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넘어 의약품도 부각되는 '필수의료'
품절 대란 '약국 뺑뺑이' 우려…"혁신 R&D 기반 '제약주권' 확립"
2023.11.02 11:15 댓글쓰기




환절기를 앞두고 감기 환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어린이 해열제와 감기약을 중심으로 품절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약 부족 사태에 따라 ‘약국 뺑뺑이’를 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약품 품절 원인은 다양하지만 주로 낮은 약가와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정 등으로 촉발된다. 일부 처방받는 조제용 감기약 공급부족은 제약사의 생산 포기가 주된 이유다.


의료계 및 약계에 따르면 해열제, 소염제뿐만 아니라 천식치료제, 항생제 등 다수 약들이 품절대란을 겪고 있다. 


어린이 해열제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에 이어 최근에는 조제용 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성분 제품까지 줄줄이 품절로 주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근 경기도약사회가 회원 492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99.4%(489명)가 ‘의약품 수급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6월 기자 간담회를 열고 “소아청소년 천식 치료제, 항생제, 독감치료제 등을 비롯한 141개에 달하는 필수의약품이 품절돼 소아 청소년 치료에 치명적인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으면서 감기와 독감 유행이 지속됐는데도 제약사들은 수요만큼 약 생산에 적극적이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5월에는 어린이 해열제 점유율 1·2위 제품이 각각 갈변현상, 액체분리 현상이 나타나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재고가 바닥나고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다. 


불안정한 원료수급도 의약품 품절에 한몫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 극심한 품절 사태를 겪었던 변비약 ‘마그밀’의 경우 원료수급의 문제로 품절이 이어졌었다.


호흡기질환(천식) 의약품인 ‘미분화부데소니드 제제(풀미코트, 풀미칸 등)’는 공급량이 2021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제약계 관계자는 “정부가 약가를 낮게 책정하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어 마진이 남지 않은 조제용 감기약 생산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약을 먼저 생산하게 된다”면서 “감기 환자가 증가할 경우 공급 속도가 환자 증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세계 주요 국가 ‘의약품 부족’ 현상 심화


미국에서도 항응고제, 간질치료제,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등 필수의약품을 포함한 부족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알려졌다. 


공급 중단이 발생한 의약품은 주로 제네릭(케미컬 복제약) 의약품으로 코로나19 이전부터 부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다최근 낮은 가격 등으로 인해 공급 불안정이 발생하는 추세다. 


유럽은 시장에 시판된 제네릭 의약품 전체 품목의 평균 26%, 제네릭 의약품 중 항생제 33%, 항암제 44%가 감소했다. 


호흡기 감염 급증으로 항생제 수요가 증가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높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제조 지연 및 생산능력 부족으로 대부분 국가에서 의약품 수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올해 6월 기준 일본 의약품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800개 품목 이상이 공급 정지나 출하 제한 상태로 의약품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해당 품목 가운데 75%가 제네릭이다.


일본 제약단체연합회는 제네릭 의약품 1892개는 출하 제한으로 분류, 1021개는 공급이 정지돼 제네릭 전체 품목 중 32.5%가 공급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들은 의약품 공급 안정화를 위해 법안 발의, 행정명령, 보고서 발간, 국가 및 이해관계자 간 협력 등 다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엔데믹 시점이지만 비염, 알레르기 등 호흡기 질환자 증가로 인한 의약품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 완제의약품 자급도는 68.7%,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11.9%에 불과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원료의약품 수입 상위 10개국 중 50.1%를 중국과 인도가 차지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취약한 구조를갖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올해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을 통해 필수의약품 적시 공급과 원료의약품 자급화를 위한 규제혁신 및 지원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공급 중단 또는 기허가가 없는 국가 필수의약품은 필요시 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상한금액 신속 인상 등 안정적 공급을 위한 방안이 마련된다. 이와 함께 원료의약품 국내 생산 촉진을 위한 연구개발 및 생산 관련 인센티브 부여도 지원된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의약품을 자급화하기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지난해부터 2026년까지 생산기술 개발 지원을 시작했다. 현재 5개 품목 및 개바릭관이 선정돼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 제언도 존재한다. 새로운 팬데믹 위험을 대비해 백신·치료제 R&D를 대폭 확대하고 미국 ‘ARPA-H’와 같은 혁신 R&D 시스템을 구축, ‘제약주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관협력을 통해 원료공급과 생산능력 등을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을 포함, 범정부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요구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 연구팀 관계자는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의 세제혜택 및 R&D 지원 확대, 약가 우대기간 연장 등 의약품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채산성 문제 등으로 인한 필수의약품 생산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약가 인상 및 인센티브 제공 방안도 실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의약품 수급 불안정, 체계적 대응방안 마련”


지난 3월부터 복지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한 대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의약품 제조·유통협회 등 관련 단체로 구성된 ‘민관협의체’를 매달 운영중이다.


8월에는 기존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의약품 수급불안정 대응 절차’를 발표, 이행에 들어갔다. 특히 공급·유통·수요를 연계 분석하고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종합 대응한다는방침이다.


현재 식약처는 환절기, 동절기를 대비해 해열제 등 감기약, 특히 소아용 시럽제에 대해 제조업체·수입자를 대상으로 생산·수입량 계획을 조사중이다.


복지부 약무정책과는 “부족이 우려되는 의약품들에 대해 공급 독려와 함께 처방시 수급 부족 상황 안내 및 적절한 처방 협조 요청 등 부족 사유별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예정”이라고설명했다.


콧물약(슈다페드정), 해열제(세토펜현탁액)에 대해선 일부 가수요에 따라 수급불안정이 지속 중이라고 판단, 매점매석 단속을 추진하기 위해 9월 7일 조사 계획을 안내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대한아동병원협회 등에서 제기한 소아용 의약품 부족 건에 대해 복지부는 최근 간담회를 갖고 해당의약품의 필수성 및 수급 현황 등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식약처는 소아용의약품 부족사례 원인과 경과 분석을 통한 공급관리 체계 개선 연구를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공급중단 보고 건에 대한 조치사항 공개, 자료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검색기능 개선 등 시스템도 마련된다.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에 대해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의·약계와 지속 협의,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약국 등 현장에서 의약품 부족 현상이 예방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기관간 협력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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