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하] 국내 소아청소년과 의료체계 붕괴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수년간 누적된 전공의 및 전문의 부족이 결국 인프라 와해로 이어질 위기다.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의료취약지가 늘어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청과 세부전문의를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방이나 소규모 의료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수도권 대학병원들도 소청과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 진료를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부모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아이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 떠돌아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외부요인과 함께 기피과 낙인 역시 좀처럼 개선되고 있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 국가 차원의 소청과를 살리기 위한 개선책이 시급하다. 소청과 위기 상황과 대안을 2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주]
지방에 이어 수도권까지 소아응급의료 포기를 선언하는 의료기관이 속출하며 인프라 붕괴가 시작된 가운데, 현재 소아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인 병원들 역시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가천대길병원 류일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병원들의 소아응급실 야간진료 포기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며 “길병원 역시 인력 부족으로 당장 내년부터 입원을 중단해야 할 위기”라고 전했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지난 2015년 응급의료법 개정에 따라 소아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소아전문 응급실과 의료진, 소아 연령에 맞는 의료장비 등을 갖춘 의료기관에게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현재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분당차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가천대길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8곳 뿐이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대신, 병원에 24시간 전문의 또는 고학년차 전공의가 상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마저도 신규 전공의 유입 기대는 커녕 기존 교수마저 사직하는 인원이 늘어 당장 내년부터 입원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류일 센터장은 “빅5 병원을 제외한 일반 대학병원에 소아청소년과 인력은 5~10명 수준일 것”이라며 “길병원도 교수가 많았을 때는 10명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3명 남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전공의 정원은 연차당 4명으로 총 12명인데 현원은 5명”이라며 “그중 4명이 4년차라 올해가 지나면 1명만 남는다"고 덧붙였다.
특히 "신규 전공의가 유입되지 않으면 총 4명이서 외래 및 당직을 책임져야 하는데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진료는 봐도 입원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류일 센터장은 인력 부족으로 최근 소아청소년 응급실 야간진료를 제한한 강남세브란스병원 사태와 관련해 “향후 이런 선택을 하는 병원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규 전공의는 커녕 기존 교수들도 이탈, 특단의 조치 없으면 회생 불가능"
이러한 소아청소년과의 인프라 붕괴는 저수가 및 저출산에 따른 급격한 아동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가파르게 심화되는 인력 부족 문제에 기인한다.
매해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를 200명 정도 모집하지만 현재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인력은 곧 전문의 시험을 앞둔 ▲4년차가 170명 ▲3년차 120명 ▲2년차 70명 ▲1년차 50명뿐이다.
류일 센터장은 “전공의가 새로 들어와도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소아과를 운영하는 개원의들마저도 피부미용 등으로 과를 바꾸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지원도 없고 돈이 안 되니 병원에서도 찬밥 신세”라며 “폐업하는 소아청소년과가 속출하면 남은 인력들은 업무부담이 커져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상황이면 향후 2~3년 후 소아청소년과 의료는 붕괴될 수준인데 이에 대해 걱정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듯하다”며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피력했다.
국내 최대 규모 의료기관인 서울아산병원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류정민 센터장은 “올해는 소아청소년과는 물론이고 응급의학과도 미달 사태가 예상된다”며 “내년부터 소아응급센터 인력난이 우려된다”라고 전했다.
이어 “최근 젊은의사들은 몸이 아픈 사람을 보는 의사보다 건강한 사람의 건강증진을 위한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며 “법적 분쟁 위험에도 보상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어렵고 힘들고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모되는 소아 진료의 특성상 전공의 부족은 전문의나 교수진의 사직 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류정민 센터장은 “이미 소아 응급 중환자 영역은 붕괴가 시작됐다”며 “그나마 소아전문응급센터 등으로 근근이 응급영역은 버텨왔으나 소아 중환자 영역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아청소년과의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 단순 수가 인상이 아닌 대대적인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류정민 센터장은 “소아 야간 및 공휴일 수가를 신설하거나 3배 이상으로 대폭 늘리지 않는 한 젊은 의사들에게 소아환자와 응급중환자는 무서운 존재가 될 뿐”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소아 진료 난이도별로 수가도 몇 배 이상 올려야 하겠지만 이와 별개로 대규모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 등은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중앙지방재정을 소아응급의료 시스템에 지원하도록 특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전담기관을 통한 포괄적인 지원체계를 구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