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에 정착할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강제 배치 방식의 ‘보내는 정책’이 아닌 교육과 수련 환경을 개선하는 ‘키우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더불어 국립의과대학뿐 아니라 사립의과대학 역시 지역·필수·공공의료인 육성 핵심 축으로 인정하고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함께 나왔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14일 국회의원회관 제10간담회실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의원실과 공동으로 ‘사립의대 관점 지역 정주 의사 양성 전략’을 주제로 제3회 의학교육 간담회를 개최했다.
만성질환 닮은 지역의료…‘전주기 통합 설계’ 시급
이날 간담회에서는 강제성에 기반한 지역의사제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선발부터 정주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잇따랐다.
첫 발제를 맡은 조민우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역의료 문제를 사회·정책·의사·국민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만성질환’으로 규정했다. 단발성 대책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지속적인 관리와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조 교수는 “지역에서 교육받은 인력이 반드시 지역에 정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젊은 의사가 지역에서도 양질의 교육과 수련을 받고, 연구와 진료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주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재현 성균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강제 배치에 의존한 해외정책 실패 사례를 언급했다. 대규모 지역할당 입학제를 운영해 온 일본에서도 일부 지역은 의무복무 종료 후 이탈률이 50%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대안으로 의학교육 질(質) 보장과 학생의 자발적 동기에 입각한 ‘전주기 통합 설계’를 제안했다.
구체적인 방향으로는 ▲지역 정주 의지가 검증된 학생 중심 선발 ▲지역사회 기반 임상실습 파이프라인 구축 ▲대학 평가 및 교원 보상체계 개혁(정주율·지역기여도를 인증평가 핵심 지표로 반영) ▲사립의과대학 공공의료 거버넌스 공식 편입 등을 제시했다.
2027학년도 지역의사선발 도입…현장실습 기반 부족 ‘호소’
패널 토의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들은 법적 근거에 따른 구체적인 선발 계획과 지원책을 설명했다.
김태훈 교육부 의대교육기반과 과장과 곽순헌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해 제정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27학년도에 490명, 2028학년도부터는 매년 613명을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역 정체성을 키우는 의학교육 강화, 지역 중심 수련모델 확립, 중앙·권역 지원센터 구축 등 전주기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국공립과 사립대를 아우르는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의과대학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인프라 부족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이동욱 동국의대 학장은 “지역의료 임상실습을 위한 교육 현장 준비가 미비하다”며 “지역 소재 임상실습 의료기관과의 협약, 실습 지도인력 확보, 비용 및 숙식·안전관리 등 학교와 공공의료기관이 직면한 실질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방 소규모 의대 자율성 확보가 우선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영리 제주의대 학장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언급하며 ‘도내 완결형 필수의료 체계’ 절박함을 호소했다. 김 학장은 대규모 증원과 학사 파동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지방 의대에 대한 학사 자율성 확대와 교육 헌신 교수에 대한 보상 체계 마련을 촉구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
의료계와 젊은 의사들은 의무 복무 유도 방식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남을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은 지역 정주 의사 양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학교육의 질 보장, 학생의 자기결정권과 대학 자율성 존중, 사립의대 및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공식적 인정과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했다.
지역 정주 의사 양성은 특정 대학이나 의사 희생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의료계가 함께 설계하고 책임져야 할 사회적 과제라는 점이 거듭 확인됐다.
김유일 대한의학회 정책이사는 공중보건의사에 대한 유인책과 계약형 지역의사제 보완을 언급하며 “의무 복무형 인력을 최소화하고 자발적인 지역 정주를 유도해야 한다”라며 이를 지속 가능하게 뒷받침할 재원 확보 방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성존 전공의협의회 회장은 단순한 의사 수 비교라는 공급자적 관점의 한계를 짚었다.
한 회장은 “지역의사제 인력의 현장 투입까지 공백기 동안 지역의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더 시급하다”며 “몇 명을 더 배출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역에 남고자 하는 동기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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