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정답 '무효'···의·치·한·약 등 입시 혼란 '가중'
법원 '생명과학Ⅱ 명백한 오류, 수능 문제로서 역할 수행 못해'
2021.12.16 05:48 댓글쓰기
15일 법원이 정답 무효 판결한 뒤, 강태중 평가원장은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다./사진제공=연합뉴스
[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법원이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해 정답 취소 판결을 내리면서, 논란이 됐던 해당 문항은 전원 정답으로 처리됐다.

입시계는 문‧이과 통합수능 및 약전원 폐지에 사상 초유의 전원 정답 사태까지 맞물리면서, 의‧치‧한‧약 입시 눈치 싸움이 더욱 치열한 혼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15일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해당 문항은 동물종 P의 두 집단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택지 3개 중 맞는 것을 고르는 문항이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난 직후 응시생과 학원가, 학계 등을 중심으로 문항 조건대로 계산할 경우 집단 개체수가 음수(-)가 된다는 모순이 생긴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문항 조건 상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해당 오류를 발견하기 전(前)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는 이유로 기존 정답을 고수했다.

이후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지난 2일 평가원을 상대로 정답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진행하면서 불씨를 당겼다. 이 문제는 조나단 프리차드 미국 스탠퍼드대 유전학과 교수까지 문항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더 큰 화제가 됐다. 
 
재판부는 “명백한 오류로 수험생들로 하여금 정답 선택을 불가능케 하거나 적어도 심각한 장애를 줄 정도에 이른다”며 “평가원이 의도한 풀이방법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충분한 논리성과 합리성을 가진 풀이 방법을 수립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해도 문제 자체 오류때문에 정답을 택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정답 선택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의 조건 일부 또는 생명과학 원리를 무시한 채 답을 고르라는 것과 다름없어 부당하다”며 “유의미한 수학능력 차이를 확인할 수 없어 대학교육 수학능력 측정을 위한 수능시험 문제로서 기본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정답 취소 판결 이후 평가원은 항소를 포기하면서 해당 문항은 ‘전원 정답’으로 처리됐다. 이는 판결 전날인 14일 평가원이 패소 시 해당 문항을 전원 정답으로 처리하겠다고 공표한 데 따른 것이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전원 정답 처리됨에 따라, 해당 과목을 응시한 6515명의 학생들은 이날 오후 6시 확정된 성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입시계 “통합수능‧약전원 폐지 등 변수 많은 올해 입시, 혼전 양상”
 
한편 입시계에서는 해당 문항의 전원 정답 처리가 향후 의대‧치의대‧한의대‧약대 입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진단했다. 생명과학Ⅱ 과목 특성상 의대 진학을 노리는 학생들이 다수 응시한 까닭이다.
 
서울 소재 유명 입시학원 관계자는 “평균적으로는 원점수가 상승했겠지만, 전제 평균 상승으로 상위권 학생들은 도리어 표준점수가 하락하는 불이익을 겪게 됐다. 6시 성적 발표 이후 공개된 등급별 인원에 따르면, 1‧2등급 인원은 269명, 508명으로 기존 예상인 309명, 587명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 의대를 노리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Ⅱ과목을 지원해야 한다. 의‧치‧한‧약 특성상 이들 중 생명과학Ⅱ를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이번 입시는 통합수능과 약대 추가 등으로 인해 자연계 쪽에 특히 변수가 많은 입시였다. 여기에 ‘전원 정답’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최상위권 입시에서 혼란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입시계는 수시에서는 등급이 밀리면서 탈락한 학생들이 발생하고 정시에서는 생명과학Ⅱ 과목 하락으로 인한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 그는 “수시에서는 다른 학생들의 점수 상승으로 등급이 밀린 수험생이 고배를 마실 가능성이 있다”이라며 “정시에서는 해당 과목에 응시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표준점수가 낮아지면서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본다. 숫자가 많지는 않겠지만 의‧치‧한‧약 특성상 생명과학Ⅱ 응시자가 다수 포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치싸움이 보다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수는 한 가지 더 있다. 수시 미충원 인원에 대한 정시 이월이다. 올해의 경우 18일 수시 결과 발표 이후 29일까지 수시 미충원 인원에 대한 추가 합격이 진행되며, 29일 이후에도 수시 결원 발생 시 해당 인원이 정시로 이월된다. 
 
그는 “문제는 정시 모집이 수시 추가합격 마감 직후인 30일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라며 “모집 마감이 다음달 3일까지라 일정이 촉박하다. 학생들이 의‧치‧약‧한 정시 이월 인원을 확인하고 지원할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데 여러 학교를 둘러보고 분석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상향 지원할지, 아니면 하향 지원할지 고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한 “특히 의‧치‧한‧약 입시는 최상위권 간 경쟁이기 때문에 1문제를 넘어 1점 차이가 당락을 가르는 경우가 다반수”라며 “앞서 이야기했듯이 올해 입시는 변수가 다른 해보다 많은 편이다. 서울대‧연세대 등 최상위권 의대가 아닌 중위권 의‧치‧한‧약의 경우 평소 선호도와는 다른 커트라인 순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대학 입장에서도 고민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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