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으로 버텼는데' 흔들리는 CS 전문의들
2011.12.08 03:00 댓글쓰기
[기획 하]많은 병원이 흉부외과 수가 인상분을 당초 시행 취지에 맞지 않는 곳에 사용한다는 사실은 의료계에서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더욱이 갈수록 지원금을 빼돌리는 병원들의 행태 및 수법이 교묘해져 이를 지켜보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병원마다 지원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방법이 다양, 개선해 달라는 요청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소위 봉직의로서 자신들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처지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권을 벗어날수록 심해진다는 게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귀띔이다. 병원 간 경쟁이 수도권보다 덜해 서로 견제하는 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도권 소재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는 참석자들 공히 수가인상 지원금이 편법으로 집행되는 백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거의 성토에 가까웠다. 이들이 탄식한 병원들의 흉부외과 지원금 빼돌리기 행태를 전한다. 또한 암울한 미래로 인해 깊어지는 고민과 가슴을 쓸어내리는 대한민국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절절한 심경을 들어본다.[편집자주]

“올해 초 개원할 생각으로 입지를 알아봤다. 개원에 대한 기대감이나 비전은 없었다. 차라리 개원이나 하자는 마음이었다. 흉부외과 전문의란 사명감과 명예와 뿌듯함으로 살아왔는데 병원을 떠날 생각을 할 정도로 자괴감에 빠졌다.” A병원 흉부외과 과장

“요즘 양복 주머니에 사직서 넣고 다닌다. 곧 제출할 참이다. 힘들게 일하는 후배들을 보면 미안하고, 지원금을 나 몰라라 하는 병원 경영진을 보면 화가 난다. 흉부외과 수가인상 지원 정책은 흉부외과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렸고, 흉부외과 의사들의 자존심을 망가뜨렸다. 하지 않느니만 못한 정책이다.” B대학병원 흉부외과 부장

그동안 열악한 진료 환경과 박봉에도 흉부외과 의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대차게 살아온 흉부외과의 중축인 중년 의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가인상분이 본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중년 흉부외과의들의 사기저하라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C병원 흉부외과 D과장은 “후배들 위해 지원된 금액인데 선배인 우리들이 제대로 끌어오지 못했다. 월급 조금 인상됐다고 좋아하는 후배들보면 안쓰럽다”면서 “월급인상은 춥다고 우는 애한테 사탕 물려준 것처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다. 3년째 의료기기 사준 것 하나 없다”고 지적했다.

D병원 흉부외과 E전문의는 “이제는 흉부외과에 남으라고 후배들을 붙잡지 않는다. 10년이 지난 나도 그들과 같이 당직서면서 라면을 먹고 있는데, 이런 내 모습이 너희 미래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 강도와 비교하면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버티게 한 것은 흉부외과 의사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이었는데, 이마저도 선배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덮어 버렸다는 얘기다.

15년차 경력인 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병원에 지원금을 제대로 집행하라고 요구했더니 오히려 ‘그동안 흉부외과 수익률이 마이너스여도 흉부외과 직원들 월급은 깍지 않았다’고 큰소리쳤다. 이 한마디가 병원이 흉부외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것 아닌가”라면서 “흉부외과 전문의로 살아온 내 인생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는 병원들이 제출한 자료를 온전히 믿어선 안 된다. 30%를 만족시켰다는 병원 보고서를 당사자인 흉부외과 의사들이 확인한 적 없기 때문”이라면서 “수가인상분을 지원한다는 정책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흉부외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원금이 아니라 수가로 100%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떳떳해진다”고 주장했다.

F병원 흉부외과 과장은 “우리 월급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다. 후배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나름의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면서 “자존심과 명예로 먹고 사는 흉부외과의들인데 이 법이 더 힘들게 했다. 가장 일 많이 할 때인 중년 의사들이 상심한 채 버틸 저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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