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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은 '대화'…갈등의 골 깊어지만 정부·의료계·제약계 모두 손해
2012.07.31 07:13 댓글쓰기

[기획 6]소송으로 얼룩진 보건의료 정책이 정상궤도에 오르려면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정책을 추진한다고 비난한다. 정부는 의료계가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정 갈등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상 초유의 의료계 파업이 벌어졌고, 이후 정부를 불신하는 의료계 정서가 굳어졌다. 의사단체 임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의약분업 이후의 갈등 구조이다. 최근에는 의료계 핵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보건복지부에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의정 대화는 중단됐다. 의협은 최근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의료분쟁조정법 대불금제도와 관련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실력 행사에도 나섰다. 이러한 냉기류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양측이 대립각을 세울수록 정책은 표류하고 정부와 의료계 모두 손해를 감수하게 된다. 데일리메디는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봤다.[편집자주]

 

의협 “정부, 역지사지 정신 발휘하길”
의정 갈등의 중심에는 의협 집행부가 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탈퇴 선언, 의료분쟁조정법 관련 행정·헌법소원 등으로 정부에 맞서는 모양새다. 의협은 이런 갈등구조에서 정부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공급자를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야 불필요한 소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호 의협 의무이사는 “최근 상황은 정부의 과도한 정책 밀어붙이기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의무이사는 “최근 행정소송이 증가하는 이유는 생각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한 단면”이라며 “정부가 유권해석을 과도하게 적용하고, 지시형 정책을 추진하는 게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무이사는 “관료들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면피용 행정이 소송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며 “정부가 의료공급자를 충분히 설득하면 그런 소송이 일어날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 정신이다. 법령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상대방 입장에서 우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상대방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제도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배려할 사안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 상한선을 넘으면 결국 법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최근 소송이 증가한 이유는 이런 꿈틀거림이 많아진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악법도 법’이라는 법 논리에 앞서 정책 입안자들이 운용의 묘를 발휘해주길 당부한다고 했다. 관료들이 용기를 갖고 정책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도 했다.


이재호 의무이사는 “법대로 하자는 주장은 일면 타당하지만, 합리성을 가장한 폭거로 비칠 수 있다”면서 “그 이면에 보복심이 없다는 점을 의료공급자가 이해하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복지부 “정치적 행동, 신뢰 떨어트린다”
최근 DRG 사태와 관련해 복지부는 전문언론과 활발히 접촉했다. 과거 의협이 만성질환관리제에 강력 반발했을 때 의협을 찾아와 기자단에게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복지부가 여러 차례 간담회를 통해 표명한 대표적인 우려는 의협의 정치적 행보였다.


“의협과 대화하고 싶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을 우려한다”는 인식을 보였다. 의료계가 국민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소송에 앞서 대화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인식은 여러 관료에게서 확인되고 있다.


의사단체 등이 행정소송을 벌이면 관료들은 대체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법원이 정부의 행정권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데다 내부적으로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상장비수가 인하 등 굵직한 정책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부담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복지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행정적 절차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이태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의약계 발전 협의체’를 발족시킨 것도 소송으로 얼룩진 정책 환경으로는 제대로 된 업무가 어렵다는 인식이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태한 실장은 “업계 의견을 듣는 자리”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 행간에는 불편한 정책을 사전에 업계와 대화하고 교통정리 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의약단체들이 정부와의 소통창구 마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실장은 사석에서 “정부는 충분히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서로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합의점을 찾아가다 보면 행정력 낭비도 줄이고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기효 건보공단 정책연구원장 “미래를 봐야”
이기효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장(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은 “정부와 의료계 모두 미래를 걱정하는 자세로 대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DRG를 주제로 한 KBS 심야토론을 예로 들며 “모든 토론과 논의는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어떤 정책이 국민에게 좋을지를 생각해야 문제의 해법이 보인다”며 “DRG를 포함한 최근의 갈등구조는 의료비 억제와 질에 관한 이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사실 의료 분야 종사자들은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과 의료의 질 저하를 막자는 두 가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떤 것이 국민에게 좋을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TV 토론회만 보더라도 아쉽게도 서로 자기 이야기만 했다. 상황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런 극단의 대립이 아니라 의료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세로 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급증하는 의료비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의정 갈등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이 원장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10년 이내에 어떤 식으로든 지불제도 개편이 논의될 것”이라면서 “우리 의료제도가 지속 가능할지 의료 전문가들의 고민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국면이 오래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국민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염두에 둔 상태에서 서로의 고충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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