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2011년 데일리메디 선정 10대 뉴스
2011.12.20 21:16 댓글쓰기
포호빙하(暴虎馮河). 2011년 의료계 모습은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거나 걸어서 황하를 건넌다’는 이 사자성어로 축약된다. 통제일변도식 정책에 참다 못해 사즉생(死卽生)의 심정으로 달려든 한 해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양보할 것도 없다는 절박함의 발로였다. 전국 병원장들이 ‘아사(餓死)’를 외치며 봉기했고, 약가인하 폭탄을 맞은 제약사들도 궐기했다. 궁즉통(窮則通)이었을까?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영상장비 수가인하를 원점으로 돌려놨고, 조기 위암 내시경 수술(ESD) 역시 제자리를 찾았다. 복지부에게는 36개 병법 중 제16계인 욕금고종(欲擒故縱, 궁지에 몰린 적은 추격하지 말라)의 교훈을 준 한 해이기도 하다.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하지만 즐거움 보다는 퍽퍽함이 많았던 2011년 대한민국 의약계를 되짚어 본다.

사분오열 의료계, 달걀세례에 발길질까지

의료계 종주단체를 자부하던 대한의사협회는 올 해 역시 험난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재야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의 거친 견제에 고전하며 깊은 한 숨을 연거푸 내쉬어야 했다.

경만호 회장의 도덕성을 겨냥한 소송을 비롯해 선택의원제, 간선제 회귀 등 굵직한 사안마다 일부 회원들의 의사협회 집행부 흔들기는 반복됐다.

더욱이 경 회장이 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안티 세력들의 압력 수위가 더욱 고조됐고 급기야 지난 3일 임시총회에서는 고성과 욕설, 심지어 폭력사태까지 빚어졌다.

10만 의사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회원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의료계 인사들은 혀를 찼다. 사분오열되는 의료계 앞날에 대한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직선제 폐해를 절감한 의사협회는 10년 만에 간선제로 회귀를 결정, 내년 3월 선거부터 적용할 방침이지만 차기 집행부에 대한 우려는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정책방향도 틀었다. ESD·영상장비소송

2011년 보건복지부는 의학계와 병원계로부터 제대로 된 카운터 펀치 한방씩을 맞았다. 모두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이 원인이었다.

지난 9월 복지부는 내시경 점막하 박리절제술(ESD)의 급여전환을 결정하면서 적응증을 2cm 이하 위암으로만 제한하고, 수가 역시 1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삭감했다.

이에 대해 의학계는 “사실상 수술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급기야 수술중단 사태까지 빚어졌다. 여론 역시 졸속행정을 비난하며 사태해결을 촉구했고 결국 복지부는 원상복귀에 가까운 수정안을 제시하며 사태는 일단락 됐다.

영상장비 수가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복지부의 밀어붙이기식 수가인하에 반발한 병원계는 단체 소송을 제기했고, 1심 판결에서 승소를 이끌어 냈다.

법원은 복지부가 의당 거쳐야 할 절차를 무시한 상태에서 수가인하를 시행한 만큼 병원들이 요구한 가처분 신청도 받아 들였다.

의사 목숨도 앗아간 ‘리베이트 쌍벌제’

지난 9월 의료계에 비보(悲報) 하나가 전해졌다. 리베이트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의사가 ‘자살’이라는 극단의 길을 택했다는 소식이었다.

본지를 통해 단독 보도된 이 소식에 의료계는 공분했다. 동료 의사들은 ‘쌍벌제의 비극’이라며 애도와 함께 울분을 터뜨렸다. 의료계 일각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등을 진행했지만 망인의 넋을 달래기엔 이미 늦은 후였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암운은 의료계 곳곳에 드리웠다.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가 사상 첫 실형을 받아 면허취소 위기에 놓였고, 원장, 교수, 공보의 등 직역을 불문하고 대규모 사건이 연일 터졌다.

잇단 리베이트 사건에 고무된 복지부는 행정처분 수위를 강화했고, 심지어는 리베이트가 적발된 상급종합병원의 지정을 취소하겠다는 어름장까지 놨다.

이런 상황에서 선의의 피해자도 나왔다. 지방의 학 대학병원 원장은 리베이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결국 모함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아무런 잘못없이 ‘리베이트 의사’란 낙인이 찍힌 이 원장의 고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잘못 없는데 왜 보상" 산부인과 등 의료계 강력 반발

무려 23년간 표류했던 의료분쟁조정법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 동안 국회에서 발의와 자동폐기를 반복하며 공회전을 거듭하던 이 법은 지난 3월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역사적 서막을 알렸다.

합리적 조정과 원만한 피해보상의 기전을 마련했다는 총론에 의사와 환자 모두 환영했다. 하지만 문제는 각론에서 불거졌다.

의사의 과실이나 잘못이 명백히 없는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50%의 보상 책임을 지우려 하면서 의료진, 특히 산부인과 의사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무과실 보상에 대한 하위법령이 강행될 경우 의료분쟁 조정 불참은 물론 분만거부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정부는 하위법령 개정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편 수가인상 등의 회유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무과실 보상책임 0%’라는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용두사미(龍頭蛇尾) 일반약 수퍼판매

열기는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대통령까지 힘을 실으며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약사회의 결집력과 정치력은 80% 이상의 국민이 원하는 일반의약품 수퍼판매를 단숨에 막아버렸다.

단초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공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복지부 장관에게 일반약 수퍼판매 현황을 물으며 직간접적인 정책 추진을 지시했다.

하지만 약사회의 민감한 반응을 의식한 진수희 前 장관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다 대통령에게 호된 소리를 듣고서야 약사법 개정을 추진, 일반약 수퍼판매가 본궤도에 오르는 듯 했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직감한 약사회는 대규모 궐기대회와 서명운동, 대국민 캠페인을 진행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의 회유 작전도 동시에 전개했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는 약국의 입김에 부담을 느낀 국회의원들은 여야할 것 없이 모두 약사법 개정안을 수수방관했고, 결국 이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채 자동폐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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