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물론 의사도 모르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삼성서울병원 오수영 부교수 '선진국 모성사망 주원인 '폐색전증''
2013.02.10 20:00 댓글쓰기

[기획 1]오는 4월 8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가 시행된다. 시행령에 따르면 그 보상 범위는 분만 과정에서 생긴 뇌성마비, 분만 과정에서의 산모 또는 신생아의 사망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이에 따른 피해보상 비용을 의사들이 일부 분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재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기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란 무엇일까. 국민들은 물론 의사조차 전문가가 아니라면 명확히 알기 힘든 의학적 개념이다. 이에 따라 현재 분만 현장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오수영 부교수가 이해를 돕고자 한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대표 사례인 △폐색전증 △태변흡인증후군 △뇌성마비 △양수색전증에 대해 증례 중심으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과 같은 병태생리 : 대부분 하지 혈전이 원인
임신 중 혈전 발생 위험도: 5배 증가
산욕기 폐색전증 발생 위험도: 30배 증가
혈전의 과거력, 가족력, 비만, 제왕절개수술, 불임시술, 고령산모 등이 대표 위험인자
선진국 모성사망 원인의 10% 차지
생활습관 서구화 및 고령산모 증가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증가 가능성 높아

 

증례 : 자연유산의 과거력이 2회 있던 37세, 임신 16주 산모가 집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숨차다고 하면서 쓰러졌다. 산모가 가까운 종합병원에 도착했을 당시는 이미 의식이 소실돼 있던 상태로 심폐소생술 및 기도 삽관 등의 응급처치를 하고 다시 3차병원으로 이송됐다.

 

심장 초음파 검사와 흉부 CT검사에서 혈전이 폐혈관을 모두 막고 있는 중증 폐전색증(massive pulmonary embolism)의 소견이 관찰돼 응급으로 폐혈관 혈전제거수술을 시행했으나 결국 산모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인공호흡기치료를 하다가 8일만에 사망했다.

 

폐색전증

 

폐색전증이란 대개는 하지의 혈관에서 발생한 혈전이 혈관을 타고 올라가서 폐혈관을 막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장기간 비행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질환으로 잘 알려진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으로 인한 사망이 대부분 폐색전증으로 인한 것이다.

 

비행기에서 오랜 시간 좁은 좌석에서 앉아 있는 경우 혈액순환이 더디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신 및 산욕기에 혈전 발생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임신 중 혈전의 발생 빈도는 비임신 상태에 비해 5배 증가하고 분만 후 3개월 이내에는 약 60배 증가한다. 또한 폐색전증의 빈도는 임신 중 2배, 분만 후 3개월 이내에는 30배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위 증례는 임신 기간 중 발생한 폐색전증이지만 분만 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전체 임신 관련 폐색전증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폐색전증의 빈도는 1만명 임신 당 5-12명 꼴로 발생한다. 2000~2006년까지 미국의 모성사망원인 분석에 의하면 폐색전증이 원인인 경우가 전체의 9%를 차지했다.

 

임신 중 혈전색전증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는 이전 색전증의 과거력과 가족력이며 이러한 경우 위험도가 약 25배까지 증가한다. 또한 산모가 비만한 경우 혈전색전증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체질량지수가 30이상의 비만인 경우 분만 전 또는 분만 후 혈전색전증이 발생할 확률이 각각 7.7배, 10.8배 증가한다.

 

제왕절개수술 시에도 자연분만에 비해 혈전색전증 위험도가 3.6배 증가하며 불임시술을 받은 산모의 경우 혈전색전증의 위험도가 4.3배까지 증가하고 산모 나이가 35세 이상인 경우에는 2.1배 증가한다.

 

폐색전증의 증상은 혈전이 폐혈관을 막는 정도가 어느 정도 심하냐에 따라서 위의 증례와 같이 전조 증상 없이 실신 또는 급사를 할 수도 있지만 혈전색전증 또는 폐색전증의 증상으로는 하지 부종, 빈맥, 숨찬 증상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은 정상적인 산모에서도 비특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진단의 어려움이 있으며, 한 연구에 의하면 혈전색전증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있는 경우 실제로 혈전색전증으로 확진 되는 사례가 비임신 상태 시 25%인 반면, 임신 중에는 10% 이하로 낮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기타 폐색전증 증상으로 흉통, 기침, 객혈 등과 같은 비특이적 증상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대부분의 증례에서 저산소혈증을 보이지만 정상 산소포화도가 질환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혈전색전증의 선별검사로 널리 쓰이는 D-dimer는 임신 중에 상승할 수 있으므로 임신부에서 폐색전증의 진단은 쉽지 않다.

 

폐색전증이 의심되면 우선적으로 흉부 X선 검사를 하고, 환기-순환 스캔(V/Q SPECT)을 시행하고, 전산화 단층촬영 폐동맥조영술을 시행하는 수순이 권고된다.

 

폐색전증의 치료는 활력징후가 불안정한 경우 심폐우회(cardio-pulmonary bypass) 및 색전제거술(embolectomy)을 시행하고 활력징후가 안정적인 임산부에게는 헤파린을 투여하는 것이다.

 

결론

 

산후출혈이 개발도상국 모성사망의 주원인이라면, 폐색전증은 선진국 모성사망의 주원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모성사망의 원인 중 폐색전증이 차지하는 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생활습관의 서구화에 따라 활동이 감소하고 비만한 산모가 증가하며, 고령 산모 및 불임환자의 증가 및 쌍태임신의 증가, 제왕절개수술률의 증가 등이 관련되는 바, 앞으로 폐색전증으로 인한 모성사망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혈전색전증 및 폐색전증의 증상이 비특이적인 경우가 많고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반면, 중증 폐색전증의 경우는 임상 경과가 급격하게 진행하는 사례가 많아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되고 예측할 수 없는 모성사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폐색전증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산부인과학회의지침에 따르면 35세 이상의 산모 또는 체질량 지수가 30으로 비만한 경우 등 폐색전증의 위험도가 중등도로 증가하는 산모에서 제왕절개수술을 시행할 때 저분자량헤파린 사용 또는 압박스타킹의 사용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예방적인 조치의 효과가 전향적 연구 결과로써 입증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폐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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