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의료전달체계…병·의원 역할 재정립 계기
지역거점병원 필두 1·2·3차 네트워크 구축 정상화 필요…醫 "정부 방안 불신"
2024.07.14 16:46 댓글쓰기

[기획 2]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5월 개최한 ‘국민이 바라는 의료시스템’ 공모전 대상 수상자는 한국 의료 첫번째 문제로 ‘3분진료’를 꼽았다.


국민들 꼽는 한국 의료 문제 '3분진료'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몇 시간에 걸쳐 올라왔지만 의사와 마주한 시간이 채 3분이 안 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3분진료 근간에는 의료전달체계 붕괴가 있다.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998년 진료권 개념이 폐지되면서 환자들은 수도권 대형병원에 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학병원들로 저수가 기반을 극복하기 위한 수익 극대화 차원서 경증진료를 크게 늘리면서 한정된 시간에 놓인 많은 환자는 3분씩 밖에 할당받지 못하는 현실에 처했다.


그 사이 수도권과 지역의료 불균형은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졌고, 서울 빅5 병원 원정진료 환자 비율은 지난 2022년 기준 42.5%까지 증가했다.


정부는 2019년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단기대책을 발표하며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질환 진료 강화, 지역 병·의원 회송 활성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3분진료는 해결되지 못했다.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에 3년 최대 500억 투입


정부는 지난 3월 13일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기능·수요 중심 전달체계 정립과 필수의료 네트워크 강화, 그리고 지역의료의 안정적인 인력 확보와 투자 확대, 자원 유출 최소화를 골자로 한다.


우선 그간 경증 환자를 두고 경쟁적 관계로도 엮였던 상급종합병원, 2차병원, 1차병원 역할과 기능을 강화해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그중 상급종합병원은 임상, 연구, 진료 역량을 균형적으로 강화한다.


국립대병원 등 거점병원을 권역 필수의료 중추 기관이 되도록 육성하고, 일부 상급종합병원은 고도 중증진료병원(4차 병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특히 국립대병원은 정원 규제 등을 완화하고, 기부금품 모집을 허용하는 등 공공병원으로 인해 묶였던 제한을 풀며,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교수 정원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2차병원은 인력 집중화를 통해 일부 중증 및 중등증 이하 필수의료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복안이다.


가령 중진료권 내 필수의료 협력진료 네트워크 구축 하에 분야별 필수의료 질환센터 형태로 종합병원을 지정하고, 인력집중과 수가 지원을 대폭 강화한다.


선도 모델로 중진료권별 3~4개소를 지역 네트워크 기반 필수의료 특화 2차 병원으로 지정해 2025년부터 성과 보상을 추가로 지급하는 혁신형 수가를 적용한다.


또 심뇌혈관, 중독, 소아, 분만, 화상 등 특정 치료 분야 전문병원의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역량 있는 병원의 보상을 강화한다.


의원은 전문과목 외 예방·통합적 건강관리 중심의 일차의료 기능을 확립하고, 의원 간 다학제 일차의료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1·2·3차 의료기관 간 진료협력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올 하반기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신설하고 권역별 3년간 최대 5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거점병원 책임 하에 진료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목적으로, 권역책임의료기관이 지역 특성화 분야를 선정하고 필요한 시설·장비 등 지원을 제시하면 정부가 선정해 지원한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1·2차 병원으로의 회송을 유인하기 위해 동일 시·도 내 의뢰·회송 수가를 개선하고, 상급종병 평가지표에 지역 2차 병원 회송 실적도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상급종합병원 혁신 초안 마련

지역 의료전달체계 구축에는 지역의료 강화가 필수로 동반돼야 한다.

정부는 특히 지역의 안정적인 의료진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지역인재 전형을 대폭 상향,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한다.

지역필수의사제의 구체적 방안은 지난 4월 25일 발족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장학금·수련비용을 지원받고 해당 의대교수로 채용돼 일정기간 지역에서 근무하거나 지역 필수의료기관에 장기근속 계약을 맺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소·중진료권 단위 ‘지역의료지도’를 개발해 지역수가와 인력·병상 정책 수립에 활용하며, 상급종합병원의 수도권 분원 설치 관리도 강화한다.

의료개혁특위는 산하에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를 두고 지난 6월 13일까지 격주에 한 번씩 총 3차례 회의를 열어 전달체계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지난 5월 2차 회의에서는 현재 비상진료체계를 바탕으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등 상급종합병원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의료공급·이용 체계를 안착시키는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3차 회의에서는 6월 중으로 상급종합병원 운영 혁신방안 초안을 마련하고, 의료 현장 의견을 수렴해 7월 중 의료개혁특위에 보고하기로 했다.

“과거 정책들 현장서 미작동, 전문가 의견 수렴해서 실행”

의료계는 그동안 끊임없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요구했지만, 정부 계획에는 불신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오랫동안 이런 대책들이 반복해 제안됐지만, 그때마다 별다른 성과 없이 제자리걸음만 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15일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을 발표하며, 같은 날 ‘의료개혁, 상생의 의료전달체계’를 주제로 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필수의료 패키지 이전에 발표된 정책 등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하는지 확인돼야 향후 정책에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라고 일침했다.

이어 “실손보험이 2003년 도입될 당시 의료계에서 많은 우려를 제기했지만 제도 개선 없이 시행되면서 모럴해저드에 대한 부분만 부각돼 왔다”고 지적했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기조실장은 “섣부른 정책 부작용은 누적된 경험으로 충분히 체감했다”며 “MRI 급여화 당시 영상의학과 전문의 수요 예측 실패가 대표적”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정부가 당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성과를 보는 정책만 추진해 답답하다”며 “결국 재정이 가는 곳에 인력도 움직인다. 자본을 중증의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자들 요구로 이뤄지는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전원을 회송수가 개선이 아닌 법적·정책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장환 충북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월 개최된 세미나에서 “정치가가 할 일은 환자들이 불필요하게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남 해남에서 혈압약 처방받자고 서울까지 와서 진료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지금은 의사들에게 회송 진료비 3만원 줄테니 환자를 설득해 돌려보내라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 의뢰 여부는 의사가 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에 환자가 남아 지역의료가 저절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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