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대한의학회 정지태 신임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전문의 자격시험 폐지’를 선언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지나치게 시험에 함몰된 현행 전문의 배출 구조를 커리큘럼 인증 방식으로 전면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한의학회 정지태 회장은 최근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에서 임기 내 최대 역점 사업으로 ‘전문의 자격시험 폐지’를 꼽았다.
일선 수련병원들이 전공의 교육을 고민하기 보다는 ‘저임금, 고효율 의료인력’으로 인식하는 탓에 제대로된 수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경종이다.
정지태 회장은 “전공의가 없어도 진료현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작금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한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일침했다.
이어 “전공의를 저임금 고효율 의료인력으로 인식하는 병원들에게 교육의 질은 뒷전”이라며 “시험만 통과하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구조의 한계”라고 덧붙였다.
전공의들에게 보다 상질의 교육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1회성 시험이 아닌 수련내용에 내실을 기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전문의 자격시험을 전격 폐지하고 각 분야 학회들이 검증한 커리큘럼을 이수한 전공의들에게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교육과정 인증을 통한 전문의 자격 취득은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운영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전문의 양성체제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제대로 된 교육과정 이수만 보장된다면 시험보다 훨씬 상질의 전문의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련시스템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과업”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전문의 자격시험 폐지는 결코 녹록치 않은 작업이다. 정지태 회장 역시 이를 모를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후학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의학회 차원에서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 일환으로 상반기에 토론회 등 공론화 작업을 필두로 회원학회들과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 나간다는 복안이다.
정지태 회장은 “임기 내 전문의 양성체제 전환이 목표지만 여의치 않더라도 자격시험 폐지 마중물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며 “일단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전공의→전문의→세부전문의 '수련의 늪'
정 회장은 세부전문의, 인정의 과잉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자칫 불필요한 추가 수련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전문의 중에서도 특정 분야에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임상의사 양성을 통해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한다는 취지의 세부분과전문의는 지난 2004년 처음 도입됐다.
전문학회 전문의를 대상으로 하는 ‘분과전문의’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의가 참여하는 ‘세부전문의’ 등으로 구분해 총 26개 분과/세부전문의가 운영되고 있다.
분과전문의의 경우 대한내과학회가 9개로 가장 많고 대한소아과학회 8개, 대한외과학회 5개 등 총 22개의 전문의 자격이 있다.
세부전문의는 대한수부외과학회의 ‘수부외과 전문의’, 대한소아심장학회의 ‘소아청소년심장 전문의’, 대한중환자의학회의 ‘중환자의학 전문의’, 대한외상학회의 ‘외상외과 전문의’ 등 4개가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1만 명이 넘는 의사들이 이들 분과나 세부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세부분과전문의 제도가 도입된지 17년이 흘렀지만 최근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지태 회장은 “전공의 80%가 펠로우를 하는 상황에서 세부전문의는 불필요한 수련 연장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그 취지를 다시금 반추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부전문의 취지 자체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실효성 확보를 위해 최대한 배타적으로 접근하자는 얘기”라며 “엄격한 관리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정 분야에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세부전문의는 의사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인 만큼 국비를 통한 인력 양성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회장은 “세부전문의는 국가가 교육시켜야 할 인력”이라며 “개인의 스펙 쌓기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양성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어 “의학회 역시 소위 돈 되는 분야의 세부전문의 인정은 최대한 배척하고자 한다”며 “임상현장의 수요 등을 고려한 총체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