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거짓말, 통계’. 미국 작가 대럴 허프가 1954년에 쓴 책이다.
온갖 기묘한 방식으로 통계를 조작하는 사례를 수없이 담고 있다. 나온 지 60년도 지난 책을 빌 게이츠는 올해 ‘TED 콘퍼런스’ 강연에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다. 빌 게이츠는 매년 필독서 목록을 여러 방식으로 소개해왔는데 ‘새빨간 거짓말, 통계’는 올해 추천된 6개의 책 중 하나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이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수급 중장기 추계 : 2015~2030’ 결과에 대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연구 방법론에 심각한 오류가 있어 보건의료인력과 관련된 정부정책의 기초자료로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이다.
보고서는 의사인력이 2024년부터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해 2030년 4267명∼9960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결과를 담고 있다.
더불어 “의사 수요는 의사의 생산성 즉, 의사 1인당 1일 환자수에 큰 영향을 받는데, 우리나라는 OECD국가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일본이나 OECD국가 평균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설정한다면, 우리나라 의사인력 공급은 증가시켜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이 첨부돼 있다.
2012년 한국 의사 1인당 환자수는 50.3명으로 유사한 의료체계를 가진 일본(31.0명)보다 많은 수준이다. OECD국가 평균(13.1명)보다는 크게 높은 수준으로, 일본이나 OECD국가의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의사인력 공급은 부족하다. 경제수준과 소득수준 향상으로 국민들의 질적인 의료서비스 욕구가 증가한 것을 반영하면 더욱 그렇다는 평가다.
보사연의 보건의료인력 수급 중장기 추계는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중장기(2015년∼2030년) 수요와 공급 전망을 통한 보건의료인력의 적정 수급을 도모하기 위해 실시된다.
보건의료 인력 수급정책 추진을 위한 통계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2008년 이후 5년 주기로 실시되고 있으며, 이번에 발표된 연구는 2013년 실시된 보건의료인력 수급 중장기 추계결과다.
이는 향후 수급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입학정원 조정과 유휴인력 활용, 인력의 재배치 등을 포함한 효율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하는데 쓰인다.
즉, 2030년 4267명∼996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는 의료계에 입학정원 증원 등의 메시지를 던진다. 의과대학 신설 움직임이 있는 지금, 의료계가 보사연의 통계를 더욱 유심히 살피는 이유다.
의협이 제기한 문제점과 새로운 통계
의협은 보사연의 연구 방법론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짚는다. 그간 토론회 및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수차례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이에 대해 보사연 연구자도 충분히 공감을 표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은 것에 대한 유감도 전했다. 의협이 제기한 문제는 △방법론적 한계 △근무일수 오차 가능성 △수요예측 오차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우선, 이번 연구에서 의료이용량 추계에 적용한 ARIMA 모델은 중장기 기간을 예측하는데 정확도가 떨어져 방법론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ARIMA 모델은 1년 후 예측 등 주로 단기예측을 할 때 많이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255일과 265일로 설정한 근무일수에 대한 오차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는 의료기관 개원의들의 실제 근무일수를 반영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의 병·의원들은 일요일 및 법정공휴일을 제외하고는 진료를 수행하고 있어 평균 근무일수가 300일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의료수요 예측도 정확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과거 10년 동안의 수요로 미래를 내다보는 방식으로 적절한 수요 예측이 가능한지 반문한 것이다. 현재 노령인구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출산율이 현저히 감소해 우리나라 전체적인 인구가 감소추세인 상황 등이 수요예측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의협은 “의사수급 추계에는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나리오별로 다양한 결과값이 도출될 수 있다”며 “다양한 변수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총량적인 수급추계 결과만으로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인력 수급에 대한 논의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인력총량과 의사 분포의 불균형 문제에 대한 혼선”이라며 “의사인력의 수도권 집중 등 지역 불균형 문제는 총량 정책으로 풀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와 의료인력 배치·활용 등에 대한 정책적 고민을 통해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의협은 의사 공급과잉이 우려된다는 결과를 담은 다른 통계 결과를 제시했다. △의사밀도 △인구증가율 대비 의사수 증가율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수와 그 증가율을 OECD와 비교한 자료다.
우선,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의사밀도는 9.86/㎢로 OECD 평균 4.25에 비해 훨씬 높다. 여기서 의사밀도는 국토의 단위 면적(10㎢) 당 활동의사 수다.
의협은 “의료접근성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좋다는 것이다. 동일면적 내에 의사밀도가 상당히 높아 환자가 의사들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인구증가율 대비 의사수 증가율을 살펴보면, 2000년 대비 2010년 인구증가율(7.5%)에 비해 인구 10만명당 의사수 증가율(40%)이 약 5배 정도 높다. 의협은 “2020년에는 의사인력의 초공급 과잉이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수와 그 증가율을 OECD와 비교한 자료도 내놨다. 2010년 활동 의사수는 2005년 대비 25%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6.9% 증가에 그쳐, 우리나라 활동의사 증가율이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높다는 설명이다.
보사연 "상반된 통계 결과, 냉철한 비교·분석 필요"
보사연과 나름의 통계를 근거로 의협과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보사연 연구결과에 대한 의협 측의 지적을 먼저 살펴보면, 의협의 주장대로 ARIMA 모델이 단기예측에 대한 통계적 타당성이 높다는 것은 장점으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보사연은 왜 중장기 예측에 ARIMA 모델을 채택했을까. 보사연은 연구 보고서에서 평균증가율, 로지스틱 함수, 로그함수 등 다른 방법을 선정하지 않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선, 의료이용량 추계에 앞서 우리나라 추세를 먼저 분석했다. 보고서는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입원 및 외래 의료이용량 수준은 OECD국가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 상위그룹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지 25년이 지나 의료이용 수준이 안정적인 단계에 도달했다고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국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이용량과 공급·경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의료미충족 지역 등이 많이 해소돼 과거처럼 가파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어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이용량은 과거의 증가 추세가 지속된다는 선형적인 증가패턴이 될 가능성이 적다. 향후 의료이용 증가 추세는 증가율이 감소하는 완만한 추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토대로 추계 방법을 살펴보면, 평균증가율은 과거와 같은 지속적 증가 추세를 따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로지스틱 함수는 오른쪽으로 누어있는 에스(S)자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 경우도 10년치 자료를 사용하는 경우 목표 연도까지의 추세는 급격히 증가하는 구간에 속할 가능성이 높아 적절하지 않다.
나머지 로그함수는 증가율이 완만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 이용 상황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연구자가 정한 상한과 하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보사연이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된 로그함수 보다는 시계열분석에서 ARIMA모델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연구 책임자인 오영호 박사는 “통계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고 오류를 줄이기 위해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그는 “다른 모델로도 추계를 해봤지만, ARIMA모델이 가장 보수적으로 추계됐다. 국시원이 선정한 통계학과 교수, 인력추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에서 논의를 했고, ARIMA모델이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적고 적합도를 높이는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어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근무일수를 255일과 265일로 설정한 것은 인력 추계시 일반적인 수치를 도입한 결과다. 255일은 공휴일과 학회 등 참석 일수를 제외한 것이고, 265일은 공휴일만 제외한 값이다. 해당 근무일수는 1998년의 연구 내용을 근거로 적용된 수치다.
오영호 박사는 “의협에서 근무일수 300일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연구결과를 통해 명확하게 추계된 것이 아니어서 객관적이지 않다. 이를 기반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하는 것은 오류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꼬집었다.
의협 역시 “실제 개원의들의 근무일수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심사평가원의 의료기관 종별 데이터 등 실증자료를 기반으로 해 심층검토가 필요하다”며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과거 10년 동안의 수요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 것에 있어서는 자료의 한계를 인정했다. 오 박사는 “더 정확하고 많은 자료가 있다면 연구 결과의 질이 향상될 것이다. 가지고 있는 자료의 한도 내에서 최적의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의협이 제시한 통계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 의사밀도가 OECD 평균에 비해 높다는 주장은 보건의료인력 추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면적이 넓으면 의사가 좀 더 필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의료수요는 면적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거리가 큰 의미가 없는 지금 면적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각종 증가율 비교도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증가율은 말 그대로 비율이기 때문에 애초 시작점이 된 기준수에 따라 함의가 달라진다. 증가율이 아니라 그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정형선 교수는 “증가율로 인력수급의 적정성을 살펴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비율이 아니라 그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의사 수가 워낙 적었다. 1990년대 시행된 의대 신설과 정원 증원 정책으로 인구 증가율 대비 의사 증가율이 높아졌지만, 2000년 대 정원을 줄여 다시 낮아졌다. 저출산 등으로 인구 증가율과의 비교는 따져봐야겠지만 비율을 살피는 것은 오류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의협의 인력총량으로 인력 수급 정책을 펴는 것을 비판한 것과 관련해 “정부로서는 총량밖에 정책 수단이 없다. 의사에게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지역 배분에 있어 강제력이 없다. 일부 지역이 과잉이라고 해서 전국을 비슷한 수준으로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에서는 통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통계학이라는 비밀스러운 술어는 증거를 중요시하는 문화를 가진 현세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혼란에 빠뜨리게 하며, 사물을 과장하거나 극도로 단순화하기 위해 자주 이용된다. 용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직하게 사용하는 발표자와, 사용된 용어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들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황당한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