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넘은 의료대란 장기화에 휘청이는 '대형병원'
비상경영 등 자구책 마련하지만 적자 누적…제약·의료기기 회사·환자도 피해
2024.05.11 06:24 댓글쓰기

[구교윤·최진호 기자] 정부 의대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장기화하면서 대학병원들이 휘청이고 있다. 전공의 집단 이탈과 전임의 재계약 거부로 진료와 입원·수술이 축소되면서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무급휴가 시행, 보직 수당 및 성과급 반납 등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매일 억 단위로 발생하는 적자에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특히 직원 급여 지급이 어렵다는 호소가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등 대형병원 위기가 심화하는 형국이다. [편집자주]


빅5 병원도 경영난에 '비상경영체제' 전환 확대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수도권 '빅5(서울대‧아산‧세브란스‧성모‧삼성)' 병원들은 일찍이 의사를 제외한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등 비상경영체제를 가동 중이다. 


지난달 비상 경영을 선포한 서울대병원은 기존 500억원 규모였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1000억원으로 늘리고 인건비 감축을 위해 간호 인력을 중심으로 무급 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도 의사를 제외한 전 직원에게 7일간의 무급휴가를 최대 4주까지 받고 있고, 서울아산병원은 무급휴가를 비롯해 빅5 병원 중 유일하게 희망퇴직 신청까지 받고 있다.


서울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아직까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진 않았으나 병상가동률 감소로 인해 매출이 전년 대비 급감한 상황이다.


실제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16일부터 3월 말까지 500병상 이상인 전국 수련병원 50곳의 전체 수입은 2조240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6645억원)보다 약 4238억원 줄었다.


한승범 상급종합병원협의회 회장은 "현재 상황은 상급종합병원 존폐가 불투명한 위기 상황으로 환자로 보면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단계"라며 "건강보험 청구액 선지급, 학교법인 기채 승인 등 특단의 정부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이어 "정부는 수련병원에 당직비를 포함한 인건비 일부와 군의관·공중보건의 파견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태 장기화로 인해 병원 누적 적자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공백에 임직원 '급여 지급' 중단 우려도 확산


빅5 병원보다 규모가 작은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충남 천안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지난달 비상 경영에 돌입해 무급휴가를 시행 중이다. 부산대병원, 경상국립대병원, 아주대병원,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등도 전공의 이탈로 인한 경영난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제주도 유일한 국립대병원인 제주대병원 역시 최근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제주대병원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이미 적자 334억원을 기록했으나 전공의 이탈로 올해 재정 적자만 600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공의 공백이 석 달째 이어지면서 직원 급여 지급이 어렵다는 호소가 공개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오주형 경희의료원장 겸 경희대학교병원장은 최근 교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장 금년 6월부터 직원들 급여 지급 중단과 더불어 희망퇴직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 원장은 "현재의 상황이 이어질 경우 개인 급여를 비롯한 각종 비용 지급 등에 필요한 자금이 연말 막대하게 부족할 것"이라며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해 무급휴가·보직수당 및 교원성과급 반납·관리 운영비 일괄 삭감·자본투자 축소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려 노력 중이지만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다만 경희대학교 김진상 총장이 오주형 원장 서신에 대해 일축하면서 불안감을 잠재운 모습이다.


김진상 총장은 지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희의료원 경영난과 관련해 의료원들의 급여 지급 중단과 희망퇴직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내용에 대해 "그런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기본적인 철학은 학생을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라며 "이런 특별한 환경에서 대학에서 자율권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병원 대금 결제 연기…제약·의료기기 업체들도 직격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영 사정이 어려워진 병원들이 사용하는 의약품과 의료기기 대금 지급기한을 늦추면서 이들 제품을 납품하던 업체들도 신음하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은 경영난을 이유로 의약품 및 의료기기를 납품하던 업체를 대상으로 대금 지급 시기를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변경했다. 지난달 말이었던 대금 지급 시기를 3개월 뒤로 연장한 것이다. 


당장 현금 흐름에 어려움이 생긴 업체들은 일방적 통보에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병원과 계속 공급 계약을 이어가야 하기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통보를 수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병원들의 경영 상황을 감안하면 대금 결제 기한을 또 다시 연기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실제 병원마다 대금 결제 기한이 2~8개월까지 다양하게 형성돼 있는 만큼 업체들의 불안감도 높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거듭하자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국내 및 다국적 제약사에게 고통 분담 차원에서 대금 지급 기한 지연에 따른 협조를 요청하고 나섰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최근 제약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의료환경 어려움으로 대형병원 중심으로 결제 시기가 미뤄지고 있다. 대금 지급 기한을 미뤄달라"고 호소했다.


한 의약품 유통업체 관계자는 "의료대란으로 종합병원 도매 매출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눈물만 난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특히 국내 주요 심포지엄, 학회, 세미나 등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실적 피해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실제 국내 상위 빅5 제약사들의 금년 1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영업이익이 줄어들거나 둔화한 제약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의료대란 장기화에 따른 영향이란 분석이다.


A제약사 관계자는 "1분기부터 의약품 판매 예상치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며 "당장은 미미하지만 의료대란 사태가 장기화 된다면 올해 목표를 달성할지 모르겠다"라고 우려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밀접하게 소통해야 할 의료 현장과 단절은 임상연구 지연 또는 방향성 이탈로 이어지고, 이는 연단위의 상업화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역시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관 단체와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실제 B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관 진료와 수술이 축소되면서 매출이 50~70% 감소했다. 여기에 결제 대금 기한까지 연장되면서 앞날이 캄캄해졌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협회는 병원 대금 결제 지연 문제는 물론 할인 요구도 심해지고 있는 만큼 공동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여러 단체장 등과 회동을 가질 계획이다.



환자 피해 심각…췌장암 환자 10명 중 6~7명 진료 차질


의정 갈등은 결국 환자들의 피해로 귀결되고 있다.


한국췌장암환우회에 따르면 현재 치료 중인 30~80대 췌장암 환자·보호자 1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4월 24~28일) 정상진료를 받은 췌장암 환자는 10명 중 3~4명 수준에 그쳤다.


환자 피해 사례로는 외래진료 지연 34명으로 가장 많았고 진료 거부(23명), 입원 지연(21명), 전원 종용(13명) 등이 주를 이었다.


항암치료 1주 지연과 2주 지연도 각각 11명이었다. 특히 기존 입원 항암이 아닌 가방항암(가방을 싸고 다니며 직접 관리)으로 변경된 경우도 22명이나 됐다.


항암치료를 먼저 한 뒤 5월 중 수술받기로 됐으나 '수술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고 지역 병원에서 수술한 경우도 있었다.


또 케모포트(심장 근처 큰 정맥에 삽입하는) 통증으로 응급실을 찾았으나 집에 되돌아가기도 했다.


이에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중증, 응급 환자들은 차질이 없다는 발표와는 달리 공포의 5월을 보내고 있다. 암은 계속 판정되고 있는데 항암, 외래 지연을 흔한 일이 됐고 정신적 충격에 쌓인 환자는 진료자체가 거부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협의회는 정부에게 의료현장 피해사례 전수조사를 의대 교수들에게는 주 1회 휴진 발표 철회를 촉구했다.


특히 의료 공백이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윤석열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암환자협의회 등 6개 중증질환 환자 단체가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달 15일 입장문을 내어 "지난 두 달간 선거를 이유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권이 총선 준비를 위한 전초전과 온갖 선거 관련 이슈로 국민의 신음하는 모습을 되돌아보지 않아 환자들은 두 달간 이를 악물고 고통을 버텨 왔다"며 "이제 국회가 개점휴업을 끝내고 환자 고통을 해결해야 할 시간"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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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드레아 05.15 05:56
    정부는 소통도 안되고, 준비도 안되어 있는 의대정원 확충 논리 그만해주세요. 전공의 분들은 병원 복귀 부탁드립니다.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연기되고/기다리며 환자들이 고통 받고있습니다. 가족들이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못받고 있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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