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상] 국내 소아청소년과 의료체계 붕괴가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수년간 누적된 전공의 및 전문의 부족이 결국 인프라 와해로 이어질 위기다.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의료취약지가 늘어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청과 세부전문의를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방이나 소규모 의료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수도권 대학병원들도 소청과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 진료를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부모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아이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 떠돌아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외부요인과 함께 기피과 낙인 역시 좀처럼 개선되고 있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 국가 차원의 소청과를 살리기 위한 개선책이 시급하다. 소청과 위기 상황과 대안을 2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수년 전부터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간 소위 의료취약지로 여겨졌던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에서조차 소청과 진료 인프라가 흔들리는 현장이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응급실에서 소청과 진료 시간을 제한하거나, 소청과 전문의가 있는 경우에만 진료를 볼 수 있는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이 늘고 있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만 16세 미만 소아청소년 응급실 야간진료 제한을 안내했다. 소청과 진료 가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변경됐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말 전공의 모집에서 3명 정원에 단 1명이 지원했다. 2020년도에는 지원자가 없었다. 인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버텨오다 결국 한계에 봉착한 셈이다.
이대목동병원 또한 지난 9월부터 '한시적으로 소아 환자는 인근병원 응급실 진료를 이용해달라'는 안내문을 붙여두고 있다. 이대목동병원도 2020년도 전공의 모집때부터 지원자가 아예 없거나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밖에 한양대병원, 중앙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일산백병원, 인천성모병원 등 수도권 대학병원 곳곳에서 소청과 응급 진료를 제한하고 있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소청과 전공의 여력에 따라 응급실 진료 시간을 조정해왔는데, 올해 인력이 더 부족해지면서 12시 이후로는 소청과 전문의 선생님이 안 계신다는 안내를 환자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대학병원 관계자도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소청과 진료는 오후 10시까지 제한을 두고 있다. 24시간 운영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소청과 선생님 한 명이 안 계시면 못 하는 거다. 야간 진료를 보고 있는 다른 병원들의 상황도 비슷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지자체 7곳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0명'
보건복지부의 과목별 전공의 지원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소청과 지원율은 78.5%, 2021년에는 37.3%로 급감했다. 또한 소청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시군구 지역이 7곳에 이른다.
비단 이들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전반에 소청과 인력 부족에 따른 진료 공백이 예상되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별 온라인 맘카페 커뮤니티에는 야간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묻는 글이 빈번하게 올라온다.
‘9월만 해도 소아응급 받아준다고 했는데 지금은 안된다고 한다’ ‘소청과 의사가 없으면 진료를 안 봐주니 확인을 해야 한다’는 등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병원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비상이 걸린 셈이다.
의료계는 정부에 개선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대한아동병원협회는 보건복지부에 소아청소년정책과 신설을 제안했다. 협회는 “통계 작성 이래 처음 신생아 30만명 선이 무너지는 등 소청과 진료환경 변화 및 전공의 지원 급감에 따른 의료공백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 동안 소청과 진료량이 급감했고 폐업 사태가 속출했다”며 “소청과 전공의 또한 지속적으로 감소해 결국 소아청소년의 전문진료를 책임질 세부·분과전문의 감소도 예견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협회는 “복지부에서 소청과를 신설하고 진료 인프라 붕괴를 막을 정책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