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벌제 후 의·약계 도처 '시한폭탄'
일각 '리베이트 관행 아직도 여전' 주장 속 전반적 감소 경향
2013.01.22 20:07 댓글쓰기

[기획 3]지난 2010년 11월부터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로, 이제는 의사와 제약사 모두 법적 구속력을 받게 되면서 최근 연일 터져 나오는 리베이트 사건들이 과거에 비해 더욱 주목받는 모습이다.  ‘성범죄’, ‘절도죄’, ‘사기죄’ 등에 대한 강력한 법 규정 아래서도 터져 나오는 범죄들이 수만 가지인 상황에서 과연 의약계 리베이트가 철퇴될 수 있을까.


실제 의원 밀집지역인 서울 강남지역 등의 경우 리베이트가 사라지고 있다는 업계 전언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모 유명 종합병원 원장이 교수들에게 영업사원과의 만남을 자제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등 업계 리베이트 환경은 점차 축소돼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선에서 의사가 먼저 리베이트를 요구하거나, 직접적인 현금 제공 대신 다른 방식으로 법망(法網)을 피해가려는 제약사들도 잔존했다. 이들의 경우 정부의 리베이트 척결 의지로 시행한 일괄 약가인하에 따라 매출 타격이든, 리베이트 수사망에 걸리든 그 피해 규모가 같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이다.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실적 압박과 리베이트 눈치로 이중고까지 겪는 실정이다. 일선 리베이트 현장을 살펴봤다.

 

얼마 전 A제약사 한 영업사원은 다소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그에 따르면, 경기도 소재 모 의원에 의약품 거래를 아무리 요청해도 원장이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최근 이 원장이 “B제약사는 (리베이트를) 이 만큼 주는 데 너희는 얼마를 줄 수 있느냐”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같은 효능의 약을 판매하는 B사의 경우 이 의사에게 처방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영업사원은 “의사의 돈 요구도 그렇지만, B사는 원래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 같은 경우 영업활동을 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실제 돈이 오가지는 않더라도, 영업사원을 마치 ‘종’ 부리듯 하는 의사들도 있다. 일종의 관례가 돼버린 모습이었다.


실제 모 유명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평소 인자하신 교수님이지만 제약사 영업사원에게 심부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키는 모습을 보고 놀랐었다는 전언이다.


그는 “모 교수님이 해외 외국인 교수의 한국 방문 소식을 듣고 갑자기 모 제약사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동안 서울 구경 좀 시켜드려라’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을 서로의 손목에 ‘수갑을 찬 관계’라고 표현한다. ‘사용자’와 ‘공급자’ 사이가 이 수갑으로 인해 끊을 수 없는 ‘갑’, ‘을’ 관계를 성립시킨다는 얘기다. 을의 입장인 영업사원이 교수의 부탁을 거절한다면 거래는 끊길 수 있다. 이 수갑은 이럴 때 작용한다.

 

“쌍벌제요? 현장에선 피부로 와 닿지 않아요”


‘쌍벌제’가 시행돼도 일각에서 여전히 리베이트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부터 시작된 일괄 약가인하로 인한 매출 타격과 리베이트 혐의 적발을 통한 과징금 부과에 따른 피해 규모가 비슷해 리베이트 제공을 안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미 포화된 시장 구조 속에서 경쟁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쯤이면 ‘이판사판(理判事判)’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C제약사 영업사원은 “지금도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쌍벌제 시행 때문에 혐의가 적발될 경우 의사와 제약사 모두 처벌을 받는다는 점이 예전과 달라졌지만, 몇몇 회사들의 경우 그 직전까지의 상황이 과거와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그가 늘어놓은 리베이트 수법은 가지각색이었다. 다만 과거처럼 무식(?)하게 돈 다발을 들이대는 영업사원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에는 몇몇 제약사들이 사과 박스 하나를 병원 등의 주차장에서 의사와 주고받기도 했다. 이 박스에 현금 뭉치를 꽉 채우면 약 1억원이 된다.


골프접대는 지금도 리베이트의 기본 옵션 중 하나로 꼽혔다. 의사가 필드에 나가면 결재는 영업사원 개인 카드로 지불하는 방식이다. 회사로부터 받는 고액 연봉의 일부가 리베이트로 쓰일 금액이라는 업계 다른 관계자의 전언은 이 같은 상황을 가능케 한다. 회사가 미리 영업사원들에게 선(先) 지원하는 형태다.


아울러 의약품 처방 규모에 따라 일정 부분 지원금을 지급하는 형태도 중견제약사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어떤 의원 원장이 A라는 제품에 대해 5000만원 어치를 처방할 경우 제약사가 이에 약 20% 정도인 1000만원을 원장에게 주는 방법이다. 실제 이러한 사례는 수차례 제보 받은 바도 있다.


외부 광고가 필요한 병·의원들의 경우 제약사로부터 광고비를 받기도 한다. C제약 영업사원은 “예컨대 광고비가 100만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병원이 한 제약사의 1개 의약품에 대해 500만원 치를 처방해주면 이 회사는 이에 대한 20%를 선지원금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병원은 딱 100만원의 광고비가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제네릭 제품인데도 불구하고 회사 차원에서 PMS 조사 명목으로 의사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곳들이 아직도 있다는 전언이다. 심지어 뻥튀기 번역료 지급 혐의로 적발된 리베이트 사례까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최근 리베이트 유형은 신(新)·구(舊)를 떠나 모조리 사용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이와 관련해 D사 영업사원의 경우 “특히 중소 제약사들에게 있어 리베이트는 절대 없어질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개원하신다구요? 병원을 만들어 드립니다”


“병원에 있는 인테리어나 엑스레이 기계가 원장님이 직접 마련하신 걸로 아시죠?” ‘선점(先占)’이 중요한 것은 특히 제약산업에서 통하는 말인 듯 했다. 한 가지 약을 처방해온 의사가 다른 약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비단 일관적인 약 처방에 의한 안정적인 고객(환자) 확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약사 영업사원의 노력이 많은 병원들에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한 의원이 개원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선점 전쟁이 시작된다.


다시 C사 영업사원은 “의사들이 개원할 때 규모가 50평 정도인 경우 인테리어 비용을 포함해서 약 3억원 정도가 든다. 갓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의사들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당연히 제약사들이 약품 거래를 위해 개원 과정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병원 장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만약 엑스레이 기계가 1000만원 짜리면 의사가 해당 제약사의 의약품을 5000만원 치 처방을 해주는 것이다. 기계 값의 20%를 지원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제약사들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이제 막 개원하는 의원의 경우 상황을 살펴보고 지원한다는 개념이다.


이 영업사원은 “봉직의가 세미병원이나 개인병원에서 일할 때는 꼬박 꼬박 월급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꾸준히 처방이 이뤄질 수 있지만, 막 개원한 원장의 경우 경영상 불확실성도 있는데다 봉직의 때보다 리베이트를 더 줘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리스크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껏 주변을 보니, 리베이트를 하는 몇몇 제약사들은 정부가 단속할 때만 잠깐 몸을 사리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리베이트를 뿌린다”고 밝혔다.

 

실적 압박 커져가는 제약사들…“무리수 불사”


물론 쌍벌제로 영업사원을 만나주지 않는 의사들도 많이 생겼다. 때문에 거래처 모두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의사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라는 전언이다.


모 유명 대학병원 교수 앞으로 아침마다 ‘샐러드 도시락’이 배달됐었다는 증언은 이를 방증한다. 배달 도시락에 보낸 이가 무기명인 것은 교수에 대한 배려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한 눈에 어느 제약사 영업사원이 보냈는지 알 수 있다는 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제약업계에서 ‘실적’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리베이트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실적 저조에 따라 회사 윗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질타의 목소리까지, 영업사원들은 ‘이중고’를 받고 있었다.


E사 관계자는 “회사로부터 실적 압박까지 내려오면 리베이트를 더 할 수 밖에 없다. 약가인하로 더 심해지는 분위기다. 약가가 감소했기 때문에 기존 매출 선을 유지하려면 약을 더 팔아야 하지 않는가”라며 “중하위권 제약사들은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똑같아서 리베이트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의사가 모 제약사 의약품을 약 1000만원 어치 처방을 해주면, 이 회사는 의사에게 2000만원의 리베이트를 주기까지 한다. 엄청난 적자를 감수해야 하지만 훗날 지속적인 거래를 위해 일종의 ‘단골손님 만들기’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 만큼 제약업계 현실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뭔들 못하겠느냐. 지금은 신약 파이프라인이 없으면서 리베이트를 안 하는 중소 제약사들은 당연히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시장 구조”라고 쓴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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