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난 아이의 선천성 장애가 의료진 과실 때문이라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어도 태아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약물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이후 임신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면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춘천제2민사부(재판장 심영진)는 최근 환자 A씨와 가족들이 산부인과 의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B씨가 A씨에게 위자료 4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자궁외임신 치료제 설명 부족했고 후속관리 소홀 등 ‘배상 책임’ 인정
A씨는 2018년 11월 수정란이 자궁 밖에 착상하는 자궁외임신 진단을 받고 B씨에게 메토트렉세이트(MTX)를 투여받았다.
MTX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약물로 암과 자가면역질환뿐 아니라 자궁외임신 치료에도 사용된다. 태아 기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어 투여 후 일정 기간 피임이 권고돼 왔다.
이런 가운데 A씨는 MTX 투여 약 두 달 뒤인 이듬해 1월 다시 임신했다. 같은 해 9월 출산한 아이에게서는 출생 후 양쪽 눈의 각막 혼탁 증상이 발견됐고, 이후 소안구증 의증 등을 진단받았다.
A씨와 가족들은 B씨가 MTX 위험성과 치료 후 피임 필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아이에게 장해가 발생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아이 일실수입·개호비·위자료 등 17억8534만원과 산모·배우자 위자료 각 850만원을 합쳐 총 청구액은 18억234만원이었다.
1심은 자궁외임신 치료를 위해 MTX를 투여한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약물 부작용과 위험성, 치료 후 3~6개월간 피임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은 책임은 인정해 산모에게 위자료 8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설명의무 위반 때문에 아이에게 장애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 나머지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은 1심보다 의료진 과실을 더 폭넓게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MTX를 투여할 때 부작용과 위험성, 특히 6개월간 피임이 권고된다는 점 등을 설명해서 환자가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임신 여부와 시기를 결정할 기회를 줬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같은 피임 권고는 관련 내용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사항에 반영되기 전부터 의학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고 봤다.
항소심은 임신이 확인된 이후 진료 과정에서도 과실을 인정했다. MTX 투여 약 두 달 뒤 A씨 임신 사실을 확인한 만큼 태아의 정상적인 발달 여부를 살피기 위한 초음파 등 정밀검사를 시행하고 하루 4㎎ 이상 고용량 엽산제를 복용토록 조치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산모는 1심에서 850만원이었던 위자료 청구액을 항소심에서 5000만원으로 늘렸고, 재판부는 이 가운데 4000만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임신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과정의 출발점으로서, 이에 관한 임신부의 자기결정권 등은 특별히 두텁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이에게 발생한 안구 장애와 의료진 과실 사이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MTX 투여 후 피임 권고 기간 안에 임신한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선천성 기형 발생률이 유의하게 높아진다는 결과가 확인되지 않은 연구 등을 근거로 들었다. 건강한 비임신부의 경우 MTX가 체내에서 대사돼 사라지는 데 평균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점도 고려했다.
이 같은 사정을 토대로 설명의무와 진료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아이 장애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아이 장애에 따른 손해배상 14억8179만원과 배우자 위자료 850만원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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