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좌우하는 중심축 성장 '환자단체'
2011.10.19 21:17 댓글쓰기
[기획 3]작년 10월 회원수만 8만명이 넘는 환자단체 출범이 화제가 됐다. 암시민연대·한국백혈병환우회·HIV/AIDS감염인연대·한국GIST환우회·한국신장암환우회 등 5개 단체가 모여 의료계에 전례가 없던 거대 환자단체가 탄생한 것이다. 공식 명칭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들은 참가단체를 더욱 늘려 외연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혈관질환단체·혈우병환우회·간사랑동우회 등이 참여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만약 이들이 합류하게 되면 회원수 10만명이 넘는 초대형 단체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주목 받는 것은 단순히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이 단체가 환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질병과 의약품에 대한 최신정보를 습득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자는 취지에서 결속된 환우회가 이제는 의료정책 결정의 한 축으로 나서겠다고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의료계, 약계, 정부 및 관련 기관에서는 이 같은 모습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환자단체들이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면서 달라진 위상을 가지고 있던 터라 놀랍지 않다는 시각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실제 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는 부분에 전력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글리벡 이슈 이후 약품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신약 사용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지만 약가 협상까지는 1년 이상 걸리고 있다. 빨리 공급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약가 인하에 대한 부분만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효과가 좋은 약품의 빠른 도입을 요구하면서 제도 보완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우선 약가협상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등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환우회, 의료단체들과 어깨 나란히

최근 환자단체들 활약은 그 어느 시민단체보다 눈부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출범 이전 백혈병 환자들로 구성된 '한국백혈병환우회'는 항암제 글리벡의 가격 결정부터 혈소판 등 혈액을 스스로 구하러 다녀야 했던 문제, 최근에는 한 대학병원의 진료비 청구 문제까지 제기하고 나선 바 있다.

이들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민원 제기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부당청구로 규명한 금액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수천만원대에 달한다. 성모병원 백혈병 진료비 사태로 임의비급여 문제가 새롭게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제약사들은 최근 들어 의사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환자단체인 환우회를 더 두려워 한다. 이는 환우회가 약가 결정에 크나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기적의 약’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며 백혈병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해준 표적항암제 ‘글리벡’을 꼽을 수 있다. 글리벡은 100mg에 2만3044원으로 백혈병 환자 1인에게 투입되는 한 달 약값이 276만원이 넘는 대표적인 고가(高價) 약이다.

환자 및 시민단체들은 지난 2009년 “글리벡 약가가 지나치게 비싸게 책정돼 있다”며 정부에 약가조정신청을 제기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들 단체의 청원을 받아들여 생산사인 노바티스와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글리벡 약가는 결국 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 회부됐다.

문제는 당초 글리벡 약가 문제를 제기한 주체가 바로 환자들이 중심이 된 시민단체라는 점이다. 이들은 “글리벡 약가가 필요 이상으로 높게 책정돼 있어 환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약가인하를 주장했다.

물론 보건복지가족부가 2009년 고시를 통해 14% 인하된 약가를 적용하기로 했던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에 대해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서울행정법원에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수용, 당분간 기존 약가 적용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환자 및 시민단체들이 정부와 제약사 간 약가협상에 압력을 가해 정부가 약가인하를 단행하고 이에 제약사가 불복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수용될 정도의 힘을 발휘했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에 앞서 백혈병환우회, 신장암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는 로슈와 노보노디스크에 의해 이뤄졌던 제약사의 필수의약품 공급 거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환자단체 측은 “비윤리적 약가협상으로 문제를 일으킨 로슈와 노보노디스크는 환자의 생명을 고가의 약가를 받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며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가협상 과정을 전례로 들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가인상 조정신청을 줄줄이 할 것이고 약가협상의 주 무기로 의약품 공급중단 카드를 내밀 것이 우려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이 제약사들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약가 결정에 환우회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거대 환우회의 경우 회원들의 회비 뿐만 아니라 정부를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지원이 되고 있으며,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제약계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정 제약사 이익과 연계?" 오해 사기도

의사들이 특정시술을 실시하거나 예정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환우회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제약사들이 직접 후원에 나서기도 한다.

제약사가 직접 환자단체를 찾아 후원을 약속하는 모습도 보인다. 특정 약품을 사용해주는 환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거나 의약품 홍보 목적이다.

최근 환자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부 폐해가 발생했다. 제약회사가 환자단체를 종용,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보험 등재를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단체는 제약사들의 물질적 도움을 거부하는 약관을 내규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환자연합회는 "제약사들이 환자단체를 움직여 자사 제품의 보험 등재를 노리거나 좋은 약가를 받는 편법을 막는다"는 향후 활동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환자단체의 이 같은 폐해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처방은 의사들이 내리지만 환자들도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한 정보를 알길 원하는 경우가 많고, 때론 먼저 최신 정보를 습득한 후 의사들에게 의약품에 대해 묻기도 한다”면서 “최근 환자단체가 홍보 대상 주요 순위에 오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환우회가 어느 순간 집단적 이익을 위한 이익단체화 됐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특허를 가진 일부 외자사가 약제의 보험등재나 좋은 약가를 위해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는 부분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일부 거대 환우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환우회들이 아직까지 정보교류 및 캠페인을 통한 질환 정보 확대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실제 대다수 환자단체는 정보 교류와 사회적 인식 개선 캠페인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카페 등에서 신약 정보 등을 얻으며, 정기모임을 통해 서로의 처지를 격려하고 있다.

이들과 소통하고 있는 제약사·의료기기업체들도 대부분 사용에서부터 부작용, 장단점 등 정보를 전달해 제품 가치를 높이고 있다. 때론 환자나 그 가족이 호소하는 불편한 부분에서 제품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의료계 "환자단체 정책적 의사 표현 긍정적"

의료계에서는 환자단체의 정책적 의사 표현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의협 한 관계자는 “건정심의 중요성을 감안, 가입자 대표의 한 축을 환자단체에 담당케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건강정책심의위원회 가입자 대표의 경우 근로자·사용자·시민단체·소비자·농어업·자영업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8명의 위원 중 일부를 환자단체에 맡기는 부분이 검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병원계에서는 환우단체의 세진 입김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임의비급여 문제에서부터 최근 세브란스병원 의료사고까지 의료기관의 불법행위 여부에 초점을 맞춰온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복지부 "영향력 끄떡-정책결정 일원 인정은 시기상조"

정부는 환자단체의 활동에 정책 파트너로서 인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다지 민감하지는 않다. “환자들에게 더 좋은 의약품과 최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들의 활동 이유가 정부 정책의 방향성과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때론 유·무형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환자단체의 영향력에 대해 ‘양날의 검’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전반적이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환자단체에서 약가인하나 보장성 강화 측면에서 여론 형성에 일부 역할을 하는 부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 경우 정책 시행까지 수월히 진행되거나 빠른 조정이 가능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면, 건보재정이나 타 질환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정책이 시행돼야 하지만 역동적인 단체들의 무리한 요구나 정치권을 통한 압박 등의 사례도 발생, 정부로서는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는 인터넷 카페나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때론 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환자단체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진데 기인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택의원제 및 건강관리서비스, 연구중심병원과 관련한 성명이 기사화 되면서 국민여론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듯 이들의 다양한 활동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환우회 활동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만은 아니지만 무리한 주장을 펼칠 때도 있다"면서 “이 같은 환우회 활동은 환자들에게 더 좋은 의약품과 최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방향성을 같이하고 있다”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적지 않은 환자단체가 높아진 위상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현재 복지부로선 이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거나 정책 결정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가 마련한 일부 기금이나 산하단체에서 환우회 등을 후원하고 있지만 이는 목적이 없는 순수한 지원"이라며 “건정심이나 급여평가위원회 등의 일원으로 구성하려는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의료환경 급변-환우단체 역할도 달라져야”

지난해 10월 출범, 환자 권익과 이익을 위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현재 설정한 일차 목표는 의료계 내 각종 단체들에게 당당한 파트너로 대우받는 것이다.

안기종 상임대표는 “국회, 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시민사회단체 등과 협력 또는 대립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파트너로서 어떤 정책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현장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 회복에 대한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불친절하다는 불만과 치료비에 대한 항의는 병원에 대한 항의인데 이를 의사들에 대한 불신으로 받아들인다”면서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면 거기서 치료받지 않는다. 어느 곳에 대한 불만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와 병원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병원 측에서 의사들을 동원해 환자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경우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쌓여 상호 간의 불신을 낳기 때문에 한국환자단체연합이 중간에서 완충작용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도 환우단체 역할이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많은 수의 환자단체에서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방문한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단체가 가진 불만과 불평만 호소하고 개선을 요청한다”며 “이 같은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환자 모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부분도 대변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관점에서 환자단체연합회 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책 담당 일원으로의 참여를 서두르기 보다는 의·약계 전문성과 다른 그들이 가진 현실적인 경험에 근거한 활동이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낼 때 위상은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발언권도 강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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