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상] 코로나19 유행 3년을 거치며 공공의료 민낯이 드러난 대한민국에서 어떤 대안이 구원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의료취약지에 의사가 없어 지역내 완결의료 및 분만, 소아 진료, 감염병 대응 등 필수의료 영역이 불가해진 지는 이미 오래다. 초유의 감염병 유행 사태로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그 방법에 있어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확대, 공공임상교수 제도에 이은 시니어의사 사업 등이 아이디어로 등장했다. 해당 대안들의 핵심은 무엇인지, 이미 시행된 경우 어떤 성적표를 받았는지 등 데일리메디가 공공의료 구원책을 비교했다.
전남·충남·경남 등 공공의대 설립 가열
지난해 말부터 국회, 지자체 차원에서 공공의대 설립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공의대를 졸업해 의사면허 취득 후 일정기간 동안 해당 지역 공공보건의료기관, 공공보건의료 업무에 복무하도록 만들어 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목적이다.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이용호 의원, 김형동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 김원이 의원 등이 발의한 관련 법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더구나 올해 초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추진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지자체의 유치전 경쟁은 가열되고 있다.
현재까지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는 ▲인천 ▲부산 ▲경기 동두천 ▲경북 안동 ▲경남 창원 ▲전남 순천 ▲전남 목포 ▲충남 공주 ▲충남 아산 등이다.
국립대 뿐 아니라 카이스트·포스텍 등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 연구중심의대인 의학전문대학원을, 충남 아산 경찰타운에 경찰병원 분원 건립이 확정된 경찰대도 “의대를 설치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특히 전남도의 경우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지자체’라는 점을 내세우며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응급의료분야 취약지역 98곳 중 17곳을 전남이 차지하고 있으며 중증 응급환자 유출률은 48.9%에 달하는 등 절대적 의료취약지”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일부 국립대들은 공조에 나섰다. 창원대, 공주대, 목포대, 순천대, 안동대 등 5개 대학은 정부 세종청사를 방문해 공동 건의문을 복지부 장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건의문에는 ▲권역별 국립의대, 부속대학병원 우선 설립 및 국가 지원 ▲권역별 국립의대 설립에 필요한 의대 정원 배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의료취약지, 의사 정원 1000명 늘려야 해소”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非의사단체는 “공공의대,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치료가능 사망률이 평균을 초과한 지역, 의사 수가 평균 미만인 지역 등 평균 대비 부족한 의료자원을 해결할 방법은 의사 증원이라는 논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의사와 공공병원이 부족하고 치료가능 사망률이 높은 ‘최악 의료취약지’에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실련에 따르면 치료가능 사망률이 평균을 초과한 지역은 충북, 인천, 강원, 전남, 경북 등이었으며 전남, 충북, 충남, 경북, 경남 등은 의사 수가 평균 미만인 곳으로 파악됐다.
공공병원 설치율이 평균 미만인 지역은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강원, 인천 등이다.
이를 종합하면 인천, 전남, 경북 지역은 치료가능 사망률이 높으며 의사 수, 공공병원 설치율 모두 전국 평균 이하인 셈이다.
경실련은 “국회,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논의를 재개해 법과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하며 “지역 의료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주민, 지자체와 연대해 ‘지역완결적 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의사단체 “의사 부족은 어불성설”
지난 2020년 의대 정원 확대를 계기로 총파업을 진행한 의료계는 최근 공공의대 신설,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가열되는 중에도 여전히 “무작정 의사 정원을 확대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고 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경실련 주장을 “비약적 결론”이라고 반박하고 나서기도 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 심화로 인한 인구감소 추세에 비해 우리나라 의사 수는 매년 3200여 명이 배출되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의협은 의사 수가 결코 부족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를 제시하면서 경실련 논리에 대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22년 5200만명에서 2070년 3800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보건복지부 보건복지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 국내 면허 보유 의사는 13만 여명으로 집계됐다. 의사 1인당 국민 수는 2009년 641명에서 2020년 450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인구 대비 의사 수는 역설적으로 매년 증가 중이다.
의협은 “우리나라는 의사 부족이 아니라 의사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 의료서비스 및 접근성을 자랑하는 국가가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정부, 국회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강민구 대전협 회장은 “기존과 달라진 입장은 없다”며 “의협 상임이사회에 참여해 의료계 현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의협 산하단체로서 공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긴장감 속에 올해 1월 말 재가동된 의정협의체에서는 의대 정원 논의가 다뤄지지 않았다.
최근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돼 의료계가 대정부 투쟁을 천명한 상황에서 회의는 기약 없이 중단될 전망이다.
공공임상교수 1~4차 모집했지만 의사 ‘외면’
지난해 7월 시작된 ‘공공임상교수제도’ 시범사업은 여러차례 모집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의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공공임상교수제도는 국립대병원 소속 정년보장 정규의사를 모집해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등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필수의료·수련교육·연구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작년 6월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에서 시행된 1차 모집에서 정원 150명 중 지원자는 10% 미만이었다. 이후 8월 시행된 2차 모집에서도 결과는 처참했으며 지난해 11~12월 3·4차 모집에서도 성적은 부진했다.
지방의료계와 교육부 측은 아직까지 성적이 저조하더라도 “공공임상교수제는 적절한 해법”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은 “의사 정원을 늘리지 않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의료계도 동의하는 사안이고 근본책이 맞다”며 “그러나 이번 모집에서도 아직 지원자가 한 명도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현재 대학병원 교수들도 사표를 낼 정도로 의사인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공공임상교수제 사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게 조승연 회장 시각이다.
그는 “공공임상교수제를 필수의료 강화사업의 큰 틀에서 국정과제로 보고 대통령실 차원에서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우선 법제화 등의 조치로 드라이브를 거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상황은 똑같을 것이다. 공공임상교수 사업마저 실패하면 외국 결국 외국 의사를 수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교육부 국립대학정책과 관계자는 “성과는 저조하나 현장에서는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는 의견을 계속 들려주고 있다”며 “현장 의견을 청취해 사업을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은퇴 의사 지방으로”… ‘시니어 의사 매칭’ 추진
공공임상교수제가 부진한 가운데, 또 다른 아이디어도 추진되고 있다.
의협과 국립중앙의료원(NMC)은 은퇴한 ‘시니어 의사’를 지방의료원에 보내는 사업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의료계 주도로 고안된 사업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가운데, 지난해 전국 47개 공공병원이 “해당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해 수요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시니어 의사 매칭 사업은 지역거점공공병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소속 병원, 근로복지공단 소속 병원에 퇴임한 의대 교수, 종합병원·중소병원 봉직의를 보내는 게 골자다.
임준 NMC 공공의료본부장에 따르면 지난해 8~9월 지역거점공공병원, 보훈병원, 근로복지공단 소속 병원 등 총 56개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수요조사 결과, 총 47개 의료기관이 “참여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지역거점공공병원 41개소의 83%, 보훈병원 6개소의 67%, 산재병원 9개소 100% 등이었다. 지역거점공공병원 34곳은 “총 165명 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보훈병원 4개소는 총 31명의 의사가 필요하고, 산재병원 9개소는 30명의 의사 충원을 원했다. 이들 병원은 대다수가 관사를 제공하고 평균 급여수준을 조정할 의지도 있었다.
수요가 이러한 가운데 공급 측면도 양호했다. 2021년 1월 의협이 전국 60세 이상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2328명 중 ‘은퇴 후 재취업 의사’에 대해 긍정한 비율이 68.4%로 높았다. 또 응답자 약 절반(49%)이 재취업 시 거주지를 옮길 의향도 있었다.
이들이 은퇴 후 근무하고 싶어하는 공공의료기관은 지방의료원, 보건소, 보건지소, 군립의료원 순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의 51%는 필수진료과목 전공자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요와 공급이 대략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업 구상 과정에서 세심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지태 대한의학회 회장은 “개원 후 은퇴한 의사는 대학에만 있던 의사에 비해 더 고령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일이 많은 분야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의료소외지역은 고령 의사가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문제도 어려울 수 있어, 지역에 대한 이해가 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