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 못하는 수가인상…상대가치 수가제도 파행
'기피과 지원금 사용처 정확한 관리 등 안되면 악순환 반복'
2013.08.06 12:04 댓글쓰기

[기획 2-2]사실 흉부외과 및 외과와 함께 최근 대표적인 전공의 기피과로 여겨지는 산부인과도 지난 2010년에 이어 올 초, 또 다른 수가 인상 진료과로 낙점됐다. 과연 흉부외과, 외과와 달리 정부 정책의 실질적인 ‘수혜자’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앞서 2010년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분만수가 50% 인상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 행위 급여·비급여 목록표 및 급여 상대가치점수 개정안’을 의결한 바 있다.


올 1월 복지부는 또 한 번 결단을 내렸다. 분만이 적어 병원 운영이 어려운 산부인과는 분만 건수에 따른 가산을 적용해 병원이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골자는 1년 동안 분만 건수가 200건 이하 기관(자연분만, 제왕절개 포함)의 자연분만 건수에 대해 200%(50건 이하), 100%(51~100건 이하), 50%(101~200건 이하) 수가 인상분을 평가 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에 복지부는 최근 ‘분만수가 가산지급 시범운영 지침’을 고시하고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시범운영 기간은 2013년 3월부터 2014년 3월까지 1년 간이다.


현재의 분만 수가로는 적자를 면할 길이 없고 최소한의 수가인상도 없이 의료사고 위험을 감수하라면 누가 나서서 분만을 받겠느냐는 데 정부, 학계 모두 중지를 모은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분만수가 가산지급 시범운영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부 지원 정책”이라며 “산부인과의 경영난 고충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분만수가 인상, 산부인과 활로 열기엔 턱없이 부족"


이번 분만 수가 인상에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활짝 웃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연간 분만건수 50건 이하의 기관이 분만실 운영이 가능하겠냐며 실질적인 혜택을 보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암 교수는 “분만수가 인상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네 산부인과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취지가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역시 “저출산 기조와 만성적 저수가 등으로 인해 산부인과가 존폐의 기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대책이나 문제 해결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분만을 위해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이 24시간 대기해야 하는데 이들의 인건비를 대기에도 역부족이다. 취약 지역 의원 중엔 한 달에 한 번 분만하는 것도 힘든 경우가 있다. 수가 인상으로 폐업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정재 교수는 “결국 상대가치를 활용한 건강보험 수가체계의 왜곡과 진료과목 간 심각한 불균형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소 시각차는 있지만 가입자단체의 반발이다. 이들은 분만수가 일괄 인상안 철회까지 촉구했다.


이들은 “건강보험 수가를 일률적으로 인상해 대형병원의 수익만을 확대하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수가 인상분이 취약 지역 산부인과가 아닌, 도시 대형병원으로 모두 흘러들어가 오히려 산부인과의 양극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570억원의 추가 재정 가운데 농촌 산부인과에 지원될 금액은 100억원도 안될 것”이라면서 “의료 취약지역의 분만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라면 차라리 건강보험 재정의 일부를 떼어 ‘분만 취약지역 지원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낫다”는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지난해 외과·흉부외과 수가 인상에 이어 복지부가 계속적으로 편법적인 수가인상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이는 수가협상을 무력화시키고 국민 부담을 부당하게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분만수가 인상도 고스란히 삼각 갈등으로 직결됐다.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가입자,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며 아우성을 치는 산부인과, 그리고 정부의 줄다리기가 재현됐다. 흉부외과, 외과 수가 인상 사태와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면서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정책이 또 한 번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지원 정책의 일환인 수가 인상을 두고 정작 일선 현장의 의사들 시선이 싸늘하다는 측면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수가 인상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동시에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실 관계자는 “지원 기피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실시된 외과 및 흉부외과 수가 인상 혜택이 실제 해당과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수익 보전에 그친다면 전공의 지원 기피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복지부는 본질을 다시 확인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내세워야 한다”며 “특히 흉부외과, 외과 수가인상분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계속 주시해야 하고, 정책 시행에 따른 효과가 반감되지 않도록 복지부가 철저한 사후관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가 인상 폐지 움직임과 관련해서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영태 과장은 “당장 월급을 얼마 올려준다고 해서 진료과 지원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긍정적인 요인은 있었다고 본다”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체감도’가 가장 큰 전공의들의 목소리에는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여겨진 수가인상분의 사용처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조속히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전공의협 차원의 설문조사를 통해 현실이 명백히 밝혀진 만큼 전공의들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공의 지원 기피과에 대한 대책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해당 과의 미래에 대한 안정성 등이 영향을 미친다”며 “수가인상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지원책이 지속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분만수가 가감 사업이 시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완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개원특임위원회 김숙희 위원(김숙희 산부인과)도 “분만수가 인상, 마취초빙료 현실화, 질강처치료의 적절한 수가 인정 및 횟수 제한 철폐, 요양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 차등 등급제 폐지, 자궁질도말세포검사 채취료 별도 수가 산정, 폐경기질환 만성질환 관리료 인정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 김태현 정책국장은 “분만실과 산부인과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출산 건수를 맞출 수 없는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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