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만 해도 가장 효율적으로 잘 돌아가던 우리나라 의료였다. 4월 안에 정부가 어떻게든 이 사태를 멈춰야 한다. 사과하고, 원점 재검토해서 전공의들이 돌아오게 해야 한다."
한 달 전 "매일 악몽을 꾸는 것만 같다"며 사직의 변(辯)을 남겼던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4월이 채 열흘도 안 남은 시점에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수술하는 게 진짜 제일 재밌고 너무 좋다"던 최 교수는 지난 두 달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간 고난도의 폐암 수술을 위해 합을 맞췄던 팀원들이 모두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다. 실제 "정말 너무 괴롭다. 팀이 없으니 수술도 점점 줄이고, 쉬운 수술만 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있기 전에는 어떤 어려운 환자가 와도 자신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치료 방법을 안내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오는 자괴감이 굉장히 우울하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최세훈 교수는 지난 3월 말 "이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막지 않으면 역사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며 "전공의가 돌아오게 하고 다시 좋은 팀을 꾸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가 지난달 19일 '사직의 변' 공개를 전후로 여러 교수가 사직 의사를 공개 표명한 가운데, 유독 심장내과, 흉부외과 교수들이 다수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이미 어렵사리 버티고 있던 교수들"이라며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게 하려 했는데, 정부가 이 사태를 촉발하며 저를 포함해 교수들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갔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사직을 강하게 말하는 교수들 대부분이 필수의료 분야 의사다. 정말 중요한 그 사람들이 사직서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대생 5월 휴학, 6년간 군의관‧공보의 공백"
"교수도 언제든 사직할 자유 정도는 있다"
최세훈 교수는 4월을 우리나라 의료가 회복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주장했다. 그는 "5월이 되면 의대생들 휴학을 안 받아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 여파가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연세의대 이은직 학장도 지난 19일 의대교수 공지를 통해 "4월이 지나면서 의학교육의 부실과 파행을 복구하기 어렵다"며 "휴학 승인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오는 5월 의대생들 휴학 또는 유급이 발생할 경우 "일단 남학생들은 전부 현역병으로 입대를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6년간 군의관과 공보의 배출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이탈에 이어 교수들의 이탈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달 25일이 되면 교수들이 대거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지남에 따라 자동 효력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에서다.
최 교수는 "교수들이 보여 주기식으로 사직서를 던진 게 아니다"라며 "사직서 수리 효력을 거론하는 게 전공의들에게 먹힐지 모르겠지만, 교수한테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교수들이 남아 있는 것은 환자들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꼭 수술해야 하는 환자들은 수술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있는 환자들은 이미 많이 보냈다"고 전했다.
사직 후 계획에 대해서는 "한동안은 쉬고 싶다. 가족들도 '아빠는 그냥 바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수술말고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사회적으로 바보인 셈이다.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의 사과와 원점 재논의, 유일한 해결방안"
최세훈 교수는 정부가 이번 사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 "사과하고, 원점 재논의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즉답했다.
그는 "이 지경까지 몰아붙인 것은 정부다. 소통을 끊고, 명령하고, 광고까지 하면서 몹쓸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금 와서 사과도 없이 타협하자는 것은 이미 시간이 지나도 너무 지났다"고 일갈했다.
이어 "이대로 가면 의사도 의료도 모두 망한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전국을 망가뜨리면서 돌이키지 않는지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