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제네릭 의약품 약가 인하 정책이 제약산업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연구개발 유인 확대 등을 위한 가격 조정이지만, 현장에서는 생산 중단과 품절, 유통 혼선, 위탁생산 위축 등 연쇄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 중 제네릭 중심 업체들이 품목 축소, 채산성 재점검에 나서고 있고, 연구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혁신형·준혁신형 인증을 겨냥해 R&D 비중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약가 우대 혜택 선점을 비롯, 개량 신약 확대, 수출 다변화 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약가개편에 따라 제약사별로 개량신약 강화, 생산기반 방어, 포트폴리오 압축, 수출·기술수출 확대 등 각기 다른 생존 해법을 요구하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정부가 약가제도 개편의 큰 방향을 확정하면서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낮췄다. 국내 제약업계가 다시 갈림길에 선 셈이다.
기존에는 오리지널 의약품 상한금액의 53.55%까지 제네릭 약가를 인정했다면, 지난달 심의 통과된 약가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이를 45%까지만 인정하게 된다.
여기에 제네릭 난립을 막기 위해 ‘계단식 약가 인하 기준’도 강화된다. 종전에는 20번째 제네릭부터 추가 인하율이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13번째 제네릭부터 적용하도록 바뀐다.
이러한 내용의 개편안의 현재 정확한 시행 시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보건복지부는 관련 고시 개정을 거쳐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할 방침이다.
다만, 국내 제약 업계는 수용 가능한 최소 수준으로 제안했던 비율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약가가 정해진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혁신형제약사 문턱 높아지고, 리베이트 족쇄 완화
정부는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낮추는 대신 혁신형 제약기업과 준혁신형 제약기업, 원료 자급화 및 생산기반 유지 기업, 수급안정 선도기업 등에 별도 우대를 예고했다.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혁신 연동 보상은 새 체계에서 약가 가산 60%를 최대 4년까지 보장하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준혁신형 제약기업에는 50% 가산이 최대 4년간 부여된다.
반면 원료 자급화, 국산 원료 사용, 국가필수의약품 생산기반 유지 등 공급 안정과 직결되는 정책 우대 약제는 68% 수준의 약가 우대를 10년 이상 보장하는 별도 트랙이 유지된다.
기등재 의약품에도 혁신형·준혁신형 기업에 대한 특례가 적용된다. 정부는 기존 의약품의 경우 혁신형 기업에는 49%, 준혁신형 기업에는 47% 수준의 특례를 부여하고, 각각 일정 특례기간을 두기로 했다.

현재 혁신형 제약 인증 기업은 △녹십자 △대웅제약 △대원제약 △대화제약 △메디톡스 △헬릭스미스 △보령 △부광약품 △비씨월드제약 △삼양홀딩스 △셀트리온 △신풍제약 △에스티팜 △유한양행 △이수앱지스 △종근당 △크리스탈지노믹스 △태준제약 △한국오츠카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제뉴원사이언스 △한독 △한림제약 △한미약품 △현대약품 △HK이노엔 △JW중외제약 △LG화학 △SK케미칼 △제넥신 △코아스템 △파미셀 △테고사이언스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 △일동제약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얀센 △동구바이오제약 △동국제약 △동화약품 △올릭스 △한국비엠아이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지아이이노베이션 △한국팜비오 △ 큐리언트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기준은 상향 조정하면서 과거 행정처분 상황 등에 대해서는 완화해주는 방식으로 재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직전 3개년도 평균 매출 1000억원 미만 기업의 경우 의약품 매출 대비 R&D 비중 기준을 7%에서 9%로, 1000억원 이상 기업은 5%에서 7%로, cGMP 또는 EU GMP 품질기준 충족 기업은 3%에서 5%로 상향했다.
특히 혁신형 제약기업이 되기 위한 인증심사 또는 연장 심사 과정에서 신청 시점 기준 5년 이전, 즉 2021년 이전에 ‘종료된 리베이트 위반행위’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손질했다.
대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 기각된 경우에는 그 결정·판결일로부터 1년 이내 인증 취소가 가능하도록 정리했다. 오래된 리베이트 리스크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주는 장치로 풀이된다.

때문에 종근당, JW중외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삼진제약, 일양약품 등 과거 리베이트에 따른 행정처분이나 소송 등 불이익을 겪었던 회사들의 경우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개별 기업의 최종 판단은 실제 위반행위 종료 시점, 처분 경위, 심사 시점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일괄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정부 정책은 과거 사안을 현재로 끌고 오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해당 기업들 역시 R&D 투자를 지속해 왔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로 읽힌다.
올해 하반기 신규 인증 및 연장 신청이 예정된 가운데, 종근당과 JW중외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등은 혁신형 제약기업 신청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며 재진입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또 최근 R&D 비중과 협력 현황을 기준으로 보면, 현재 혁신형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새 기준 아래에서 존재감이 커질 기업군은 적지 않다.
우선 지난해 기준 매출 1000억원 이상이면서 R&D 비중 7% 이상인 비혁신형 기업으로는 안국약품, 제일약품, 휴온스, 삼진제약, 환인제약, 리가켐바이오, 유바이오로직스 등이 있다.
매출 1000억원 미만 기업 중에서는 R&D 비중 9% 이상을 유지하는 곳이 메디포스트 등이 대표적 후보군으로 꼽힌다.
여기에 제휴·협력활동 배점이 상향되는 구조를 감안하면 명인제약, 삼일제약 등 외부 협력과 오픈이노베이션이 활발한 회사들도 유리한 지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다.
중소·중견사, 수익 품목 중심 재편…대형사도 투자 재점검
신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중견·중소 제네릭사는 이번 개편을 계기로 보다 분명한 선택을 요구 받게 됐다.
당장 R&D를 늘려 혁신형·준혁신형 문턱을 넘을 것인지, 수익성이 낮은 품목을 정리하고 생산·원가 구조를 다시 짤 것인지, 혹은 두 과제를 동시에 추진할 것인지 등이다.
업계에서 국내 약가 인하 정책에 대응한 제약사들의 경영 전략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구체적으로 △R&D 비중 확대와 개량신약 강화 △약가 방어 요건을 충족하는 생산 전략 △포트폴리오 품목 조정 △수출·라이선스·오픈이노베이션 확대 등이다.
중견 제약사 한 관계자는 “개량신약 등 개발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현재 방향성”이라며 “제네릭 비중이 높고 CSO 중심 영업 구조를 가진 회사들에는 이번 약가 인하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제네릭 다품목 영업만으로는 구조적으로 불리해지고, 개량신약이나 퍼스트 제네릭, 나아가 신약 파이프라인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춰야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중견 제약사 관계자도 “정책 방향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인하 기제는 구체적인 반면 혁신 보상과 산업 지원은 원칙 수준에 머물러 균형 면에서 아쉽다”며 “다품목 제네릭 구조는 재검토가 불가피하고, 포트폴리오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중소·중견 제약사들은 품목 수를 늘려 매출을 방어하던 기존 방식보다 수익성이 남는 핵심 품목과 성장 가능성이 큰 품목 중심으로 압축하는 전략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대형 제약사라고 해서 약가인하 정책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상황이다. 제네릭 비중을 어느정도 보유한 경우 포트폴리오의 조정이 불가피해 질 전망이다.
대형 제약사 한 관계자는 “그동안 혁신신약과 개량신약을 만들어 왔지만, 퍼스트 제네릭에서 발생하는 수익성이 신약 개발 재원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형 제약사 관계자도 “혁신 성과 창출에 대한 우대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혁신형 제약기업이 개발한 신약과 개량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 사후관리 간소화 같은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형사는 상대적으로 완충 능력이 크지만 일부 퍼스트 제네릭에서 나오는 현금 흐름이 줄어들 경우 신약 투자 재원 배분에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 보험약 시장만으로는 투자 회수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수출시장 확대 및 기술도입과 수출, 공동개발, 글로벌 임상 연계 전략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이 유지되려면 안정적인 투자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대형 제약사뿐 아니라 꾸준히 투자를 이어가는 중소제약사까지 포함한 산업생태계 고려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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