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세브란스 유감' 불쾌감 피력
제중원 적자론 재연…백재승 역사문화원장 '설립 주체 국가→서울대 뿌리 당연'
2015.03.16 20:00 댓글쓰기

 

 

한국 서양의학의 효시인 '제중원'을 둘러싼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해묵은 뿌리 논쟁이 또 다시 시작됐다.

 

지난 9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치료하고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공식 석상에서 제중원의 '적자'임을 언급하면서 불거졌다.

 

세브란스병원은 앞서 리퍼트 대사 치료 경과를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리퍼트 대사의 고향인 오하이오주(州)와 세브란스병원 간 인연을 언급하며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은 제중원"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서울대병원은 즉각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제중원을 운영하는데 알렌 박사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를 두고 제중원 뿌리를 세브란스병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요지다.

 

16일 백재승 의학역사문화원장(비뇨기과)[사진]은 기자들과 만나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세브란스병원의 행보에 심히 유감을 느낀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백 원장은 "특히 이번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사건과 같은 경우, 국가적 안보 등의 측면에서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사안임에도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제중원 효시임을 홍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제중원을 둘러싼 양 기관의 논쟁은 한 두 해 이어져온 것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1885년 고종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의료 기관인 제중원의 적통(嫡統)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두고 팽팽한 입장 차를 보여왔다.

 

그 동안 세브란스병원은 조선 정부가 설립한 국립병원이라고 해서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뿌리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변함없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백재승 원장은 "제중원은 고종의 윤허로 설립된 것이 아니라 고종이 알렌의 협조를 얻어 설립한 것"이라며 "제중원을 설립한 주체는 고종이기에 운영 형태 또한 국립이었다. 당연히 제중원은 같은 국립인 서울대병원의 뿌리가 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제중원→광제원→의학교 부속병원→적십자병원→대한의원→서울대병원"

 

백 원장은 "제중원의 역사적 의의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이라는 점"이라며 "서양의학에 입각한 국립병원의 맥은 광제원, 의학교 부속병원, 적십자병원으로 이어지다가 1907년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으로 통합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백 원장은 "국립병원 제중원의 사회적 책무는 서양의학 도입을 통한 의료 선진화와 전통시대 공공의료 계승이었다"며 "이 과제는 130년이 지난 지금 복잡하고 급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도 국공립병원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숙명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의학역사문화원 김상태 교수도 "당시 시대적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중원 적통론에 가세했다.

 

김 교수는 "고종과 조선 정부는 1880년대 근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군사 분야의 별기군, 언론·출판 분야의 박문국, 교육 분야의 육영공원 등 일련의 서양식 국립기관들을 설치했다. 마찬가지로 의료분야에서도 제중원이라는 서양식 국립병원을 설립했다"고 주장했다. 전통의학이 외과 질환 치료에 약했기 때문에 서양의학을 도입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조선 정부는 부지와 건물(개원 당시의 재동 제중원과 1886년 하반기에 이사 간 구리개 제중원 모두), 행정인력, 예산 일체를 제공했고, 제중원 운영규칙도 작성했다"고 말했다.

 

실제 "알렌, 헤론 등 당시 제중원에서 활동한 의사들도 공식 보고서나 편지 등에서 제중원을 '정부병원(the government hospital)'이라고 명백히 표기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제중원에서 미국인 의사가 활동한 것처럼 별기군에서는 일본인 교관이, 육영공원에서는 미국인 교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며 "그렇다고 해도 이들 모두는 당연히 국립기관이고, 역사학자들도 이들 기관을 국립기관이라고 규정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1904년에 세브란스라는 사람의 기부금으로 거금을 마련한 (선교사)에비슨 측이 따로 병원을 짓고 독립했고 이 것이 바로 세브란스병원"이라면서 "이후 조선과 고종 정부는 남아있는 제중원 부지와 건물을 에비슨 측으로부터 돌려받았다"고 환기시켰다.

 

서울대 총동창회, 제중원 설립 130주 기념달력 제작 배포

 

그 가운데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간 논쟁의 프레임이 올해 제중원 설립 130주년을 기념한 행사로까지 번지며 확산될 조짐을 낳고 있다.

 

서울대 등에 따르면 총동창회는 2015년 달력 6000점을 동문들에게 배포했는데 1월~12월 매 페이지에 제중원 설립 130주년을 뜻하는 '제중원 130'이란 문구를 넣었다.

 

1월 달력에는 '서울대병원은 1885년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에서 출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을 재조명하고, 제중원의 역사적 경험과 정신적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150주년에는 모든 국·공립병원과 '함께'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연세대 의과대학도 산하 기관인 동은의학박물관 주도로 1월~12월까지 모든 페이지에 제중원 사진 등을 넣은 달력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기관의 신경전이 '달력'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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