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가 17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파업의 핵심 동력이 될 전공의들은 파업 전운이 감돌 때부터 현재까지 계속 '신중론'을 견지, 추이가 주목된다.
비록 의사 외 12개 직역이 동참할 예정이지만 2020년 대학병원 소속 젊은의사들이 총파업 선봉에 서 파급력을 키웠던 것과 확연히 비교되는 상황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강민구, 대전협)는 2일 저녁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료대란 위기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의협 비대위 파업 로드맵 원칙적 협조하되 참여 여부는 미정
이날 대전협은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 파업 로드맵에 원칙적으로 협조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총파업 참여 여부에 대해 확답하지는 않았다.
총파업에 앞서 3일·11일 예정된 연가투쟁 및 단축진료 역시 추후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이 논의될 수 있는 9일·16일 국무회의 및 국회·정부의 중재안 타협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겠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대전협은 "정치권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일방적으로 파업에 내몰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중재안이 이미 나왔음에도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법안·정책이 추진될 경우 단체 파업을 논의할 수 밖에 없다"는 조건부 계획만은 시사했다.
연가투쟁 참여에 대해 강민구 대전협 회장은 "전공의들은 36시간 근무를 하고 있기에 1시간 휴진은 휴진이라 하기 어렵다"며 "일일 근무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참여하게 될 것 같고, 총파업에 참여하는 개인 회원도 막을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간호사, 우리 젊은 동료···간호법으로 암묵적 관행 불법의료 수면위 부상"
"열악한 환경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젊은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이 시민 안전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인 간호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종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 같은 시각을 견지해온 대전협이 간호법 원안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대리수술과 대리처방의 합법적 승인 가능성이다. 그동안 병원 경영상 문제와 인력 부족 문제 등으로 암묵적으로 승인됐던 관행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강민구 회장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할 예정인 진료지원인력(PA) 관리·운영체계와 간호법 원안 상 진료에 필요한 업무 주 내용을 종합하면, 향후 병의원 및 지역사회 센터에서 의사 없이 각종 시술 등 의료행위가 합법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가 해야 할 일은 의사를 추가 채용해 하도록 해야 한다"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정치권에서 충분히 소통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우리도 중범죄 의사 등 직업윤리 저버린 동료 싫지만, 이번 의료인면허취소법은 엄청 과해"
대전협은 간호법과 함께 원안 그대로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인면허취소법에 대해서는 좀더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했다.
강민구 회장은 "살인 및 시체유기,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 취소요건 강화는 지지한다"며 "우리도 직업윤리를 저버린 의사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지금의 면허취소법이 제정되면 앞으로 교통사고를 포함한 모든 범죄에 대해 의사는 면허취소를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며 "또 업무개시명령에 엮여 파업을 비롯한 노동3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전공의가 주 100시간, 36시간 연속 근무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파업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이자 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행동이라는 게 대전협 입장이다.
강민구 회장은 "면허취소법이 시행되면 우리는 파업 시 업무개시명령 불이행에 따른 의사면허 취소를 각오하고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의사 파업 방지법'과 다름없다"고 비유했다.
의사면허취소법=의사 파업 원천차단···필수의료 인력 이탈 가속화
현행법상 공무원을 제외하고 업무개시명령을 적용받는 직종은 의사, 약사, 화물운수종사자 등 뿐이다. 의사 중에는 특히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에게 해당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업무개시명령도 이미 반(反) 헌법적인데, 면허취소법이라는 봉인 장치까지 마련되면 의료인은 노동권 보장을 위한 파업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민구 회장은 "의사 파업 방지 조치는 궁극적으로 필수의료 인력 탈출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사명감을 강조하는 시대는 끝났고 의사도 직업인이다"며 "악화하는 환경 속에서 젊은 의사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필수의료를 전공하지 않을 것이고, 조용한 사직만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4월 27일 본회의 후 현재까지도 대통령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여야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간호법을 거부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대전협 역시 파업을 단언하기보다 정치권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강민구 회장은 "우리 전공의들도 정치권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일방적으로 파업에 내몰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국회에서 우리와 충분히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