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수련병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3일 새벽 주당 80시간 근무시간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에 관한 법률안'을 극적으로 통과시켰다.
노심초사 전공의특별법 논의를 지켜보던 수련병원들은 유예기간 2년 안에 전공의들의 수련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수련병원 지정취소, 과태료 등 행정처벌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입법 저지에 나섰던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은 “지난 50여년간 전공의 수련교육에 매진해 온 모든 수련병원에 대한 배려와 의료계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며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한 입법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수련비용 지원은 '임의' 규정위반 과태료는 '강제'
무엇보다 수련병원들은 국가의 수련비용 지원 사안이 ‘국가는 전공의 육성, 수련환경 평가 등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로 명시된 데 강한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
사실 정부의 수련비용 지원과 관련해서는 병협은 물론 전공의특별법 추진에 나섰던 대한전공의협의회, 법안을 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도 동의했던 내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강제규정’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최종적으로 복지부와 기재부와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임의 규정으로 남겨졌다.
서울소재 A 대학병원장은 “특별법의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문구는 정부가 지원을 해 줄 수도 있지만 안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뜻이지 않느냐”며 “법안에 아무 실효성도 없는 애매모호한 문구를 넣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수련병원 다수가 몰려있는 사립대학병원장협의회 김성덕 회장(중앙대병원장) 역시 “수련환경 개선에 공감하지 않는 의사는 없다. 그러나 필요한 비용은 못 내주고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는 강제하겠다는 현실은 병원 입장에서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병협 추산에 따르면 연간 전공의 수련비용은 7000억~8000억원, 전공의특별법에 담긴 수련시간 단축 등의 개선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3500억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수한 전문의 양성 위한 체계적 논의 필요”
또한 수련병원들은 전공의특별법이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수련의 질을 높여 우수한 전문의 양성을 위한 법안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병협은 “전문의 자격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분야별로 필수적인 수련시간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수련시간을 근로로 인정해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전공의특별법에 따른 환자진료 공백, 양질의 전문의 교육 저해, 수련병원 포기 등 국민건강 관리체계에 심각한 피해가 미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련병원인 B 중소병원장은 “전공의 수련은 단순히 근로시간 규정뿐만 아니라 수련병원의 지역‧규모별 전공의 수급, 수련의 질 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그러나 수련환경 개선이라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는 충분한 공청회, 토론회 등의 논의도 없이 입법이 추진됐다”고 토로했다.
실제 그동안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나섰던 병원들 역시 이번 전공의특별법에 정작 수련의 질에 대한 논의가 빠졌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 소재 C 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수련환경 개선은 필요하지만 단순히 근로시간을 감축하는 것이 수련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동안 전공의들은 진료에 투입되는 근로를 통해 수련도 받은 것인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어떻게 전공의들을 수련시킬지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등 체계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데 이에 대한 준비는 아직 미흡한 상태”라고 전했다.