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투쟁의 도화선은 ▲성분명 처방 도입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허용 등 세 가지다.
의협은 이들 정책이 단순한 제도 변화를 넘어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고 의료 생태계 근간을 흔든다며 결사 반대하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성분명 처방’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와 국민의 약(藥) 선택권을 명분으로 추진 중이지만 의료계 반발은 거세다. 핵심은 ‘약효 신뢰성’이다.
의협 측은 “복제약(제네릭) 허가 기준인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은 오리지널 약 대비 흡수율이 80~125% 범위 내 들면 적합 판정을 내리는 구조”라며 “통계적으로 동등하다고 해서 환자에게 나타나는 임상적 효과나 부작용까지 100% 같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약사가 임의로 약을 변경, 조제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점도 의사들이 처방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주된 이유다.
“검체검사 개편, 동네의원 고사시키는 등 경영 압박”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은 개원가 생존권과 직결된다.
정부는 검사료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에 위탁기관(의원)이 받던 10% 내외 위탁관리료(채혈, 검체 보관, 행정비용 등)를 폐지하고, 수탁기관(검사센터)으로 직접 청구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검사 비중이 높은 개원가는 “저수가 체계에서 그나마 의원 경영을 지탱하던 검체 관리 비용을 없애는 것은 사실상 폐업 선고”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협은 “이것이 결국 일차의료기관 경영 악화를 초래해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개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의사 엑스레이, 방사선 피폭 안전지대 무너진다”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역시 폭발력이 큰 뇌관이다. 최근 법원이 한의사 초음파 및 뇌파계 사용에 대해 전향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엑스레이까지 허용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의협이 강력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은 영상의학적 전문 지식이 결여된 한의사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은 명백한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규정했다.
단순한 기기 사용을 넘어 오진으로 인한 환자 피해와 불필요한 방사선 피폭량 증가가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한의계는 환자 진료 편의성과 의료 선택권을 내세우며 맞서고 있어 직역 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화 끝났다”…험로 예고된 의정관계
대한의사협회는 제39차 상임이사회 의결에 따라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지난 16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는 의협의 결기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김택우 의협 회장(비대위원장)은 “14만 회원의 울분을 모아 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 폭주를 막아내겠다”며 더 이상 협상 테이블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지역의사제 도입 논란, 필수의료 패키지 쟁점 등 산적한 현안에서 정부와 엇박자를 내며 쌓인 불신이 이번 ‘3대 쟁점’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비대면 진료 법안 등에서 일부 의견 조율이 있었음에도, 전체적인 기류는 투쟁 일변도로 기울었다.
정부가 해당 정책들을 강행할 경우 의협은 집단 휴진이나 ‘의약분업 파기 선언’ 등 최고 수위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1단계로 대국민 홍보와 1인 시위를 진행했고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을 시 평일 야간 및 토요일 휴진, 그리고 최종적으로 ‘전면 무기한 총파업’까지 이어지는 대응 단계다.
이에 따라 당분간 의정 관계는 ‘시계제로’ 상태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투쟁 로드맵이 구체화되고 정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힐 경우, 연말 연시 의료계는 거센 후폭풍에 휩싸일 전망이다.
이는 곧 진료공백으로 이어져 긴 의정 사태로 이미 피로감이 극에 달한 국민들에게 또 다시 고통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의사들에게 있어 타협할 수 없는 ‘역린(逆鱗)’과 같다”며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이번 사태는 과거 2000년 의약분업 사태에 버금가는 대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국민 건강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도 평행선을 달리는 정부와 의료계 간 파국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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