3]어떤 분야에서나 ‘갑을 관계’는 존재한다. 제약회사와 환자 등 사회적인 위치에 있어 의사는 항상 갑일 것만 같지만 을의 입장인 경우도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현지 조사원들에게는 그렇다.

 

이들은 의사가 적정진료를 하고 있는지 부당한 청구는 없었는지를 현장에 나가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사원들은 의사에게 협박과 강요 등 압수수색을 하는 듯한 강압적이거나 고압적인 태도로 갑의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공단과 심평원이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이유로 급여기준에 따른 엄격한 심사와 급여비 지급을 원칙으로 내세워 빈번한 급여비 삭감과 현지조사 등을 통해 의사와 의료기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종종 드러나고 있다.


건보공단 경인지역 본부 소속 모 직원은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현지 확인을 이유로 관내 A의원을 3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건보공단 직원은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을 준수하지 않고 A의원에 사전 통보나 동의절차 없이 방문해 진료를 방해했다.


또 A원장이 자료 제출 의도가 분명하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출을 거부한 것처럼 몰아갔다.


건보공단 직원은 A원장의 자료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리베이트조사·세무조사·검찰조사 등을 받게 하겠다”고 협박하며 부당청구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지난 2012년 9월 B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가 검사비 등을 문제로 심평원에 민원을 제기,  심평원은 지난 1월 B의원에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심평원 한 직원은 B의원 의사에게 “삭감되든, 안되든 무조건 보험으로 검사하고 아니면(그게 걱정되면) 아예 검사를 하지 마라”,  “당신 같은 일개 의사가 말해봐야 소용없다”,  “검사 안 해서 환자 잘못되면 병원이 책임져라” 등의 발언을 했다. 


이를 참지 못한 B의원은 심평원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직원의 불친절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몇몇 심평원 관계자가 B의원의 민원 철회를 요구했지만 병원이 응하지 않자 심평원은 삭감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B의원은 “평소 2~3만원정도 삭감하던 초재진 산정과 야간가산 착오, 상병누락 등을 지난 1월부터는 수십만원씩 삭감했다”면서 “보복삭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B의원에서 임의 비급여가 확인됐고, 검사비용 청구가 동일규모 표시과목 의료기관의 평균치 보다 약 2배 정도가 높은 경향을 보여 정밀심사 대상에 포함됐다”고 해명했다.


또한 심평원은 “1회 내원해 다종검사를 실시하는 진료경향을 보여 의학적 타당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심사위원의 전문의학적 자문을 받아 처리한 건으로 보복 삭감은 전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공단, 심평원의 현지조사를 대비하려는 의료기관들이 많다. 최근 노인병원협회는 100명을 대상으로 현지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특강 자리를 마련하고 접수를 받았다.


하지만 특강에 참석하려는 신청자가 쇄도하며 공지한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마감이 끝나 버렸다. ‘선착순’이란 접수방식을 감안하더라도 병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추가 신청 문의가 쇄도하자 협회는 동일한 내용으로 하루 더 특강 자리를 마련키로 하고 접수를 받았으나 이마저도 순식간에 정원을 채웠다.


요양병원협회 관계자는 “현지조사에 대한 요양병원들의 관심도를 방증하는 결과”라며 “병원들 입장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양병원들의 이런 예민한 모습은 ‘현지조사=환수처분’이라는 인식에 기인한다. 즉, 걸리면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감의 발로인 셈이다.


실제 심평원의 지난해 상반기 진료비 부당청구 관련 요양기관 현지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10곳 중 8곳이 부당기관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조사는 곧 처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지실사 부당” 소송 불사하는 의료기관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김덕진 회장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처벌을 받는게 마땅하지만 최근 요양병원 대상 현지조사는 다분히 의도성이 드러나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덕진 회장은 “더 이상 예전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지조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비를 철저히 하는 한편 법리적 검토를 통해 그 당위성을 따져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렇게 부당하게 현지실사를 받아온 의료기관들은 급기야 소송을 하기에 이른다.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의뢰서를 받지 않고 진료해줬다는 이유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병원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도 있다.


인천 소재 C병원은 보건복지부가 부과한 7000여만 원의 과징금이 부당하다고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C병원은 2010년 4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받은 현지조사에서 일부 수급권자가 의료급여의뢰서 없이 내원해 진료를 받았음에도 의료급여기금에서 부담토록 청구하고, 원외처방에 따른 약제비를 의료급여로만 표기해 약제비를 청구한 사실이 적발돼 7000여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재판부는 의료급여법 시행규칙에 따라 희귀난치성질환자나 장애인, 도서·벽지 등 지역 의료수급권자가 의료급여를 받고자 하는 경우 1차 의료급여기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2차 기관에 신청할 수 있는 점을 들어 처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의사 손을 들어줬다.


최근 감사원이 공단과 심평원 감사에서 “두 기관은 현지확인, 현지조사 단계에서 일선 담당자가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하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해 업무의 신뢰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감사원은 특히 “현지확인·조사의 경우, 대상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선정돼야 하는데 합리적인 선정기준을 벗어나 자의적으로 선정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공개했다.


이런 갑의 횡포에 대해 의료계는 "현지조사는 적법성에 문제가 있으며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등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요양기관 현지조사는 명확한 시행령이 없고 현지조사 지침에 따라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에 대한 현지조사가 기본적으로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성격을 띠고 있어 조사공무원에 의한 인권침해 등 권한 남용이 우려되며 이와 관련한 처벌규정이나 대항력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의료계와 정부의 불편한 갑을 관계도 조사기관 업무태도 개선을 통해 청산돼야 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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