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달체계 붕괴 등 원격의료 부작용 많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외국서 시행되는 사례도 호주 등 극히 예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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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29일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의료법 개정안은 만성질환자와 재소자, 도서·벽지주민 등을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원격의료 도입이 공식화되자 대한의사협회가 반대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의협은 의료전달체계 붕괴 등을 우려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반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정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Q.원격의료 도입 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A.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른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는 의사밀도(단위면적당 의사 수)가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나라이다. 이 수치는 캐나다와 호주, 러시아의 100배 수준이다. 즉, 의사 진료를 매우 손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보다 편리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매우 높다.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일반 국민에게 완전히 개방된 원격진료사업 사례는 한 번 있었다. 지금부터 13년 전인 지난 2000년 8월 아파요닷컴이라는 회사가 단지 의사 몇 명을 고용해 인터넷을 통해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런데 아파요닷컴은 단 이틀 동안 13만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이중 7만8000여 명의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행했다. 하루에 7만5000명을 진료하고, 이중 약 4만명에게 처방전을 발행한 셈이다. 아마도 아파요닷컴이 또 다시 인터넷 진료를 시작한다면 그 숫자는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진료에 대한 기준과 개념이 바뀌면 이렇게 비상식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일단 문(門)이 열리면, 시장의 요구는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정부는 이것을 간과하고 있다.
 
먼저 의원-병원 간 경쟁을 보자. 환자가 만일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대형병원 진료를 선호한다. 지금도 외래 비중을 급격히 높이는 대형병원이 원격진료를 통한 환자 수집을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의원-병원 간 양극화와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병원-병원 간 경쟁도 마찬가지다. 지방 환자는 대부분 수도권 대형병원을 이용하기 원한다. 그러나 시간과 교통비가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이것이 제거되면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지방병원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의원 간 경쟁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의 원격의료를 허용하므로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원격의료에 집중하는 의원이 환자를 쓸어가게 될 것이다. 노인 진료도 가족이 원격진료를 이용해서 대신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의 가장 큰 위험성은 의료기관 붕괴로 인해 대면진료를 받을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렵게 경영을 유지하는 병·의원은 원격의료로 인한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없다. 이런 병·의원이 사라진다면, 결국 노인들도 장비를 갖추고 원격진료를 통해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불가피해진다.
 
Q.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가 의원 중심임을 법안에 명시하므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일차의료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다
 
A.법이라는 것은 유동적인데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원격의료 법안은 교도소 재소자나 군인 등 특별한 경우 외에는 병원의 원격의료를 재진환자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은 국민의 요구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는 유동적이다. 이번 법안은 환자를 직접 진료를 하지 않고 대면진료를 원격진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서 진료의 개념을 바꾸는 법안이다. 즉, 원격진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댐의 둑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둑이 한 번 무너지면 결국 국민들은 의원에서 허용하고 있는 것처럼 병원에서도 원격진료에 대한 초진 진료대상을 확대하라는 요구하고 그에 따라 법이 바뀌게 될 것이다.
 
대형병원이 경영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의료전달체계는 지금도 관련 규정이 존재하지만 효과가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는 대형병원이 각종 편법을 동원해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법도 마찬가지다. 대형병원은 퇴원환자 추적·관찰을 위한 원격의료 대상을 이런저런 구실로 확대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초진 환자 진료가 허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차의료가 가장 타격을 받는데 정부가 오히려 일차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원격의료가 진료현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는 사람의 말이 틀렸다고 한다. 이번 법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당사자가 동네의원인데, 정부는 오히려 동네의원을 살리는 정책이라고 한다. 그러니 가슴이 답답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만성질환 치료와 관리에 대해서도 정부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만성질환자가 병·의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이유가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매우 큰 오해다. 정부 관계자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만성질환자가 힘들여 병·의원을 방문하지 않고 원격진료를 받아 처방전을 받음으로써 시간과 교통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만성질환자가 주기적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이 가져올 합병증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는 조치다. 이것은 원격진료를 통해 대체할 수 없다.
 
Q.정부는 섬지역 등 격오지의 환자,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그리고 교도소 재소자들과 군인은 어떻게 하나?
 
A.탁상공론의 전형이다. 첫째, 의원이 없는 곳에는 약국도 없다. 섬 지역 등 격오지에서 원격진료를 받아 프린터를 이용해 처방전을 받았다고 하자. 그러나 결국 약을 조제받으려면 섬 지역을 벗어나 약국으로 가야한다. 약국 옆에는 의원이 있다. 결국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다. 둘째,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마찬가지다. 거동이 불편해 의원은 방문하기 어렵지만 약국은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인가. 교도소 재소자와 군인은 법 개정을 하지 않고서도 현재도 시범사업을 통해 아무런 문제 없이 원격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
 
Q.정부는 외국에서는 원격진료가 허용된 나라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A.거짓말에 가까운 왜곡된 표현이다. 의사밀도가 우리나라의 1/30에 불과하고, 3만여 개의 섬나라로 이뤄져 의사 얼굴을 한 번 보기 위해 평균 3시간이 소요되는 핀란드나 의사 밀도가 우리나라의 1/100에 불과한 호주 등에서 제한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한다. 미국에서도 주(State)에 따라 허용되는 곳과 허용되지 않는 곳이 있지만, 미국도 의사밀도가 우리나라의 약 1/20에 불과하다. 그나마 원격진료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진료비를 받지 못하는 곳이 많다. 현재 원격의료가 허용된 나라는 의사 밀도가 매우 낮아 의료접근성이 낮은 나라들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환자 필요성이 아니라 의사 요구에 의해 허용하고 있다.
 
Q.복지부는 의료계와 지속해서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도 논의 구조를 이어갈 생각인가
 
A.정부의 협의 계획에 부정적이다. 일차의료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어서 원격의료는 반대하되, 복지부와 협의는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내부적으로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협의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첫째, 그간 원격의료에 대한 의사협회의 입장을 수차례 명확히 밝혔음에도 정부가 원격의료 입법예고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부가 원격의료 입법예고를 강행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미리 수차례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10을 던져놓고 의료계와 협상해 양보를 얻어내고 5를 얻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잘못된 전략이다. 5를 얻으려면 1로 시작해서 신뢰를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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