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치매학회가 치매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질병조절치료제(DMT)의 본격적인 도입 확대를 앞두고, 현행 의료체계 한계를 지적하며 정부의 전향적인 수가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고가 신약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필수적인 교육 상담료 신설과 부작용 모니터링을 위한 MRI 검사 급여화가 향후 치매 치료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박기형 대한치매학회 신임 이사장(가천대 길병원 신경과)은 지난 11일 열린 2026년 춘계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정책 제언을 발표했다.
학회는 이날 간담회에서 레카네맙 등 신약 도입 1주년을 맞이해 축적된 국내 리얼월드 데이터인 ‘Joy-ALZ’ 레지스트리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인에게 확인된 안전성을 바탕으로 “이제는 제도적 환경 개선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레카네맙 투여 660명 환자 중 ARIA 부작용 4명 불과
학회가 공개한 국내 ‘Joy-ALZ’ 레지스트리의 660명 환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약 투여 시 우려되는 아리아(ARIA) 부작용 중 증상이 동반된 경우는 0.6%인 4명에 불과했으며 이들 모두 적절한 치료를 통해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뇌부종 발생률은 4.2%로 서구권의 12%에 비해 현저히 낮았고 심각한 뇌출혈 사례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아 한국인에게 비교적 안전한 치료임이 입증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들이 ‘안개가 걷힌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는 주관적 호전을 보고하고 있으며, 보호자들 역시 일상생활 기능 유지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는 전언이다.
치매가족 상담수가·부작용 모니터링 지원 ‘시급’
하지만 이러한 의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행 의료 체계는 신약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은 것은 ‘치매 가족 상담 수가’의 부재다.
박 신임 이사장은 “치매 신약을 투여할 때 환자와 보호자에게 약제의 효과와 부작용, 관리 방안을 설명하는 데만 최소 30분에서 1시간이 소요되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암 환자의 경우 항암제 부작용 설명 등에 대해 별도의 상담료가 책정된 것과 치매 분야는 의사의 헌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부작용 모니터링을 위한 MRI 검사의 경제적 부담 역시 치료 접근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목했다. 식약처의 권고에 따라 신약 사용 환자는 투약 초기 수차례의 MRI 촬영이 필수적이지만, 이는 현재 모두 비급여로 진행된다.
학회에 따르면 신약 사용 환자는 투약 전후를 비롯해 1개월, 3개월, 4개월, 7개월, 14개월 차 등 정해진 주기마다 MRI를 촬영해야 하며 부작용 발생 시에는 매달 검사가 필요하지만, 이 비용을 전적으로 환자가 부담하고 있다.
학회는 국가 기관인 식약처에서 안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권고하는 필수 모니터링 항목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건강보험 급여화를 통해 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이사장은 “국가 기관인 식약처에서 안전을 위해 권고하는 필수 검사 항목조차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이 고스란히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신속한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학회는 최근 시행된 통합 돌봄 서비스의 예산 부족 문제도 짚었다. 국가 치매 책임제 당시 치매안심센터 구축에 투입된 예산과 비교해 현재의 통합 돌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박 신임 이사장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기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되, 치매 환자의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며 “임기 동안 상담료와 MRI 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치매학회, 10년 장기 프로젝트 가동 및 글로벌 역량 강화
박 신임 이사장은 임기 동안 학술, 연구, 정책 분야를 강화해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비전도 함께 제시했다. 학회는 향후 중증 치매 환자를 위한 존엄성 유지 및 말기 돌봄 정책에 대해서도 의학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정책적 목소리를 높여 나갈 방침이다.
그는 “단순히 약을 처방하는 것을 넘어 환자와 보호자의 정신적 케어와 교육이 치매 치료의 핵심”이라며, 글로벌 수준의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국내 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또 학회는 2027년 국제 알츠하이머 협회(AAIC)와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국의 연구 성과를 세계에 홍보하고, ‘Joy-ALZ’ 레지스트리를 1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로 안착시켜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정밀 의학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 연구 자산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최성혜 전임 이사장(인하대병원 신경과)은 진일보한 치매 진단 및 치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며 임기를 마친 소회를 밝혔다.
최 전임 이사장은 “신약과 새로운 진단 기술의 등장으로 치매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아진 점에 보람을 느낀다”며 “신임 집행부가 치매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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