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아닌 정책 판단"…의료법 쟁점과 대법원 판결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원 확정 판례, 영향력 지속 상승" 전망
2025.06.08 09:02 댓글쓰기



사진제공 연합뉴스
의료계를 뒤흔든 의대증원 취소 등을 비롯한 2024년 주요 의료법 판례들은 단순한 법 해석을 넘어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작용한 사례”라는 법학계의 평가가 나왔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학술지 ‘인권과 정의’에 ‘2024년 의료법 중요 판례 평석’을 게재했는데 “의료 영역 대법원 판례의 영향력은 지속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올해도 대법원은 고도로 정책적이고, 때로는 정치적이기까지 한 의료법 쟁점을 다뤄야 했다”며 “이는 단지 정치나 행정부의 기능 부전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의료 영역에서 법의 중요성이 커진 결과로 법원이 본질적으로 정책적 고려를 내포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의대정원 확대, 간호사 의료행위 범위, 공동개설 의료기관 제재 여부 등 주요 사건에서 법원은 단순한 법 조문 해석을 넘어 의료제도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장을 밝혔다.


의대정원 확대 집행정지, “경쟁 격화 법적보호 대상 아냐”


이 교수는 판례 평석을 통해 의료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10건의 판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향후 의료계는 정책 방향 및 법적 대응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개한 주요 판례는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사건 ▲간호사의 골수검사 무면허의료행위 여부 ▲공동개설자의 자격정지에 따른 의료기관 업무정지 사건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사건 ▲코로나19 종교시설 집합금지 명령 적법성 사건 ▲실손의료보험 부당청구 보험금 반환 청구 사건 ▲의료기관의 실손보험 이득금지 원칙 판시 사건 ▲의료과오 형사사건에서 피의자 진술 해석 사건 ▲허위 사망진단서 작성 혐의 무죄 판단 사건 ▲의료기관 공동개설자 관련 판례 (보건의료정책 참여 관련) 등이다.


먼저 의료계 대규모 파업과 국가고시 거부 사태로 이어진 이른바 ‘제2차 의료대란’ 시발점이 된 의대정원 증원 조치에 대해, 대법원은 의대생에 한해 신청인 적격을 인정하면서도 정책적 타당성은 법원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대법원은 전공의, 교수, 수험생 등의 청구를 대부분 각하하고, 의대생 5인에게만 신청인 적격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의사 수 증가로 인한 경쟁 심화는 법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이 아니다”며 의사집단 이해관계가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이에 이 교수는 “의료정책에 대한 반대는 법적 판단이 아닌 정치·사회적 합의 영역으로 이관되며, 법원은 ‘정책 결정 정당성’ 자체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간호사 골수검사, “일반적 위임 허용”…직역분업 체계 전환점


간호사가 전문간호사 자격을 갖추고 일반적인 지시에 따라 골수검사를 시행한 행위를 무면허의료행위로 볼 수 있는지 쟁점이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를 진료보조행위로 인정했다.


기존에는 의사의 개별적 지시 및 입회가 필수라는 입장이 우세했지만, 이번 판결은 “의료행위의 성격과 간호사의 숙련도, 의료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의사-간호사 간 수직적 분업 구조의 유연화를 시사했다.


이 교수는 “오는 6월 시행 예정인 간호법과 맞물려,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에 대한 하위 법령 정비 방향에 실질적인 기준이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공동개설자 자격정지 시 의료기관 업무정지…“설립 구조 재검토”


공동개설 병원에서 일부 의사가 과거 위반행위로 자격정지를 받은 경우, 그와 함께 병원을 운영 중인 의료진 요양급여 청구까지 부정된 사건이다.


대법원은 “개설자 일부의 면허정지에도 불구하고 병원이 계속 운영되는 것은 공중 신뢰 훼손”이라며, 공동개설 전체에 업무정지 효력이 미친다고 판시했다.


이 교수는 “향후 공동개설 의료기관 운영 시 동업자의 법적 리스크가 기관 전체 수가 및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의료기관 설립 구조와 책임 분배 방식 전반의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풀이했다.


동성 파트너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취득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후 취소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동성 간 사실혼은 현행 제도상 피부양자 요건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공단의 자격 박탈을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관련 법령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동시에 지적, 법 해석 이전에 제도 설계 미비점을 노출했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법령상 ‘배우자’ 개념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비혼·동거가족의 사회보장 접근권 문제를 입법화할 필요성을 드러낸 판례”라며 향후 추가적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손보험 부당청구 환수, “의료기관 직접청구 불가”


실손보험사들이 의료기관에 직접 부당지급 보험금 환수를 요구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사건에서, 대법원은 “직접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료기관과 보험계약자 간의 법률관계를 근거로 한 환수 요구가 제한되면서, 보험금 환수 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환수 리스크를 줄이는 판결로 의료기관 법적 부담이 완화된 측면이 있다”며 “다만, 보험사의 내부 심사 강화 및 계약자 상대 청구 증가 가능성은 주의해야 할 요소”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여러 판결에서 드러나든 숨겨졌든, 의료법 전반에 대한 일정한 정책적 고려가 이뤄지고 있다”며 “의료 관련 법·제도에 있어서 법원이 정책 형성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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