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집단 유급 사태 이후 각 대학이 제적 처리 여부를 고심하는 가운데, 새 정부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지가 핵심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부는 이미 유급·제적자 명단을 확정해 각 대학에 통보했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점검과 제재를 예고했지만, 일부 대학은 제적 대신 유급 전환을 논의 중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을 무시한 채 제도 시행을 밀어붙이면서, 교육 현장 혼란과 마찰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을지의대와 차의과대 등은 당초 제적 예정이던 학생들에 대해 유급 처리 가능성을 두고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
특히 을지대는 전원 제적 방침을 통보한 뒤 학생 복귀 시점과 소명 사유 등을 고려해 유급 전환을 검토 중이며, 차의과대도 일부 학생에 대해 제적 대신 유급 처분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교육부 방침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달 12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미 대학이 유급·제적자를 확정했고, 그 공식 문서를 공문으로 보냈다"며 "대학을 믿되 공문 내용과 다른 처리를 한다면 교육부는 학사를 지도·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교육부가 유급과 제적을 모두 '확정 조치'로 본 반면, 대학들은 교수회의나 학생 소명 등 절차를 이유로 결정을 유예하거나 재검토하는 기류다.
한 지방 의대 관계자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제적 통보는 이뤄졌더라도 실제 징계 여부는 각 대학의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학생 개별 사정이나 학사 이력에 따라 예외 적용을 검토하는 곳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더불어 정부가 의대 제적 결원을 편입학으로 충원하겠다고 밝히면서 편입 시장에서는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자퇴·제적 등으로 인한 결손 인원은 편입학으로 충원토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각 대학이 아직 구체적인 선발 계획을 확정하지 않아 수험생들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11월에야 편입 모집 요강이 공고되는 만큼, 지원자들은 결원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편입 준비에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유급 처분에 있어서도 대학 간 기준이 엇갈리면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지난달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의예과 1~2학년의 경우 20개 대학만이 수업일수 부족 시 유급 조치를 취한 반면, 19개교는 학사경고나 교과목 실격 등의 조치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급 기준도 ‘3분의 1 미출석’이 가장 많았지만 ‘4분의 1’ 또는 ‘5분의 1’ 등 대학마다 상이했다.
이 가운데 경상국립대는 최근 의예과 1학년 185명 중 174명(94.1%)을 유급 대상자로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내년 26학번 신입생 79명이 더해지면, 총 253명이 한 학년에 몰리는 '트리플링' 상황이 발생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예과 수업은 최대 6000명 수준까지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대학 현장에서는 강의실 부족, 실습 조 편성, 시간표 충돌 등의 운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학년제 기반 의대 교육 특성상, 세 학년이 동일 과목을 수강하는 구조 자체가 교육의 질(質)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료계는 이 같은 교육부 방침에 대해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대 교육 정상화라는 과제 앞에서 윤석열 정부 학사 엄정 기조와 이재명 정부의 조율 여부는 극명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새 수장 인선도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각 대학의 제적 처리 결론이 향후 정책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