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혈압 이상 없었지만 의사가 진료 했었어야”
이틀 후 뇌출혈 발생 4년 후 심부전 사망…유족, 3억2370만원 소송 제기
2026.06.11 05:51 댓글쓰기

병원을 찾은 환자의 혈압을 측정한 뒤 의사 진료 없이 귀가를 안내한 병원에 법원이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은 환자가 호소한 수치보다 낮게 나왔지만 재판부는 의사 진료가 필요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이성진)은 지난달 27일 갑상선암 환자 A씨 유족이 B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병원 측이 원고들에게 총 46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갑상선암과 폐 전이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2020년 7월 15일부터 표적항암제 넥사바(Nexavar)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넥사바는 갑상선암, 간세포암, 신장세포암 등에 사용되는 표적항암제로 혈압 상승과 출혈 위험 증가 등의 부작용이 알려져 있다.


B병원 의료진은 치료 시작 전(前) A씨에게 부작용과 대처 방법을 설명했고, 혈압 상승 시 기존에 복용하던 항고혈압제를 단계적으로 증량하도록 안내했다.


이후 A씨는 넥사바 복용 약 일주일 뒤부터 혈압 상승과 두통 증상을 겪었다. A씨는 혈압약 복용량을 늘린 뒤 B병원 갑상선센터에 이를 알렸고, 상담원으로부터 증량 폭을 조정하고 이상이 지속되면 조기 내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B씨는 같은 해 7월 23일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196/120mmHg까지 상승하자 병원 갑상선센터를 직접 방문했다. 


다만 당시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150/90mmHg로 나타나자, 간호사는 투약 상담 후 혈압 상승이 지속되면 다음 날 다시 연락하고, 문제가 없으면 예정된 외래 진료일에 방문하라고 안내한 뒤 귀가시켰다.


그러나 B씨는 이틀 뒤 뇌출혈이 발생해 응급실로 이송됐고, 이후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으며 2024년 3월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유족 측은 “병원이 넥사바 처방 전에 혈압 위험성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았고, 순환기내과 협진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넥사바 부작용 설명이 미흡했고 혈압 상승 이후에도 적절한 진료와 약물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약 3억237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병원 측은 “넥사바 처방 전에 환자의 기존 진료기록과 혈압 상태를 확인했고, 부작용과 대처 방법도 충분히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의사 진료권 침해만 인정…뇌출혈·사망 인과관계는 기각

의사 진료 받을 기회 침해따른 정신적 손해 인정…“4650만원 위자료 지급” 판결


법원은 우선 넥사바 처방 과정에서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내분비대사내과 의료진이 순환기내과 진료기록을 검토해 환자의 혈압 상태와 복용 약제를 파악하고 있었으며, 넥사바 투약 시 협진이 필수적으로 권고되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설명의무 위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표적치료 목적과 부작용, 혈압 상승 시 대응 방법 등을 설명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전화상담원 대응 역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자가 혈압약을 증량한 뒤 병원에 연락한 것은 의료진이 사전에 안내한 대응 방식에 따른 것이며, 상담원의 안내도 해당 지침 범위 내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병원을 직접 방문한 이후 조치는 달리 봤다.


재판부는 B씨가 자가 측정 결과 196/120mmHg의 고혈압을 기록했고, 수일간 혈압 상승이 지속됐으며 두통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넥사바가 혈압 상승과 출혈 위험 증가를 동반할 수 있는 약제이고, A씨가 고혈압과 뇌경색, 미파열 뇌동맥류 등 관련 기저질환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의사에 의한 혈압 재측정과 문진 등 혈압에 관한 진료가 필요했다고 보인다”며 “혈압 상승과 기저질환을 고려한 투약량 조절 등에 관한 의사 검토도 필요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갑상선센터를 방문한 B씨에게 의사 진료를 받고 귀가토록 하는 것이 어려운 조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의사 진료를 받도록 조치하지 않은 것은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이 과실과 뇌출혈 및 사망 사이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환자가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뇌경색, 뇌동맥류 등 출혈성 뇌질환 위험요인을 다수 갖고 있었고, 넥사바 복용만으로 뇌출혈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료감정 의견을 인용했다.


또한 넥사바는 초기 치료 효과가 중요한 약제여서 감량이나 중단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당시 상황에서 의사가 진료했더라도 실제로 약제를 중단하거나 혈압약을 증량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뇌출혈과 사망에 따른 개호비, 치료비, 장례비 등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환자가 의사 진료를 받을 기회를 침해당한 데 따른 정신적 손해는 인정해 유족들에게 46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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