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학술대회만 생각하면…'
2011.08.03 03:00 댓글쓰기
예산 부족으로 고개를 떨구는 학회가 속출하고 있는 것도 바로미터다. 양질의 학술활동을 원하는 회원들 기대치는 높아지는 반면 주위를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이비인후과학회의 춘계학회 예산은 전년 대비 5% 가량 줄어들었다. 부스의 덩치도 왜소해졌다. 리베이트 정책 관련 세션을 따로 마련한다거나 장소를 변경하지는 않았지만 초록집을 없애고 CD로 제작했다.

대한신장학회의 경우 예년에는 토요일 하루동안 개최했던 것을 반나절을 늘려 금요일 오후부터 진행키로 했다. 그러나 예산을 늘리는 데는 엄청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내년 학회 개최비 조달에 있어 벌써부터 고민이 앞선다.

대한신장학회 관계자는 “경비절감 차원에서 E-포스터만 진행하고자 했지만 공정위에서 인정을 하지 않아 포스터 전시를 함께 진행했다”면서 “추진 계획에 있는 사업은 많지만 쌍벌제 시행 이후 제약이 심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아예 춘계학회에서 리베이트 정책 관련 세션을 따로 준비한 학회도 있다. 대한외과학회는 심포지엄을 마련, 대한의사협회 임태환 학술진흥위원장을 초청해 주임교수 및 과장 회의를 열고 '학술대회 지원 관련 주요 현안'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였다.

뿐만 아니다. 제약업체의 공식 지원이 가능한 대한의학회 및 학술진흥재단에 공인된 단체가 아닌 지역의사회 및 비인가학회의 경우, 자체 학술행사 개최에 더욱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학술대회를 개최한 한 지역의사회의 경우 전년 대비 제약회사의 상품 홍보 부스가 절반 이상 줄었다. 이 지역의사회 관계자는 “해마다 개최하는 학술대회지만 올해처럼 부스 참여가 적은 때는 없었다”며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달라진 분위기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의사회는 복지부를 방문해 학술대회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제약사가 지원할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 학술대회를 개최한 또 다른 지역의사회도 “임원진이 백방으로 노력해 무사히 학술대회를 치를 수 있었지만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된 올해 참여 업체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여파가 추계학술대회까지 어김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의료계를 뒤엎고 있다는 점이다. 내과계열 A학회 이사장은 “우리 학회의 경우 전체 운영비용이 약 1000여만 원 가까이 되는데 이는 오로지 학술대회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장학회, 최대 300% 올려…흉부·신경·당뇨병학회도 2배 ↑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학술대회 등록비 인상이 미봉책으로 선택되고 있는 모양새다. 덩달아 회원들의 주머니 사정도 빠듯해질 수밖에 없다. 공정경쟁규약의 학술대회 개최·운영 지원 조항에 따라 이번 춘계학술대회부터는 학회 전체 비용의 20% 이상을 회원 등록비 등 자기부담으로 충당하도록 돼 있다.

순환기관련학회 춘계통합학술 대회와 아태 초음파학회를 지난 4월 15일부터 16일까지 함께 개최한 심장학회는 거듭된 논의 끝에 ‘학회 등록비 인상’를 감행했다.

▲전문의 및 교수 3만원 ▲전공의 및 기타 1만원이었던 등록비는 ▲전문의 및 교수 6만원 ▲전공의 및 기타 4만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사전등록 기준) 인상률로 보면 ‘100%’, ‘300%’ 인상이다. 자체 경비로 학술대회를 충당하기 위해 등록비를 지금보다 5~10배 가량 올려야 할 것이라던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대한당뇨병학회도 올 춘계학회부터 등록비를 인상키로 했다. 기존에는 ▲전문의 6만원 ▲전공의 4만원이었던 비용이 ▲전문의 10~15만원 ▲전공의 5~7만원으로 대폭 늘었다.

이미 지난해 추계학술대회부터 등록비를 올려받은 학회도 있다. 대한흉부외과학회의 경우 年 1회 학술대회 통합 개최로 몸집 자체가 커진 점도 있지만 ▲정회원 8만원 ▲준회원 6만원이었든 등록비는 ▲정회원 15만원 ▲준회원 12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인상됐다.

대한신경과학회도 지난해 추계학술대회부터 인상된 등록비를 적용하고 있다. ▲전문의 8만원→10만원 ▲전임의, 군복무 전공의 4만원→6만원으로 변경됐다. 신경과학회 관계자는 “공정경쟁규약 시행으로 학회 자금을 효율적으로 굴려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반적으로 반영되면서 등록비 인상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대한신장학회 역시 최근 고혈압학회가 평생회비를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인상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30만원으로 등록비를 책정함으로써 평생회원 제도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됐다. 다만 기존 회원 등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일단 보류키로 한 상태다. 같은 맥락에서 학회 운영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는 학회들은 경비 및 식대 역시 본인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거나 학회 장소를 기존의 호텔이나 컨벤션에서 시청, 의료기기 회사 등을 통해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대한임상종양학회 김남규 이사장은 “최근 열린 학술대회에서 20개 정도로 부스를 채우기는 했지만 내부에서는 이제는 등록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계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회원들의 반발이 있어 올해까지는 유지하겠지만 이 상황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등록 자체가 ‘깐깐’해진 학회도 발견됐다. 비뇨기과학회는 제약사가 참여하는 한 부스 당 개인 이름이 명기된 명찰 3개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명찰이 없는 경우 전시회장 입장 자체를 불가능하도록 했다. 강의장 입장을 위해서도 회원들처럼 등록을 해야 한다.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전시업체 관계자의 등록비는 사전등록 8만8000원, 현장등록 9만9000원이다.

대한병리학회는 현재 등록비 인상이 확정된 타 학회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년 춘계학술대회까지는 5만원이었지만 등록비는 오는 추계학술대회에서는 7만원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의 경우 전문의는 사전등록시 8만원, 현장등록시 10만원 전공의 및 군회관은 사전등록시 5만원, 현장등록시 7만원이었다. 비회원의 경우 20만원으로 일괄 책정됐다.

대한신생아학회는 현재 전문의 5만원, 전공의 2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당분간 학회비 및 등록비 인상은 예정돼 있지 않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경우 현재 전문의 15만원, 전공의 8만원을 받고 있다.

해외연자 유치도 골머리…"비용때문에 초빙 실패"
사실 의학 학술발전을 위해 전 세계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리베이트 쌍벌제로 일제히 제동이 걸렸다.

서울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내분비학회 춘계학술대회. 총 1200여명이 참석했고 부스는 55개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해외연자 수가 9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강좌는 예년과 동일하게 유지함으로써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했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 없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해외 ‘실력자’들을 대거 초청, 위상을 높여왔던 대한신경외과학회도 올해는 아시아 지역 등에서 5명만 초청했다.

오는 2013년 제15차 세계신경외과학회 유치하게 되면서 세계 무대로 나가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지만 여의치 못한 사정으로 국제 교류 역시 일정 부분 타격을 받은 셈이다.

학술대회 등록비 인상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외국 연자들의 체류비용이라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학회들은 앞으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숙제로 떠안게 됐다.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한 국제위암학회 관계자는 “예산 문제 때문에 충분한 강연료를 지불하지 못해 초빙에 실패한 해외 인사도 있었다”며 “해외 연자를 초청하는 데는 비행기 운임, 숙박료, 강연료 등이 필요한데 저명한 인사를 초청하는데 제한이 많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경우 최신 지견과 술기를 배우는 학술대회 자체가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은 곳곳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정기적인 학술대회를 통해 최신 의료 기술을 습득하면서 우리나라의 의학이 현재 여기까지 발전했다”며 “그런데 리베이트 쌍벌제로 국내, 국제학술대회가 활성화 되지 않으면 의학 발전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국민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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