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과정 죽을 맛' 10월 병원계 대변혁
2011.10.05 03:04 댓글쓰기
추석 연휴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일선 병원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는 9월 하순을 보냈다.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된 ‘선택진료 관한 규칙’ 및 ‘약제비본인부담금 차등적용’에 대한 준비 때문이었다. 새롭게 바뀌는 선택진료 서명 서식 마련부터 환자에게 배포할 안내문 작성까지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뿐더러 제도 변경으로 인한 민원 증가 등 소소한 부분까지 대비해야 했기에 병원이 체감하는 제도 변경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는 전언이다. 제도 변경에 대비하며 9월을 보낸 병원들의 고충을 데일리메디가 들어봤다.[편집자주]

"신규 환자 접수시간만 10분, 답이 없다"

국민의료비부담 절감 및 환자의 실질적 선택권 보장을 목표로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10월부터 시행되면서 병원들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복지부의 선택진료 규칙 개정에 따라 종합병원급 이상 144개 의료기관은 최소 3개에서 최대 16개에 이르는 진료과목에 상시 비선택진료의사를 배치해야 하고, 종전의 진료지원과목에 대한 선택진료의사 지정 포괄위임방식 대신 환자가 직접 의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병원은 또 환자가 동일 질환으로 외래와 입원 진료를 받더라도 별도의 선택진료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

병행 시행하는 것으로 논의됐던 ‘전문의 자격인정 후 5년이 경과한 조교수 이상인 의사’만을 선택진료 의사로 인정하는 자격요건 강화 방안은 병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1년 유예기간을 두고 2012년 10월로 시행이 미뤄졌다.

병원들은 비선택진료 의사를 상시 배치해야 하는 문제보다는 포괄위임방식 폐지에 따른 여파가 더 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병원계는 의사 선택 방식이 포괄위임방식에서 환자가 일일이 지정하고 서명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면 2~3분정도 걸리던 신규환자 진료접수 시간이 3배정도는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건국대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이 병원에 오기 전 선택진료 의사를 결정하고 오지 않는 이상 접수 과정에서 병원 직원들이 환자들에게 일일이 의사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어려움을 호소했다.

병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게 될 선택진료 신청서 서식에 따르면 환자들은 의사를 선택하기 위해 최대 10번의 항목체크 및 서명을 해야 하고 10명의 의사 이름을 적어야 한다.

경희의료원 원무팀 관계자는 “동일한 질환으로 치료를 받더라도 외래와 입원에 대해 별도로 서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병원이나 환자 모두 불편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몸이 아파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나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일일이 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서명을 받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직 충원·전산시스템 정비 등 총력

병원들은 최대 10분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접수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계약직 행정인력을 충원하고 전산 프로그램을 새롭게 마련해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서명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최근 환자 접수를 돕기 위해 10여명에 달하는 계약직 직원을 충원했다”면서 “이 인력으로 밀려드는 진료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0월 이후 상황에 따라 더 많은 인력 충원도 고려하고 있다”며 “환자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 것이 과연 진정으로 환자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선택진료제도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병원은 인력충원과 더불어 환자가 자신의 서명을 직접 전산에 입력할 수 있도록 태블릿PC를 이용한 서명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관계자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환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종이서식보다는 태블릿PC를 활용해 서명을 받고자 준비 중”이라며 “태블릿PC 구입 등 비용 부담이 상당하지만 전산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그나마 불편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자 돌려보낼 수도 없고…"

병원들은 약제비 본인부담률 차등적용과 관련해서도 시름이 깊다. 복지부가 마련한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에 관한 기준’ 고시에 따르면 10월부터 감기, 양성 고혈압, 인슐인 비의존성 당뇨병, 천식 등 52개 질환으로 종합병원급 이상 대형병원을 찾은 환자는 약값을 더 내야 한다.

기존 30%로 고정됐던 약제비 본인부담률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50%, 종합병원의 경우 40%로 인상되기 때문이다. 경증질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여서 병원이 준비해야 할 사항들은 적지만 제도 시행을 앞두고 병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약값 차등화에 따른 환자감소, 홍보 부족에 따른 민원 발생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하대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값 차등적용에 대한 홍보물을 준비했다”면서 “사실 홍보 외에는 별다른 대응책이 없어 일단은 시행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전에 위치한 대학병원 보험심사부 관계자는 “환자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되는 정책이지만 그렇다고 병원을 찾는 환자를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더 많은 약값을 감수하고 병원을 찾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환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지방의 경우 서울, 수도권과 달리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위상은 절대적인 경우가 많다”면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정부 시책은 이해하지만 환자들의 항의가 병원으로 향해 애꿎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경희의료원 관계자 역시 “고혈압, 당뇨병과 같이 만성질환에 속하면서도 경증질환으로 분류된 질환의 경우에는 한 번에 한두 달치에 해당하는 약을 처방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늘어나는 약값은 상당할 것”이라면서 “환자들이 이를 이유로 병원에 민원을 제기할 경우 어떤 답변을 해야 할지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준비상황을 설명했다.

"정부, 제도 시행 후 적극적인 보완 의지 보여줘야"

지방 대학병원 관계자는 “사정이 좋은 병원들의 경우 행정인력을 추가 투입하고 전산시스템을 새롭게 갖추는 등 나름대로 선택진료 제도 전환에 따른 준비를 해왔지만 그렇지 못한 병원들도 있다”면서 “우리 병원만 하더라도 행정인력을 추가 채용할 여건이 안 돼 10월 이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한 정책 결정이어서 개별 병원들이 불만을 나타낼 수도 없고 그저 별다른 문제가 나타나지 않길 바라고 있다”고 언급했다.

경희의료원 관계자는 “선택진료의 경우 복지부가 개정안 시행 후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추후 병원들이 지적하는 사항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다행스럽게 선택진료 의사 자격 강화 방안 시행이 2012년으로 미뤄졌지만 병원들이 2차, 3차 부담을 짊어지지 않도록 정부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약제비 차등화의 경우에도 개별 병원들이 일일이 환자에게 부담금 인상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병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나 병원협회 차원에서 대국민 홍보를 진행하는 등 제도 시행 취지를 적극 알려 불필요한 민원 발생으로 진료환경에 악영향이 미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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