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관광 효자 부상 '불임치료'
2012.01.03 03:17 댓글쓰기
[기획 상]한해 외국인 환자 11만명 시대. 국경 없는 의료가 현실이 되고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통한 글로벌 헬스케어 사업은 고부가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을 먹여 살릴 성장동력으로 급부상했다.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관련 정부부처 및 지자체, 의료기관 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추산,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해외 환자는 약 36% 증가했으며 이들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1032억원으로 89%나 높아졌다. 피부ㆍ성형외과, 내과 및 검진센터 중심으로 탄력을 받은 외국인 환자 유치는 이제 그 질환과 중증도 측면에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산부인과가 이러한 대세의 중심에 서 있다. 저출산 현상 등으로 국내 진료 환경에 어려움이 따르자 해외에서 실마리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등을 두루 갖춘 ‘불임치료’의 매력은 외국인 환자들의 발길을 모으는 일등공신이다. 홀몸으로 타향에 왔다 엄마의 설렘을 안고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외국인들. 그 현장을 데일리메디가 들여다봤다.[편집자주]

불임부부의 고민은 전 세계를 막론한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자 마음을 먹어도 성 생활이라는 개인 영역에 의료적 중재가 개입한다는 자체만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불임이 질환이라는 인식도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부담까지 짊어진 환자들이 기꺼이 한국까지 찾아와 치료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부처 및 지자체, 의료기관들이 외국인 환자 유치에 뛰어들면서 해외에서도 국내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 설명회와 해외 지자체ㆍ병원과의 협력 체결 및 교류 등을 통해 국내 병원 정보를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된 것이다. 현재 러시아와 몽골, 카자흐스탄, 일본, 베트남, 중국 등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교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임신 성공을 위해 한국 땅을 밟고 있다.

이들이 한국행을 택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국내 의료진들의 높은 기술력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미 불임시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국내 의료기관의 기술력은 대부분 상향 평준화된 상태다. 특히 불임 및 여성질환을 특성화한 병원들이 강세다. 불임치료는 의료진·연구진들의 노하우와 경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를 갖췄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전문 인력과 시스템이 없다면 성공률을 높이고 유지시켜 나가기가 어렵다.

제일병원 국제의료팀 정주운 팀장은 “수 십 년 간 이어온 불임 및 여성질환 중심 병원의 정통성은 외국에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며 “임신 성공률을 비롯한 건수와 수치가 이를 증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임을 전문적으로 해오고 있는 병원들은 대부분 임신성공률 45~50%를 상회하는 등 세계에 내 놓아도 뒤처지지 않는다.

가격 경쟁력도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지만 의료관광을 선도하는 타국에 비해 가격적인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미국의 경우 1회 시험관아기 비용이 평균 1만5000달러 정도인데 반해 국내에서는 평균 5000달러 내외 수준으로 가능하다.

정주운 팀장은 “싱가폴이나 방콕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좋은 편”이라며 “월등한 의료 수준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곳에서 임신에 성공, 출산한 산모들의 입과 입을 통한 홍보도 환자 유치에 톡톡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미즈메디병원 불임의학연구소 지희준 소장 역시 “평균 40% 이상의 전체 불임시술 여성의 임신성공률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대등하다. 그러나 비용이 미국의 1/3 수준이다. 임신 성공 사례가 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으로 등록한 2000개소(2010년 말 기준) 가운데 1686개소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10년 진료과별 외국인 환자 현황은 피부·성형외과 14%, 내과 13.5%, 검진센터 13.1%, 가정의학과 9.8%, 산부인과 5.6%, 정형외과 4.9% 순이었다.

특히 산부인과의 경우 외래 및 입원환자 56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관광이 시작단계인 점과 산부인과 특성상 환자 유치가 쉽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한다면 저조한 수준은 아니다. 이처럼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병원들도 점차 해외 시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과연 될까?’라는 의구심은 ‘되겠다’는 가능성으로 병원 경영진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전체 진료 수익에도 영향력 증가…침체기 산부인과 돌파구?
제일병원 정주운 팀장은 “처음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 얘기가 나올 당시만 해도 경영진들은 해봤자 되겠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때가 많았다. 해외 설명회나 병원 교류 등을 통해 성과가 나타나면서 실제 병원 수익에도 미미하지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피력했다.

제일병원 이종길 행정처장 역시 “수년 내 전체 병원 수익의 10%를 해외환자로 채우는 것을 목표로 유치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전향적 입장을 보였다.

현재까지 외국인 환자 진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사실상 크지 않지만 국내 산부인과 진료 환경에 한계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해외 시장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올랐다. 산부인과 전문병원들은 특히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미즈메디병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한 아이드림클리닉(불임치료센터) 박찬 전문의는 “처음엔 환자가 찾아오니 진료를 보는 수준이었다면 이젠 병원에서도 해외 시장에 눈을 떴다”면서 “그동안 쌓아온 불임치료 역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통역 및 전문코디네이터를 상주시키자 환자가 대폭 늘었다”고 전했다.

미즈메디병원의 경우 2010년 한 해 동안 약 2800명의 외국인 환자가 다녀갔다. 그 중 불임치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는 80%에 달한다. 연평균 시험관아기 시술은 800례 수준으로 성공률은 평균 43% 정도다. 그러나 병원에서 개발해 최근 활발히 시행하고 있는 ‘배아파편제거술’ 등을 통해 성공률을 50%대로 끌어올렸다.

박찬 전문의는 “지금은 경영 상 수익이 미미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미 국내에서는 저출산 현상이 계속되면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해외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세계 학회 등 국제 행사를 참석해 봐도 이 같은 환경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국내 의료진들의 성과 역시 많이 발표되고 있다. 병원들도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전략적으로 나서는 등 향후 병원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제일병원 관계자 역시 “불임치료를 통한 환자 유치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일 수 있다. 병원에서도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고 있는 등 외국인 환자 비중이 점차 증가 추세다. 지금으로선 가야할 방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험관아기 시술과 같은 불임치료는 대학병원이 아닌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성장한 국내 의료계 특성 상 외국인 환자들도 전문병원 선호도가 상당하다. 환자-의료진 간 친밀도 및 신뢰감, 내실 있는 상담 등이 치료 효과와 직결됨에 따라 전문병원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즈메디병원 전문의는 “불임치료의 경우 상담에 더욱 신경을 쓴다. 환자 상태를 수시로 모니터링 해야 하고 밤낮, 주말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나 혼자 외국에 나가 불임치료를 받는다고 문득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외국인 환자들 역시 불안감, 두려움, 초조함이 클 것이다. 이러한 여러 사정들을 고려해 환자를 배려한다”고 설명했다.

분주하고 중증 환자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병원 보단 안락한 진료환경과 긴 상담 시간, 국내 환자 시술 건수 등이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하는 ‘전문병원’이 우선순위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성형외과나 생사를 오가는 중증도 질환과는 다르게 의료사고 위험이 낮다는 점도 외국인 환자 유치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외국인 환자 의료분쟁 발생 시 그 피해와 부담이 엄청나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의료기관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임치료의 경우 임신 성공과 실패로 나눠지는 결과가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한 번 실패 후에도 2~3번 재방문을 통해 임신에 성공하는 케이스도 많다. 다른 질환과는 다소 다른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겨울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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