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인해 우리나라 재난응급의료가 재조명되고 있다.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등 진단 및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재난응급의료시스템은 역사가 길지 않다. 학생 및 관광객 등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은 후 대응지침이 마련됐다. 당시 구축된 이 시스템은 재난 및 응급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운영되고 있지만, 이번 사고에선 피해를 줄이는데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재난 및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의료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 및 개선점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당시 재난응급의료체계가 어떻게 운영됐는지 시간대로 살펴보자.
참사가 발생한 밤 119 상황관리센터는 10시 38분 중앙응급의료상황실 “이태원에 사람 10여 명이 깔려 있다”며 병상 정보를 요청했다.
이후 10시 48분 “환자가 15명 이상이고, 추가 발생 가능성이 높아 재난의료지원팀(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이하 DMAT) 출동이 필요하다”고 다시 연락했다.
자정 전(前) 도착 DMAT 1팀 불과
재난의료지원팀은 재난 현장에서 1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출동한다. 통상 4~5명 의사·간호사로 구성된다.
재난의료팀 요청은 행정안전부 재난상황실이 신고를 받고 중앙응급의료센터로 연락하면 각 병원에 의료팀 출동을 요청한다.
참사 당일 행정안전부는 오후 10시 48분 소방청의 첫 보고를 받았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사 발생 1시간 5분이 지난 뒤 상황을 파악했다.
상황 파악이 늦어지면서 출동 요청 및 현장 투입이 지연됐다. 첫 의료팀인 서울대병원 DMAT는 오후 11시 20분 도착했다.
의료진 4~5명이 현장에서 응급의료 대응을 한 셈이다. 그러나 첫 의료팀 도착 시간 때는 이미 수십 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현장에 응급의료소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10월 30일 오전 0시9분이다. 보건복지부가 제작한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서 관할 보건소장이 현장 응급의료소장을 맡는다.
최재원 용산보건소장이 신속대응반과 함께 현장에 나타난 건 참사 발생 1시간54분이 지난 10월30일 오전 0시9분이었다.
보건소장이 도착하기 전까지 중앙응급의료센터와 소방, 의료진이 환자 이송을 전담했다. 지휘·통솔자는 늦고, 상황 전파와 현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재난응급의료시스템은 삐걱될 수밖에 없다.
실제 그사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에 사상자가 집중됐다.
당시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된 사상자는 10월 30일 오전 2시10분까지 심정지 환자 76명, 응급실에서 치료 중 사망자 3명 등 총 79명이었다.
희생자들은 같은 날인 10월 30일 오전 4시48분 119 구급차로 분산 이송될 때까지 병원 영안실 복도에 방치됐다.
의료지원팀 투입과 동시에 신속하게 만들어져야 했을 현장응급의료소 설치 및 가동이 지연되면서 환자 중증도 분류와 이에 따른 이송 여부, 처치 결정이 줄줄이 늦어졌다.
실제 현장응급의료소가 10월 30일 오전 1시경부터 본격 가동되면서 일부 병원에 환자쏠림이 발생했고, 응급환자가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게다가 참사 당일 오전 2시가 다돼서야 서울·경기 내 14개 재난거점병원 15개 재난의료지원팀 63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한양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이태목동병원, 고대안암병원, 고대구로병원, 서울의료원, 분당차병원, 부천순천향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한림대병원, 명지대병원, 아주대병원 등이다.
사고 후 DMAT 의료진, 7시간 고강도 경찰 조사
12월 2일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밝힌 이태원 참사 사망자는 158명 부상자는 196명이다. 사망자 장례가 모두 마무리됐고, 부상자는 치료 중이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원인을 밝히고, 책임 규명에 나서는 중이다. 문제는 이번 참사 책임을 현장에서 땀 흘렸던 이들의 실책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실제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DMAT이 특수본 조사를 받았다. 참고인 차원이라고 하지만 최대 7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졌다.
한양대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 DMAT 소속 의료진은 4시간,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도 7시간 넘는 조사를 받았다.
경찰 조사를 받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언론 인터뷰에서 “소방당국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DMAT이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는지 등을 물었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 대답하면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아 처벌받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어 조사 내내 힘들었다”며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덧붙였다.
참고인 조사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민관협력 차원에서 재난 현장에 출동했던 의료인까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앞으로 누가 응급 상황에 앞장서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의료단체 “고마워는 못할망정 개탄스럽다”
의료진에 대한 특수본 조사 사실이 알려지자 의료계는 분개했다. 최선을 다해 인명 구조 및 응급의료에 나선 대가로 경찰 조사를 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이태원 참사에 출동했던 재난의료팀에 대한 경찰 특수본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긴박하고 위급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응급의료 현장에서 환자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낮없이 촌각을 다투고 있는 의료진들 노고를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수시간 동안 참고인 조사를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재난의학도는 “당시 출동한 DMAT는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응급의학과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였다”며 “경찰과 소방 같은 공무원도 아니고, 재난대응 선진화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민간인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을 희생하며 달려 나간 재난대응 민간조직에 대해 특수본, 국정조사 등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지금이라도 이들에 대한 책임 추궁에 앞서 DMAT의 법적 권한 및 보호 장치 등을 재확인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의사출신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참고인 조사라고 해서 재난의료지원팀 의료진들이 불려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본인이 범법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현장에 진입할 때 경찰이 통제하며 방해했고 소방에서 소통이 안 됐기 때문에 중증도 환자 분류나 순천향대병원에 시신이 몰렸던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조사를 받은 의료진들은 ‘나는 이제 재난의료 현장에 가지 못 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할 만큼 힘들어 한다”고 우려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한 발 더 나아가 경찰 특수본부장을 고발했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를 물었다.
임현택 소아청년과의사회장은 “피고발인(특수본부장)은 사실관계와 객관적인 근거에 입각한 수사를 해야 하는데, 이번 조사는 선의로 생명을 구하는 데 가장 앞장선 의료진에 대한 자발적 수사 협조 요청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협력해서 선의로 응급의료 현장에 출동한 거점병원 DMAT 의료진들에게 근거 없이 책임을 덮어씌울 듯 한 느낌이 들게 하거나, 처벌의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며 “심지어 일을 그만 둬야 하는 심리적 압박을 느낄 정도로 강압 수사해 직권남용 죄를 범했다”고 고발 이유를 설명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